배우 유해진이 자랑스럽다는 유해진 PD, 누군들 아니 그렇겠나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휴먼다큐 사랑>의 '너는 내 운명', '풀빵 엄마', '붕어빵 가족'과 같은 명작을 만든 유해진 PD. 얼마 전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9명의 자녀를 입양한 목사 부부의 이야기 '붕어빵 가족'에서 배우 유해진이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당시 녹음 도중 몇 번이나 울컥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그게 2013년 이야기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목사 사모가 PD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유해진이 강릉의 목사님 댁을 불쑥 찾아와 아이들과 한참 놀아주고 봉투 하나를 두고 갔다나. 2013년에 200만 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다. 제작진과 목사님 부부가 상의한 끝에 그 돈은 <휴먼다큐 사랑 – 해나의 기적> 편에 출연한 '해나'에게 기부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놀라운 건 그로부터 2년 뒤다. tvN <삼시세끼> 촬영 중에 문득 생각이 났다며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또 큰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유해진 PD는 배우 유해진과 이름이 같은 게 자랑스럽다고 한다. 왜 아니 그렇겠나. 이런 게 바로 '방송의 진심'이다. 방송에서는 감동한 양 리액션을 해놓고 돌아서면 그만인 경우가 태반이지 않나.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지 않은가.

배우 장동윤도 2019년 파일럿 MBC <가시나들>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께 한글을 가르쳐 드리는 기획이었다. 정규 편성은 아쉽게 불발이 됐지만 장동윤은 경상남도 함양까지 몇 차례나 다시 찾아가 어르신들을 뵈었다고 한다.
방송의 진심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감독이 2010년 KBS <남자의 자격> 연출 당시 유기견 문제를 다뤘다. 그때 이경규와 김국진이 각기 유기견을 입양했다. 그리고 7년 뒤에 2017년 SBS <불타는 청춘>에 김국진이 '덕구'를 데리고 나왔는데 많이 사랑 받은 티가 났다. 이경규의 '남순이'도 가끔 방송에 등장했다. 그러다가 지난 2022년 KBS <개는 훌륭하다>에서 '남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전했다. 입양 이후 12년을 함께 살았으니 이경규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없지 않겠나.

배우 윤유선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윤유선이 2019년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찾은 삼남매는 2000년 5월 KBS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맺은 인연이었다. 결혼하기 1년 전 프로그램에서 만나 결혼 후에는 집에 초대도 하고 인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런 만남이 7년 정도 이어지다 연락이 뜸해졌고 결국 끊겼다고 한다. 아마 아이들 키우느라 바쁠 시기이지 않았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 체류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뒤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윤유선의 첫마디는 "서운했지?"였다. 이 이야기는 지난 2월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도 다시 나왔다. 지금도 삼남매와 계속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최근 윤유선이 남편 이성호와 함께 방송에 출연 중이다. 지난달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2회 연속으로 출연했고 SBS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도 나오고 있다. 겹치기 출연에 민감한 나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 2월 24일 방송 '은혼 여행' 편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들은 바로는 결혼 초기에는 여느 부부들처럼 사소한 일로 크게 부딪히기도 했나 보다. 가구 선택 문제라든지 음식 타박 같은 일로 날 선 공방이 오갔다고 한다. 그런데 '은혼 여행' 편을 보니 이제는 서로 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둥글둥글 너그러워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윤유선의 긍정적인 자세다. 내 지향점이 '너그러운 노인으로 나이 들어가기'인데 윤유선을 본받으면 되겠다.

이번 여행지는 일본 소도시 도쿠시마였다. 남편 이성호가 여행 계획을 세우면 아내 윤유선은 그저 따라가는 방식이었는데 처음 가이드를 맡다 보니 시행착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스튜디오에서는 늘 그렇듯이 야유가 쏟아졌다. "판사님이 너무 느리시다"는 지적이 나오자 윤유선은 "정류장이 워낙 복잡했다. 버스를 놓치면 다음 걸 타면 되지 않느냐"고 응수한다. "노래는 맥가이버가 나오는데 해결하는 건 없다"는 지적에는 "지금 해결하고 있는 거다"라며 오히려 남편을 감싼다.
길을 헤매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고 한다. 많이 걷게 되어도 "밥 먹고 소화시키기 딱 좋은 거리"라는 윤유선. '럭키 비키' 장원영이 젊은 세대의 긍정 아이콘이라면 윤유선은 중년의 긍정 아이콘이라고 할까. 세월이 흐르는 사이 단단해진 진심과 존중이 느껴져 보기 좋았다. 결국 결혼은 존경할 부분이 있는 사람과 하는 것이 답이 아닌가 싶다. 그날 스튜디오에 윤유선의 30년 지기인 배우 유호정도 함께 나왔다. 유호정이 슬쩍슬쩍 꺼냈던 남편에 관한 이야기들, 거기에 이재룡의 음주운전 사고 소식이 겹쳐지면서 남의 일이지만 마음이 심란하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진심이 담겨 있고, 그 진심이 끝까지 이어지리라는 믿음이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SBS 3부작 <내 마음이 몽글몽글 몽글 상담소>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청년들의 소개팅을 다룬 리얼리티인데 사실 방송을 앞두고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연애 예능의 화제성에 편승해 출연자들을 일종의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일 것이다. 나는 애초부터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연출이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이동원 PD와 함께 만든 고혜린 PD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를 가진 청년들의 소개팅을 기획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고혜린 PD의 남동생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청년이라는 단어에는 사랑과 연애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발달장애 청년과 사랑과 연애를 연결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나. 오히려 '보호'라는 말을 앞세워 금기시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발달장애를 설명하기보다 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편견을 넘어 그들의 빛나는 청춘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3부작으로 지난 8일 첫 회가 방송됐다. 이러니저러니 설명하기보다 한 번 직접 보시기를 권한다. 이 프로그램을 믿은 또 다른 이유는 상담소장을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맡았기 때문이다. 이효리가 맡았다면 이유가 있을 터, 그저 스쳐 지나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진심을 꾹꾹 눌러 담겠구나 하는 믿음이 있었다. 방송에서 모든 과정을 다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이 부부와 청년들 사이에 여러 차례 만남이 이어졌고 인생 선배로서 진심 어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MBC, S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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