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바로 나”…91세 조각가 김윤신 회고전

김현경 2026. 3. 1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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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최초 한국 여성 작가 회고전
70년 예술 세계 조망…170여 점 전시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장에서 김윤신 작가. [사진=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나무는 바로 나예요. 어릴 때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나무가 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무 작품으로 남기는 것은 나를 남기는 일이에요. 나무가 나를 오늘날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나무를 재료로 자연과 생명을 노래해 온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91)의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오는 17일부터 6월 28일까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호암미술관 최초의 한국 여성 작가 회고전이다.

1955년 홍익대 조각과에 입학해 70여 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 온 김윤신이 현재까지 제작한 작품은 평면과 입체를 아울러 1500점에 이른다. 이번 회고전에는 망실된 1960년대 이전의 작품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가장 초기작인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의 판화와 이후의 실험적인 평면 작품들, 60대에 들어 몰입하기 시작한 다채로운 회화까지 170여 점을 선보인다.

김윤신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집요하게 나무를 재료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본질을 탐구해 왔다. 1970년대 초, 한국 조각계가 모더니즘을 추구하던 시기에 그는 수직 형태의 추상 조각을 선보이며 독창적 예술 세계를 펼쳤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을 떠난 작가는 아르헨티나의 자연 속에서 현대성과 원시성이 공존하는 작업을 발전시켰다.

전시의 부제인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김윤신의 작업 이념에서 따온 것으로,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돼(合)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가 탄생(分)한다는 의미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전경. [사진=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작가 생애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김윤신의 작업을 하나의 조형 세계로 이해할 수 있도록 평면과 조각이 한데 어우러지도록 구성했다.

먼저 1970년대 중후반의 ‘기원쌓기’ 조각 시리즈와 ‘합이합일’ 이념이 형성되던 시기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시리즈가 1층 전시실에서 시작한다.

작가의 다양한 추상적 형식 실험을 확인할 수 있는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의 석판화와 드로잉, 1970년대의 캔버스 작업도 볼 수 있다.

이어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후 전기톱을 사용해 남미의 육중한 나무로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더욱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절정에 이른 작가의 예술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2층 전시실에서는 김윤신 조각의 또 다른 축인 돌 조각과 2000년대 이후 다채롭게 변화하며 전개되는 나무 조각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 원주민 마푸체 부족의 색채와 문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기의 조각은 아르헨티나의 자연과 문화를 흡수해 더욱 풍부해진 양식적 발전을 보여준다.

아울러 2000년대부터 김윤신이 열정적으로 몰입하기 시작한 주요 회화들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의 마지막은 2층 전시장 외부에 있는 최근작 ‘노래하는 나무 2013-16V1’(2025)가 장식한다. 전시장 내부의 2013년 작 나무조각을 알루미늄으로 캐스팅한 뒤 아크릴 채색을 더한 이 작품은 작가가 ‘회화-조각’이라 명명하며 새롭게 몰두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작업 중 하나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확장한다.

아시아와 유럽, 남미를 가로지르며 두 세기에 걸쳐 형성된 김윤신의 작업은 한국적 감성과 동양적 사유를 기반으로 순수 추상의 조형 원리를 발전시키고, 남미의 자연과 문화를 흡수해 매우 독자적인 성격을 지닌다. 작업에 기저에는 어린 시절 경험한 우리의 민속 신앙과 작가의 기독교적 신념이 이질감 없이 공존하며, 원시적 조형성과 현대 추상의 조형 언어가 맞닿아 있다.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김윤신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길이 예술인 듯, 숨 쉬듯 작업해 왔다. 톱질과 망치질 자국으로 가득한 그의 조각은 요즘의 동시대 미술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작가’라는 존재를 느끼게 한다”며 “이번 전시는 순수한 열정과 신념으로 평생을 예술과 ‘하나’되어 살아온 한 예술가를 만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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