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아래, 함께 쓰러지다

최주훈 2026. 3. 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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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399년 또는 1400년 ~ 1464년 6월 18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1435년, 참나무 패널에 유채, 220×262cm,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소장.

왕실이 탐낸 그림

1548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섭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누이였던 헝가리의 마리아는 벨기에 루벤의 한 예배당에 걸린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반드시 가져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대가는 파격적이었습니다. 루벤 지역 십자궁사 길드(Greater Guild of Crossbowmen)에게 미힐 콕시가 정밀하게 제작한 복제화 한 점과 새 오르간을 통째로 안겨주고서야 원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한 점의 그림이 교회 오르간 한 대 값을 치를만큼이란 건데, 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왕실이 그토록 갈망했던 것일까요?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The Descent from the Cross)'.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은 15세기 북유럽 회화의 정점이자 서양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감정 표현을 담은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위대한 건, 기술적 완성도 너머에 있습니다. 화가가 화폭 위에 펼쳐 놓은 것은 성경의 한 장면이 아니라 '함께 고통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신학적 고백이자 성찰 때문입니다. 

감정의 화가

1399년경, 지금의 벨기에 투르네에서 태어난 로히어르 드 라 파스튀르(Roger de la Pasture, 프랑스식 본명)는 당대 최고의 화가 로베르 캄팽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게 됩니다. 캄팽은 조각처럼 단단한 형태감과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유명했는데, 젊은 화가는 스승의 기법을 완벽히 흡수하면서도 자신만의 결정적 요소인 '감정'을 더하게 됩니다. 동시대 거장 얀 판 에이크가 보석 같은 정밀함으로 세상의 표면을 포착했다면, 판 데르 베이던은 인간의 내면에 깃든 가장 깊은 슬픔과 연민의 떨림을 캔버스 위로 끌어올리는 데 천재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브뤼셀로 이주한 그는 도시의 공식 화가로 임명되었고, 부르고뉴 공작의 궁정이 자리한 이 도시에서 유럽 전역의 귀족과 상인들로부터 주문이 쇄도하게 됩니다. 15세기 플랑드르는 유럽 무역의 심장부입니다.  브뤼헤, 겐트, 루벤 같은 도시들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 길드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사회적 위상을 동시에 과시하기 위해 예술 작품을 의뢰했는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역시 루벤의 십자궁사 대길드가 성벽 밖 성모 마리아 예배당을 장식하려고 주문한 작품입니다. 

석궁과 십자가

이 작품을 주문한 이들은 '십자궁사'(석궁을 다루는 무장 시민군) 길드원들입니다. 그림 양 옆 상단에 삼각 장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석궁 장식은 단지 의뢰인이 누구인지 알리려는 의도만 있는 건 아닙니다. 중세 신학에서 십자가 위에 팽팽하게 당겨진 그리스도의 몸은 시위가 잔뜩 당겨진 석궁에 비유되곤 했는데, 이걸 고려하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의 몸은 화살을 발사한 뒤 풀려나는 석궁의 형상이 됩니다. 판 데르 베이던은 그리스도의 휘어진 몸과 활처럼 젖혀진 등을 통해 의뢰자인 석궁 길드의 상징과 구원의 신학을 녹여 냈습니다. 세속 직업에 종사하지만, 이 그림 하나로 자신들의 삶이 그리스도 신앙과 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의뢰자들이 이걸 보고 얼마나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을지 상상할 만합니다. 

슬픔만을 위한 공간

이제 그림을 좀 더 가까이 감상해 봅시다. 가로 262cm, 세로 220cm에 달하는 이 거대한 참나무 패널 위에 거의 실물 크기의 인물 열 명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첫인상은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곧 기이합니다. 배경이 없습니다. 풍경도, 하늘도, 건물도 없이, 금빛이 감도는 얕은 상자 같은 공간 안에 인물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중세 북유럽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 조각 제단 같기는 한데, 그러나 조각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이것이 화가의 의도입니다. 판 데르 베이던은 불필요한 배경을 과감히 제거하면서 감상자의 시선을 오직 한 곳에 집중시킵니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 배우들을 올려놓은 것처럼, 거기 있는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 이들 사이를 흐르는 슬픔의 감정 한가운데로 감상자를 끌어당깁니다.

그림과 현실의 경계

화면 중앙을 봅시다. 예수의 축 늘어진 몸이 십자가에서 내려집니다. 니고데모가 상체를 잡고, 아리마대 요셉이 다리를 받치고, 사다리 위의 젊은 시종이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합니다. 이 시종의 오른손에는 방금 뽑아낸 피 묻은 못 두 개가 들려 있는데, 잘 보면 못 하나의 끝이 그림의 장식 틀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습니다. 그림과 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무는 이 장치는, 이 장이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사건이라고 웅변하는 듯합니다.

함께 고통받음

하지만, 이 그림에서 가장 도드라진 장면은 예수의 몸이 아닙니다. 그 아래에서 기절하여 쓰러지는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그녀의 자세를 자세히 보십시오.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창백한 얼굴, 아들과 같은 각도로 기울어진 몸, 무력하게 늘어진 팔이 죽은 아들의 자세와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죽은 자의 몸과 살아 있으나 쓰러진 자의 몸이 거울처럼 대칭을 이룹니다. 

이걸 보고 있자니, 화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구도를 잡은 건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중세 신학에는 'compassio'라는 핵심 개념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com(함께)'과 'passio(고통받음)'가 합쳐진 이 말은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자기 몸으로 온전히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다'라는 말로는 이 장면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지금 그렇지 않을까요. 억울한 누명으로 아들이 눈앞에서 공개 처형을 당하는 순간, 실신하는 그 모습은 마리아도 역시 아들과 함께 죽음에 이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판 데르 베이던은 이 감정을 시각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해 냅니다. '아들이 죽으니 어머니도 함께 쓰러진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 된다.' 이 단순하고도 처절한 진리가 두 사람의 평행하는 몸짓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주변 인물들의 반응도 각기 다른 슬픔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입니다. 화면 왼쪽에서 마리아 글로바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제자 요한은 울다 지친 붉은 눈으로 기절한 마리아를 부축합니다. 녹색 옷의 마리아 살로메는 마리아의 팔을 잡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고, 화면 오른쪽 끝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두 손을 비틀며 몸을 뒤로 젖힌 채 극한의 비통에 잠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슬픔의 강도가 깊어집니다.

색채

색채를 읽어 봅시다. 요한의 선명한 붉은 의복은 사랑과 순교의 열정을, 마리아의 깊고 고요한 푸른색은 천상의 고귀함과 어머니의 슬픔을 동시에 전합니다. 특히 성모의 푸른 옷에 사용된 울트라 마린 안료는 아프가니스탄 바다크샨에서 채굴한 라피스 라줄리 원석을 갈아 만든 것으로 당시 무게 단위로 금보다 비쌌습니다. 의뢰인인 십자궁사 길드가 이 작품에 쏟아부은 재정적 헌신이 안료 하나에서도 드러나는 셈입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의 화려한 의복은 정교한 주름과 질감으로 그들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화려함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합니다. 세상의 권세와 재물로는 십자가의 비극을 막을 수 없었다는 메시지가 옷감의 주름 사이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은 아리마대 요셉을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긴"(요 19:38) 인물로, 니고데모를 "일찍이 밤에 예수께 왔던"(요 19:39) 사람으로 기록합니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만 찾아왔던 이 숨겨진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공개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마침내 사랑을 선택한 이들의 용기가 그림 속에서 예수의 몸을 조심스럽게 받쳐 드는 그 손길 하나하나에 담겨 있습니다.

전쟁과 복원을 견뎌 낸 590년

이 작품 내용만큼이나 그림 자체의 여정도 파란만장합니다. 헝가리의 마리아를 거쳐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손에 들어간 이 작품은 엘에스코리알수도원에 안치되었는데, 스페인 내전의 혼란 속에서 1936년 프라도미술관으로 이관되었습니다. 1939년에는 스페인 공화국 정부가 전쟁의 참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기차에 실어 스위스 제네바로 피난시켰고, 그해 가을 다시 프라도로 돌아왔습니다. 1992년에는 패널의 균열이 심각해져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조지 비사카 감독 아래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점의 그림이 전쟁과 왕조의 흥망, 혁명과 복원의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해 온 셈입니다.

나는 함께 쓰러질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이 그림은 이렇게 묻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함께 쓰러질 수 있는 사람인가?' 이미 600년 가까이 지났지만, 판 데르 베이던이 화폭에 담아 놓은 'compassio', 함께 고통받음의 장면은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림 속 인물들을 다시 보십시오. 부유한 산헤드린 의원이었던 니고데모, 유력한 지도자 아리마대 요셉, 평범한 여인들, 젊은 제자 요한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슬픔을 나눕니다. 신분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이들이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모든 차이를 내려놓고 하나의 슬픔 공동체가 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는 사회적 지위도 정치적 입장도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의 고통 앞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말이 떠오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고전 12:26). 이 작품은 그 말씀의 가장 아름다운 설교로 읽힙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시대의 교회를 향한 준엄한 물음으로도 들립니다. 성공과 번영의 서사에 매몰되어 십자가의 본질인 고통받는 이와 함께 아파하는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프로그램과 숫자의 논리에 갇혀 기절하여 쓰러지는 이웃을 부축하는 요한의 손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마리아의 실신은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극한이 도달하는 곳,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되는 그 경계 없는 연대의 표현입니다. 판 데르 베이던은 그 순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채와 형태로 담아냅니다. 

지금 내 곁에서 쓰러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웃의 아픔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나요.

최주훈 / 중앙루터교회, <뉴스앤조이> 이사장

최주훈 newsnjoy@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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