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ㆍ이란 전쟁의 ‘진짜 전선’은 에너지ㆍ금융 패권 둘러싼 美中 경쟁

양정대 2026. 3. 1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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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美中 ‘달러 패권’ 전장이 된 이란
미국ㆍ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이유
핵주권ㆍ反美만으로는 설명 부족
글로벌 원유 거래 80% 달러 결제
에너지시장서 독보적 ‘페트로달러’
최대 원유 수입국 中 2018년부터
위안화 결제 늘리면서 점진적 균열
美의 대중 견제, 제조업뿐 아니라
에너지 거래 달러 패권과도 맞물려
“이란 침공은 中 봉쇄 의도” 분석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7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 테헤란의 석유 저장 시설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은 지역 분쟁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시장과 금융시장을 동시에 강타했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전방위적이었다. 국제유가는 한때 배럴당 120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에 20% 이상 급등한 날도 있었다. 코스피를 비롯한 주요국 증시도 연일 요동치고 있다. ‘전쟁 → 유가 상승 → 인플레이션 압력 →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라는 연쇄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미국ㆍ이스라엘의 침공이 이란의 지정학적 입지와 핵주권 의지 및 반미친중 노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점이다. 에너지의 글로벌 수출ㆍ수입 구도,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약화 등이 겹쳐져야 윤곽이 뚜렷해진다. 전쟁의 ‘진짜 전선’은 에너지 공급망과 달러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이고, 이란은 미중 경쟁이 필연적으로 내포한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간접적으로’ 현실화한 결절점 중 하나다.


전쟁이 경제로 번지는 방식

전쟁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은 건 에너지시장이었다. 특히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 주변에서 무력 충돌 가능성이 커지자 국제유가는 곧바로 수직상승했다. 걸프 지역에서 생산되는 액화천연가스(LNG)의 대부분도 이 항로를 이용한다.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 수준에서 움직일 수 있고, 해협이 완전히 봉쇄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200달러에 육박할 거란 우려까지 나온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석유는 생산ㆍ운송ㆍ소비 등 거의 모든 경제활동의 필수 요소여서 유가 상승은 단순한 시장가격 변동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전반을 옥죄는 중요한 변수다. 당장 물류비와 전력요금, 공산품, 식료품 등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유가가 10% 비싸지면 글로벌 소비자물가는 평균 0.3~0.4%포인트 상승한다. 이번 전쟁으로 70달러대이던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120달러에 근접했던 만큼 이미 많은 국가들이 인플레이션 압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가 상승은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을 자극하고 금융시장의 자금 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자극을 받으면 시장이 기대하는 금리인하 시점은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에 금리인하를 강권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장과 배치된다. 또 글로벌 투자자들이 위험자산보다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더 뚜렷해진다. 실제로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달러인덱스 상승이었다.

달러 강세는 미국 국채시장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자들이 막대한 자금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시장은 26조 달러(약 3경8,456조 원) 규모의 미국 국채시장이 거의 유일하다. 국채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은 오르고 금리는 낮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물가 부담이 커지면 장기금리는 되레 상승할 수 있다. 최근에 달러 강세와 국채 금리 상승이 동시에 나타난 이유다. 강달러 역시 트럼프의 제조업 부흥 및 수출 확대 기조와는 배치된다.

11일 호르무즈해협을 항해하던 태국 화물선 마유래 나래호가 공격당한 모습. 스플래시247닷컴

이처럼 전쟁은 특정 지역의 정치 문제를 훨씬 넘어선다.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고, 물가와 금리 기대를 바꾸고, 글로벌 금융시장과 통화 흐름을 좌우한다. 결국 중동전쟁은 국제유가 상승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라는 연쇄 반응을 통해 세계 경제 전체로 확산되는 구조를 갖는다. 전쟁은 결코 전장(戰場)에서 끝나지 않는다.


美의 ‘달라진’ 에너지 전략

미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었다. 중동 안정이 외교의 핵심 과제였고,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 등은 상당 부분 에너지 공급망 안정이라는 전략적 목표와 맞물려 있었다. 그러다 2010년내 들어 ‘셰일 혁명’이라 불리는 에너지 기술 혁신을 통해 하루 최대 1,300만 배럴까지 생산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LNG 수출량도 연간 9,000만 톤에 달한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바뀐 이러한 변화는 유관 산업의 성장을 넘어 지정학적 의미가 크다. 당장 중동에 대한 전략적ㆍ외교적 비중이 낮아졌고, 이는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집중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또 에너지가격이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치는 상황에서 가격 상승의 충격파를 이전보다 훨씬 덜 받게 된 만큼 에너지시장 자체를 지정학적 영향력 행사의 도구로 인식하게 됐다.

실제 에너지시장은 국제 금융 질서를 떠받치는 구조와 깊이 연결돼 있다. 현재 국제 원유 거래의 약 80%가 달러로 결제되는 페트로달러 체제는 중동 산유국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국채 매입 등에 투자함으로써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2018년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시장을 개설하면서 이 구조에 균열이 가해졌다. 러시아ㆍ베네수엘라ㆍ이란 등 서방의 제재를 받는 산유국들은 위안화 결제로 경제의 숨통을 틔웠고, 중동 맹주를 지향하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일부 위안화 결제를 시작했다. 물론 국제 에너지 거래의 대부분은 여전히 달러로 이뤄지지만, 위안화 결제 실험의 점진적인 증가는 페트로달러 체제의 장기적 안정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의 한 셰일 유전에서 시추가 진행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 때문에 미국의 에너지 전략은 금융 패권을 방어하는 핵심 도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에너지가격이 세계 경제와 인플레이션, 금리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에너지시장의 흐름이 글로벌 금융시장과 달러 수요를 움직이는 중요한 변수라는 점에서다. 셰일혁명은 전략적 선택지를 넓힌 계기였고, 트럼프의 ‘에너지 지배 전략’은 최상위 에너지 공급국 지위를 확보해 글로벌 공급망과 가격 구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달러 패권을 지속시키겠다는 계산이다. 미국의 에너지 전략은 에너지 패권을 통해 금융 패권을 유지하려는 지정학적 전략의 한 축인 셈이다.


에너지와 통화, 美中 경쟁

이번 전쟁의 무대는 중동이지만, 그 파장은 에너지시장과 금융시장을 거쳐 글로벌 패권 구조에까지 이어진다. 전쟁 발발과 진행 과정과 전후 질서 재편 등을 들여다보고 전망하는 과정에 미중 전략 경쟁을 투영시켜야 하는 이유다.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 중 하나이고,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다. 에너지시장의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각각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가 바로 미국과 중국이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주지하듯 에너지시장은 자원 거래에 그치지 않고 국제 통화 질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한때 90%를 넘었던 페트로달러의 비중이 80%대로 낮아지는 사이 페트로위안이 5~7%를 점했다. 여전히 달러의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감소세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대중 견제가 제조업뿐 아니라 달러 패권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의 한 축에는 에너지시장에서의 미묘한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에너지시장의 성격상 그 파급력은 숫자 이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페트로위안 시스템 구축에 공을 들이는 건 국제 사회에서 금융 제재가 군사력 못지않은 강력한 무기로 활용되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려는 일부 산유국의 이해관계를 적극 활용해 중장기적으로 달러 패권을 대체할 새로운 통화 질서 구축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중국에 이란은 페트로위안 시스템 안착을 위한 주요 대상국 중 하나다. 미국의 이란 침공이 중국 봉쇄를 의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였다.

2023년 2월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에브라힘 라이시 당시 이란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인민해방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뉴시스

중동은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절반이 집중된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이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은 에너지시장뿐 아니라 국제 금융 시스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전쟁은 에너지 공급망의 안정과 통화 질서를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구조(構造) 속에 위치해 있다. 미국과 중국이 각자 에너지시장과 금융 시스템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가운데 이란이 핵심 무대가 된 것이다. 전장의 위치는 중동이지만 그 파장은 세계 경제 질서 전체로 확산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글로벌 패권 경쟁의 양상은 어떤 식으로든 점차 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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