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투'와 '에버그리닝'…'코스피 5000' 시대에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이유
이재명 정부 들어 8개월 만에 코스피 지수가 2500에서 역대 최고인 6300까지 오르는 등 윤석열 내란을 거쳐 정상 궤도로 올라선 것 같던 한국 경제에 불안 신호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선제 타격을 가하며 발발한 전쟁 때문이다.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보기에 지금의 문제는 단순히 "중동발 악재"가 아니다. 외부 충격은 방아쇠일 뿐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 내부에 이미 오랫동안 쌓여 온 취약성이다.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저출산과 고령화는 가속화하고, 가계와 기업의 빚은 누적돼 왔다. 그럼에도 사회는 이를 구조적 위기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눈앞의 지표와 분위기에만 반응해 왔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홍 전 장관은 최근 펴낸 <대한민국 금융위기>(홍종학 지음, 이콘 펴냄) 에서 한국 사회가 지금 마주한 위기를 이야기 한다. 그는 책에서 "IMF 사태보다 더 큰 위기를 대비하라"고 말한다.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 있는 이 주장은 단순한 위기론이 아니라 "왜 한국 경제가 이토록 취약한 상태로 흘러왔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다.

"위험을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경제위기는 발생한다"
홍 전 장관은 10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정부가 조금 더 악화시켰을 수는 있고, 어떤 정부가 조금 덜 나쁘게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지금의 문제를 어느 한 정부의 일시적 실패로 보는 것은 틀렸다"고 했다.
그는 1997년을 돌아보며 "당시에도 한국 경제는 이미 나빠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재벌들의 과잉 차입과 무리한 확장, 금융기관의 취약성, 국제 금융시장의 흔들림이 모두 선행되고 있었지만, 정부와 언론, 학계는 이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OECD 가입, 성장 신화, 재벌 경쟁력 같은 낙관적 서사만 앞세웠고,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1997년 외환위기는 벼락이 아니었습니다. 1994년부터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1995년 멕시코 위기가 있었고, 동남아가 흔들리고 있었어요.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었지만 관료, 정치인, 학자, 언론, 누구도 위험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홍 전 장관이 보기엔 지금도 구조는 비슷하다. 중동전쟁이 터졌을 때 그것이 한국 경제에 어떤 충격을 줄지, 환율·유가·금리·자본 유출 가능성을 어떻게 관리할지 미리 경고하고 준비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숱한 제도와 기구를 만들었지만, 정작 위기를 감지하고 경고해야 할 '파수꾼'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관료들의 '님투'와 '에버그리닝'
홍 전 장관은 위기 대응 실패의 배경에 '관료주의'를 지목했다. 그는 개별 공무원의 능력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대단히 우수하다"고 했다. 하지만 조직의 논리 속에서는 위험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책임을 뒤집어쓰는 구조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공무원이 '지금 한국 경제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버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책연구기관, 학자, 언론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경고하는 발언은 시장 불안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고, 그 결과 누구도 먼저 문제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 '님투(NIMTOO, Not In My Terms Of Office, 공직자가 자신의 임기 동안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회피하는 경향)'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도 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홍 전 장관은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서민들이 얼마나 힘든지, 대통령실이 제대로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또 홍 전 장관은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을 구조적 문제로 지적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실이 누적된 자산과 기업을 계속 연장하고 떠받치면서 문제를 미루는 방식이다.
그는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일본의 장기침체를 끌어왔다. 1980년대 후반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부실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을 신속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현실화하면 자기자본이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있는 기업들에 계속 자금을 공급하며 살아 있는 것처럼 유지했다. 그렇게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떨어지고, 새로운 성장 산업에 자본이 흘러가지 못하면서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홍 전 장관은 지금 한국이 정확히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은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합친 민간신용이 GDP 대비 200% 수준에 이르렀는데,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이 이 정도였습니다. 엄청난 숫자인데도 사회적으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이걸 위험하다고 말하면 시장 불안을 조장한다고 몰아가니, 결국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됩니다. 1997년에는 가계부채는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기업부채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레고랜드와 새마을금고 사태…"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왔다는 건..."
홍 전 장관은 최근 몇 년간 반복된 금융 불안 사례들을 모두 구조적 위험의 신호로 해석했다. 레고랜드 사태, 지방 건설업체 부실, 새마을금고 위기 등이 각각 개별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실 구조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 금융권의 표현을 인용해 "바퀴벌레가 한 마리 보이면, 이미 어딘가엔 훨씬 더 많은 바퀴벌레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레고랜드 사태 때 시장이 크게 흔들린 것도 해당 사업 자체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유사한 PF 구조가 시장 전반에 너무 많이 퍼져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직감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그가 가장 먼저 해체해야 할 뇌관으로 꼽은 것은 부동산 PF였다. 그는 "이미 구조는 드러나 있고, 부실 규모도 대략 안다"며 "지금은 아직 감당 가능한 수준인데, 아무도 그걸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부에 손실을 반영하는 순간 부실이 드러날 금융회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기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라고 그는 비판했다. 감독기관이 손을 대는 순간 시장 충격이 현실화되니, 관료 입장에서는 현직에 있는 동안 사고를 터뜨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문제는 계속 뒤로 미뤄지고, 병은 더 깊어진다.
"8개월만에 두배로 뛴 주가…미국 증시 전문가들은 위험성을 경고한다"
홍 전 장관은 최근의 증시 급등과 급락도 같은 문제의 연장선에서 봤다. 그는 주가가 오르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상승이 경제 실물의 기초와 괴리돼 있을 때는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2500에서 6000까지 올라가는 속도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 있었고, 어느 정도 재평가가 가능하다는 논리는 인정하면서도, 금융감독기관과 한국은행은 적어도 '빚내서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는 경고를 계속 했어야 한다. 위험의 목소리는 오히려 미국 월가 등 외국 언론에서 나온다.
그는 시장을 흔드는 핵심 요인으로 '빚투'와 변동성을 들었다. 변동성이 큰 시장은 연기금이나 장기 기관투자자에게 적합한 시장이 아니라 단기 투기세력이 몰리는 시장이 되기 쉽다. 특히 반도체 비중이 큰 한국 증시에서 일반 투자자들은 지수 상품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높은 비중으로 투자하게 된다. 오를 때는 지수 전체가 급등하지만, 꺾일 때는 시장 전체가 같이 급락하게 되는 구조다.
"삼성·현대차가 있다고 해서 경제 전체가 안전한 건 아니다"
물론 지금의 한국이 1997년과 같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에서 한국 대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고, 삼성전자·현대차·SK하이닉스 등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만남 같은 장면은 한국 경제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홍 전 장관도 이런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몇몇 산업과 대기업의 성공이 경제 전체의 안전판이 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도체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내수, 소비, 청년 고용, 자영업, 지방 경제를 동시에 살려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행 분석을 인용하며 "반도체가 작년만큼 잘 돼도 경제성장률은 0.4%, 소비는 0.1% 늘어나는 등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했다. 또 지금의 대기업 경쟁력 역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결과였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당시 부실을 정리하고 살아남은 기업들이 지금의 주력 기업이 됐지만, 그 이후 한국은 새로운 대기업과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독립적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미국의 '매그니피센트 7'(애플, 구글, 테슬라 등 7대 빅테크 기업들)은 지난 20~30년 동안 새로 성장한 기업들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 경제에는 '다음 세대 기업'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주가 상승에 환호할 때 무너지는 서민경제
홍 전 장관의 문제의식에서 중요한 축은 양극화다. 그는 지금 한국 경제가 "반도체와 주식시장 이야기로 들썩이는 한쪽과, 자영업과 서민경제가 무너지는 다른 한쪽으로 갈라져 있다"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최근 수출 호조, 코스피 5000 돌파, 경제성장률 2%대 회복 등 전반적으로 회복세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중소기업, 지방, 노동 부문, 특히 취약 청년 등에게는 아직 여전히 딴 세상 얘기일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소외된 측면이 있다"고 양극화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공실이 늘고, 자영업자들이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자영업 부채는 1000조 원에 달한다. 은행은 사상 최대 이익을 내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그만큼 높은 이자를 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민간부채가 GDP 대비 200%인 경제에서 은행의 최대 수익은 경제 건강의 신호가 아니라 고통의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률 상승도 이런 맥락에서 봤다. 경제위기가 올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지표 중 하나가 자살률인데, 최근 다시 자살률이 오르고 있다는 건 서민경제가 악화하고 있다는 징후라는 것이다. "우리는 반도체와 주가만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이미 삶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한국은 콘크리트 중독 상태다"
홍 전 장관이 보는 또 하나의 핵심 문제는 부동산 중심 경제구조다. 그는 한국 경제를 "콘크리트 중독" 상태라고 표현했다. 외환위기 이후 30년 가까이 생산적 산업보다 부동산과 건설, 토지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몰렸고, 그 결과 경제의 활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 관련 대출과 보증 등을 합치면 4000조 원 규모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기업에만 수백조 원이 묶여 있고, 그 자금이 생산적인 산업과 혁신 생태계로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돈의 일부만이라도 벤처캐피털, 청년, 신혼부부, 교육에 갔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경제가 됐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내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는 대통령의 의지 만으로는 이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봤다.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려면 돈이 실제로 흘러갈 생태계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그 작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처럼 버틸 수 없다…이제라도 뇌관 하나씩 해체해야
홍 전 장관은 한국 경제가 이미 일본식 장기침체 경로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부실을 정리하지 못한 채 정책금융과 공적 자금으로 곳곳을 떠받치는 구조가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이 일본처럼 오랫동안 버틸 수는 없다고 봤다. 일본은 경제 규모와 금융 시스템, 자국민의 국채 보유 구조 덕분에 막대한 국가부채를 안고도 30년을 버텼다. 반면 한국은 경제 규모도 더 작고, 자본 이동도 더 빠르며, 대외충격에 더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홍 전 장관은 가장 먼저 부동산 PF 문제를 현실화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통이 있더라도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외환위기 때도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에 살아난 기업들이 지금 한국 경제의 중추가 됐다"며 "지금도 똑같다. 살아날 수 없는 것들을 정리해야 살아날 수 있는 것들이 산다"고 말했다.
홍 전 장관은 책에서 위기를 맞지 않기 위한 가장 쉽고도 중요한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공동체 의식'이다. 진정한 위기 극복은 내 집값만은 떨어지면 안 된다는 이기심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의 높은 집값은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빚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다.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없고,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나라에서 비싼 아파트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인터뷰는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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