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의 인문기행 ] 이순신, 격렬한 전투를 치루고 총탄을 맞다.

박기성 전문기자 2026. 3. 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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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성의 인문기행 ] ⑤ 돌고 돌아 마침내 이르른 이순신 최후의 바다 노량

조.명 연합군과 왜군간 혼전의 전투로 역사가 써지다.
[<사람과 산>  박기성  전문기자]   1598년 음력 11월 19일 밤 순천왜성 앞바다의 조선 수군은 일제히 포격을 시작했다. 기세는 성을 무너뜨릴 것처럼 요란했지만 위장 공세였다. 판옥선 60척에 승선한 조선군(7,300명)의 주력은 노량 앞바다의 대도(大島) 남북쪽에 포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진린이 지휘하는 명군(13,200명) 함대 400척은 대섬(竹島) 주변에 숨어있었다.
전남 순천시 순천왜성, 고등을 거처 복원하였다. 사진 순천시

고니시군 8400명을 구하러 오는 시마즈 요시히로의 일본군 전선 500척(22,400명)은 창선도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순천왜성의 함포 소리와 산을 태울 것처럼 시뻘건 봉화를 보고 조선 수군이 왜성 공략에 총력을 기울인다고 판단, 신속하게 노량해협을 통과하기로 했다. 마침 조류도 순천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0~2시).

본격적인 전투는 조선 함대의 기습 포격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선두 함선 몇 척이 부서질 즈음 왜군 지휘부는 조선 함대 숫자가 얼마 안 됨을 간파하고 조선군을 포위하려 들었다. 조선군의 주력은 대도 남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진린의 명군이 나서 조선에서 빌린 판옥선에 도독기를 올리고 불랑기포와 호준포를 쏘며 싸움에 뛰어든다.

시마즈는 정면대결을 피해 회피기동을 하기로 하고 기수를 남으로 돌린다. 그리하여 관음포 앞바다에 이르렀는데 어둠 속에서 이순신의 본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왜군 함대의 옆구리를 노리며 첨자찰진(尖字札陳)으로 돌진해온다.

때마침 북서풍이 불어 화공까지 가하니 왜군은 큰 혼란에 빠진다. 이 와중에 조선군의 위장 공세를 간파한 고니시는 왜성의 군영을 철수한 뒤 70여척의 배에 분승, 탈주에 성공한다(2~4시). 시마즈는 전투력이 약한 명군쪽을 공략해 포위망을 뚫어보라면서 총공세를 명령한다. 그러자 그때까지 전력을 보존하고 있던 중·후 위 부대가 돌격, 피아간에 난전(亂戰)이 시작된다.

이때 진린의 부장 등자룡의 빌린 판옥선이 명군의 오인 사격을 받아 불이 난다. 이에 명군 파총 심리가 등자룡을 구하러 달려왔으나 왜군의 집중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등자룡은 전사하며 판옥선은 끝내 침몰하고 만다. 

사기가 오른 왜군이 진린에게도 달려들어 이 또한 침몰 직전에 이르렀는데 이순신의 대장선이 달려와 구출을 한다. 이러면서 첨자찰진은 자연스레 포위진으로 바뀌었고 야간전투라 피아 식별이 어려워 근거리 포격 및 근접전과 백병전이 빈번하게 일어난다(4~6시).

이런 가운데 조류가 바뀌자 왜군은, 물의 흐름을 따르면 동북쪽 노량으로 돌아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관음 포쪽으로 밀려 만(灣) 안에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이순신이 구상한 노량해전의 덫이었다. 이에 조명연합군은 관음포 입구를 봉쇄하고 왜군은 죽기살기로 혈로를 뚫으려 하면서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6~8시). 

여기는 215년 전인 고려말 정지장군 관음포싸움의 현장이기도 했다. 원래는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을 두어 대장경을 판각하던 곳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여기서 만들어졌던 탓에 관음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이후 큰 싸움이 두 번이나 일어나 수많은 수중고혼(水中孤魂)이 생겨난 곳이었다. 각설하고… 시마즈는 이번에는 명군쪽이 아니라 조선군의 주력을 향해 돌파를 시도한다. 양군의 생사를 건 싸움 속에 그는 3층 누각선 아타케부네(安宅船)가 부서져 작은 배로 갈아타고 가까스로 탈출한다.

포위망을 뚫고 나온 다치바나 무네시게의 함대가 조선군의 후미를 들이쳐 시간을 벌어주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런 혼전 중에 총탄을 맞는다(8~10시). 관음포 바다 북쪽 언덕, 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상륙한 곳에 세워진 이락사(李落祠)는 엄숙의 우주다.

순조 32년(1832년) 충무공의 8세손인 통제사 이항권이 왕명을 받들어 세운 유허비의 집으로 빈틈 하나 없는 선자(扇子)서까래와 아치형으로 굽은 대들보가 이채롭다. 이락사를 지나 바다로 뻗어나간 솔숲 언덕을 따라 바다로 향한다. 완만한 오름길 절정에 이르러 돌아가려는데 솔가지 사이 힐끔 기와집 하나가 보인다.

끌리듯 걸음을 떼 다가간 숲속의 누각 첨망대(瞻望臺). 장군에 대한 추모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이들 아쉬움 달래라는 '바다를 보는 집'이다. 1991년 남해군에서 세웠다.    

글 박기성   전문기자  l   사)한국山書會 회장이다. 서울大 문리대OB산악회장으로 〈사람과 산〉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 「삼국사기의 산을 가다」, 「명산」, 「울릉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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