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STO 플랫폼 경쟁 치열..."발행 넘어 유통"
미래에셋·신한·KB·NH, 기초자산 선점 총력

|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토큰증권(STO)'을 둘러싼 대형 증권사들의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1월 15일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3년간 업계의 발목을 잡아온 법적 불확실성이 마침내 해소됐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형 증권사들은 블록체인 기업·통신사·은행과 컨소시엄을 결성하거나 자체 플랫폼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 2월 법 시행 직후 '1호 STO 발행사' 타이틀을 선점하기 위한 막판 경쟁에 일제히 돌입했다.
정부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일 이억원 위원장 주재로 정부청사에서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킥오프 회의를 열고 "토큰증권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구조적 융합을 뒷받침하는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금융위는 내년 2월 4일 법 시행을 목표로 △기술·인프라 △발행 △유통 △결제 등 4개 분과를 구성해 본격적인 제도 설계에 착수할 방침이다
▲ 글로벌 RWA 4배 폭증…국내 2030년 367조 전망
정부와 업계가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글로벌 '실물자산 토큰화(RWA)'시장이 이미 폭발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선 까닭이다. rwa.xyz에 따르면 전 세계 토큰화 자산 규모는 현재 264억7000만달러(약 36조원)로 불과 1년 전 66억달러에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맥킨지는 2030년 2조달러, BCG는 16조달러를 각각 전망했고 블랙록의 토큰화 펀드 'BUIDL'은 출시 1년여 만에 17억달러를 흡수하며 시장 가능성을 현장에서 직접 실증했다.
이 글로벌 훈풍은 국내에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BCG는 국내 토큰증권 규모가 2030년 367조원(GDP 대비 14.5%)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신범준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토큰증권협의회장은 "민간 기업들은 이미 기술적·제도적 준비를 마친 상태로 법 시행 즉시 시장 활성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장밋빛 전망을 등에 업고 국내 증권사들은 크게 4개 전선으로 나뉘어 각자의 생존 전략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 미래에셋 독주 vs 신한 연대…KB·NH는 자산관리 역량 이식
선두에서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미래에셋증권이다. 하나금융그룹·SK텔레콤과 결성한 컨소시엄 'NFI'를 통해 국내 처음 1000억원 규모의 다중통화 디지털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홍콩달러와 미국달러를 블록체인 기술로 동시에 조달해 환전 비용을 줄이고 결제 시차를 없앤 이른바 '블록체인 기반 다중통화 디지털 채권'의 실증 사례다. 하나증권 리서치는 "발행·결제·유통·보관 전 밸류체인을 아우르는 미래에셋증권이 최대 수혜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미래에셋이 독자 노선으로 앞서 나간다면 신한투자증권은 연대 전략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SK증권·LS증권과 함께 구성한 '프로젝트 PULSE(펄스)'는 국내 유일의 다중 증권사 분산원장 모델로 한국예탁결제원 테스트베드 실증 사업을 완료하며 기술 완성도를 공인받았다. 협의체 출범 이후 신한투자증권은 중소형 증권사와 조각투자사들을 PULSE 생태계로 끌어들이며 시장 표준 OS 굳히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 자산관리 역량을 STO에 이식하는 전략을 택한 것은 KB증권과 NH투자증권이다. KB증권은 'ST 오너스' 협의체를 통해 조각투자 플랫폼·IT 기업을 연합, 신탁 기반 자산관리 시스템을 블록체인 위에 구현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의 'STO 비전그룹'은 농협은행·케이뱅크·핀테크 기업 펀블을 아우르는 다자 협력 모델로, 탄소배출권·선박금융·특허권 등 특수 자산 토큰화에 집중해왔다. 중소형사들 역시 코스콤을 중심으로 키움·메리츠·대신 등 8개사가 공동 인프라 개발에 착수하며 집단 대응 체제를 갖췄다.
▲ 'T+0' 결제·스테이블코인 연계가 다음 관문
플랫폼 경쟁이 달아오르는 사이 제도 설계의 핵심 화두로 부상한 것은 '온체인 결제' 도입이다. 현행 'T+2' 정산 체계를 거래 당일 즉시 완결하는 'T+0'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인데 이를 실현하려면 스테이블코인과의 연계가 불가피하다. 이억원 위원장은 "해외에서는 스테이블코인으로 24시간 'T+0' 결제를 지원하는 시도가 이미 진행 중"이라며 "디지털자산법 논의를 거쳐 도입될 스테이블코인과의 연계성을 고려하며 제도·인프라를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프로젝트 한강'과 연계한 예금 토큰이 핵심 결제 인프라로 떠오른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플랫폼과 결제 인프라 경쟁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지금 진짜 승부처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한다. '어떤 자산을 발굴해 독점 공급하느냐'로 전선이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도 "음원 저작권, 한우 경매대금처럼 투자자가 개인적 관심을 기반으로 투자할 수 있는 증권이 늘고 있다"고 언급했다. K-팝·웹툰 IP, 탄소배출권, 선박 금융 등이 유망 기초자산으로 거론된다.
물론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증권사 플랫폼이 독립된 분산원장 위에서 운영되면서 유동성이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카탈라이즈리서치는 "플랫폼 간 인터체인 전송을 거쳐야 하는 사일로 현상(부서 이기주의 현상)이 시장 성장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과 제도의 토대는 마련됐다. 남은 것은 콘텐츠다. 업계 관계자는 "K-컬처 IP, 탄소배출권 등 매력적인 기초자산을 자사 플랫폼에 독점 공급할 수 있느냐가 향후 1년 안에 격차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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