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박사들이 사랑한 할랄 푸드… ‘실크로드의 심장’ 우즈베키스탄 [먹어서 세계 속으로]

드넓은 세상 만큼 먹거리의 세계는 무한하다. 각 나라의 전통과 미래, 웃음과 울음은 접시 위에 차려진 서사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일상에 치여 깊숙이 넣어뒀던 여권을 꺼낼 필요는 없다. ‘가장 가까운 국경’, 경기·인천에서 수많은 레시피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점심과 네팔의 저녁, 누군가에겐 낯선 이방이고 누군가에겐 친숙한 고향이다. 경인일보 ‘일벌이기 클럽’은 입국 도장 대신 영수증 한 장으로 세계일주를 떠난다. 켜켜이 쌓인 지구촌의 맛을 따라, 먹어서 세계 속으로.
의정부 의정부동 ‘ATLAS’
오쉬·프라이 라그만·샤슬릭·녹차
한국에 지지 않는 ‘밥심’ 자부심에 깜짝
고려인들의 반찬까지 맛볼 수 있는 기회
비장탄으로 구워낸 구이, 향까지 맛있어

중학교 기술가정 시간에 각종 인증 마크를 외우는 수업이 있었다. 아직도 KS 마크를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로고 하나만 봐도 ‘믿을 만하겠구나’ 안심이 되는건 어쩌면 인증의 힘이다.
먹거리에도 그런 ‘믿음의 마크’가 있다. 바로 할랄 푸드다.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서 ‘신께서 허락하신’이라는 뜻으로 국민 다수가 무슬림인 우즈베키스탄 식탁에선 규칙으로 통한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맛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할랄을 지나칠 수가 없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 그래서 이번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의정부에서 맛있는 할랄 푸드로 소문난 ‘아틀라스(ATLAS)’로 향했다.

화려한 실내와 향신료 향을 생각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실내는 의외로 담백했다. 회색빛 테이블과 검은 의자, 깔끔한 조명. 한국의 여느 식당과 비슷해 보였지만 곧바로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하얀 벽면에 걸린 화려한 접시들이 눈에 들어오자 실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릇에 관심을 보이자 사장님은 “직접 들여온 그릇”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인 손님들이 사진을 남기고 가는 ‘포토존’이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환영하듯 반짝이는 전통 접시들을 보고 나서야 메뉴판을 펼칠 수 있었다.

메뉴판 한쪽에는 우리가 찾아 떠났던 ‘100% 할랄’ 문구가 자신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름은 낯설지만 입맛을 유혹하는 사진들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 식탁에 오를 우즈베키스탄 대표 음식들을 4가지로 나누어 골라봤다. 프라이 라그만, 오쉬, 샤슬릭(소고기·양고기) 그리고 밥과 차를 곁들이는 문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녹차까지 주문을 마쳤다.
주문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메뉴판이 전부 한국어라는 점이 신기했다. 아직 한국에선 낯선 음식이기에 할랄 푸드를 찾는 사람 중 대부분은 외국인, 그 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 사람일텐데 말이다. 한국어 메뉴판을 신기해하니, 사장은 어떤 손님이 오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메뉴판을 준비해두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식 할랄푸드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픈 진심이 느껴졌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작은 창 너머로 주방이 보였다. 쉐프들이 바쁘게 고기를 손질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바쁜 와중에도 한국 손님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 눈이 마주쳤을 때 밝은 미소를 보여주곤 했다. 손님과 주방의 거리가 가깝다는 인상이 느껴졌다. 숨기지 않는 구조가 오히려 ‘믿고 드셔도 됩니다’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메뉴를 기다리는 사이에도 익숙한 배달 주문 알림이 연신 울렸다. 그 소리를 들으니 새삼 이 곳이 우즈베키스탄이 아니라 의정부 골목 임이 떠올라 생경한 기분마저 들었다.

한국에 ‘볶음밥’ , 인도네시아에 ‘나시고렝’이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에는 ‘오쉬’가 있다. 첫 인상은 잘 포장된 종합선물세트처럼 느껴진다. 밥, 고기와 채소, 달걀까지 곁들인걸 보면 한 접시로도 다양한 맛과 충분한 영양을 챙기려고 한 노력이 엿보인다. 사장님은 오쉬의 가장 큰 특징이 지역마다 재료, 조리법부터 맛과 색감까지 다양하다는 점을 꼽았다.
밥과 고기를 섞지 않고 밥 위에 탑처럼 쌓아 올려 먹는 사마르칸트 지역, 당근을 오래 볶아 기름지게 먹기도 하는 페르가나 지역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먹은 오쉬는 ‘타슈켄트’식이다. 이름은 같지만 다른 매력의 오쉬를 맛보는 것도 우즈베키스탄 식여행의 즐거움이다.
숨어 있는 콩까지 한 숟갈에 다 담아내기는 어렵지만 도전 자체가 오쉬의 재미다. 기름을 이용한 요리지만 느끼함이 과하게 남지 않았고 밥알의 탄력이 살아 있는 점이 신기했다. 사장님은 우즈베키스탄 쌀을 고집한다고 했다. 한국인 ‘밥심’ 못지 않은 자부심이다.

꽃모양 접시에 담긴 프라이 라그만은 두꺼운 면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국물과 함께 먹는 라그만도 있지만 국물이 없는 볶음면을 골랐다. 일반적인 요리가 면이 주인공이고 건더기가 조연이라면 프라이 라그만은 놀랍게도 모두가 주인공이다. 자작자작하게 먹는 한국식 볶음우동과 다르게 쫄깃한 면발과 부드럽게 입에서 녹는 야채들의 조합이 새롭다. 볶음 요리 특유의 기름진 무게가 느껴질 때면 테이블 위에 ‘해결사’를 불러야 할 때다.

얇게 자른 당근 보이는 이 반찬은 ‘마르코프차’다. 피자에 피클이 있고, 치킨에 무가 있다면 우즈베키스탄 식탁엔 이 마르코프차가 있다. 고려인들이 배추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당근으로 절임을 만들며 자리 잡았다고 알려진 음식이다. 차갑고 새콤한 맛이 기름기를 정리해준다. 라그만 한 젓가락 뒤에 마르코프차를 한 번 집으면 더 이상 반찬이 따로 필요 없다는 말이 이해된다. 오쉬와 곁들여도 그 조합이 일품이다.

가장 기대했던 샤슬릭이 등장했다. 아틀라스의 샤슬릭은 직접 숯불에 굽기 때문에 다른 메뉴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최고급 비장탄’으로 구워낸다는 메뉴판의 소개글이 거짓말이 아닌 듯하다.
꼬치 요리는 전세계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지만 테이블 위에 올라온 샤슬릭을 마주하면 놀랄 수밖에 없다. 나무 도마 위에 올려진 꼬치 두 줄, 멋스럽게 올라간 양파가 클래식한 매력을 더한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주문한 소고기와 양고기를 눈감고 먹으면 어떤 것이 양고기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

흥겨운 젓가락질의 끝에는 녹차가 기다리고 있다. 주전자째 식탁에 올라온 녹차는 커피 한잔보다 더 여유있는 마침표를 찍기에 충분했다. 할랄푸드가 낯선 이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우즈베키스탄의 마음이 전달되는 듯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의정부였지만 테이블 위에서는 계속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했다. 차를 다 마실 즈음 궁금증이 남았다. 먼 이국땅에서 ‘할랄’을 지키고 있는 사장님은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을까. 우리는 찻잔을 내려놓고 사장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먹어서 세계속으로는 협찬·후원 없이 내돈내산으로 다녀왔습니다.
/연주훈 기자 raindrop@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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