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의 전략적 침묵? ‘기본사회’는 뒤로, ‘금투세’는 깜깜무소식

변문우 기자 2026. 3.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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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메시지’ 주식·부동산과 온도 차…여론은 李 기조에 호응 왜?
與 내부에선 “李는 ‘옳은 정책’ 보단 ‘지금 필요한 정책’에 집중”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경제를 살리는 데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 민생을 살리는 데 색깔이 무슨 의미인가. 진보 정책이든 보수 정책이든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하자."(지난해 2월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민주당은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다. 우리 당은 (집권 후에도) 중도보수 정권으로 오른쪽 포지션을 맡아야 한다.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지난해 2월18일 유튜브 '새날' 인터뷰)

1년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시절 이재명 대통령이 발신했던 '실용주의'와 '중도보수론' 기조가 집권 후 한층 더 강해지는 모습이다. 눈에 띄는 점은 국정 동력이 가장 큰 시기임에도 자신의 간판 공약이던 기본사회 시리즈와 복지 정책은 상대적으로 후순위 배치하고, 대신 주식 투자 활성화와 원전 활용, 규제 완화, AI(인공지능) 등 경제·산업 성장 정책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강조하며 연일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외치고 있다. 반면 코스피 6000 시대가 열렸음에도 진보진영에서 도입을 촉구해온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논의에는 전략적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인사에서도 이 기조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앉히려 한 데 이어 이번에는 보수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를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파격 발탁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중도보수 깃발을 높이 드는 데는 여러 전략적 배경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①외연 확대(국민의힘이 계엄 사태 이후 오른쪽 끝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정치적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계산) ②실용주의 노선(민생과 경제를 위한 특유의 '흑묘백묘론'이 국민 다수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판단) ③지방선거 노림수(선거에서 더 많은 지지층을 포섭하는 데 유리하다는 선택) 등 다목적 포석이라는 것이다.

ⓒChatGPT 생성이미지

李, 중도보수·실용주의 강조…호응하는 여론

"주식시장 개혁, 자본시장 선진화, 주택시장 안정, 부동산 투기 공화국 탈출은 앞으로도 쭈욱 계속된다." 2월26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처럼 최근 이 대통령이 생중계 국무회의나 SNS를 통해 직접 발신하는 메시지를 보면 국정의 우선순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자신의 시그니처 정책이었던 '기본사회' 시리즈 공약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반대 모습이다. 공식 석상이나 SNS 메시지에서 기본사회라는 키워드 발신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물밑에서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를 꾸리고 국회에 입법을 맡기며 조용히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의 전략적 침묵은 기본사회뿐만이 아니다. 대표 사례가 금융투자로 발생한 이익에 대해 과세하는 금투세다. 이 대통령은 2024년 당대표 시절 여야 합의로 금투세를 유예하면서 코스피 지수가 4000대 이상으로 올라가면 금투세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여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최근 코스피가 6000선을 넘나드는 상황임에도 이 대통령은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정부 역시 "별도 검토 중인 부분은 없다"(구윤철 재정경제부 장관)는 입장이다.

이러한 침묵은 이 대통령이 연일 SNS에 '1일 1메시지'로 부동산 시장 정상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주식시장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금투세 도입 논의는 서두르지 않는 대신, 여론 호응을 얻고 있는 부동산 시장 정상화에는 계속 강한 의지를 피력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에너지 정책에서도 기존 '탈(脫)원전' 중심 기조에서 방향을 틀었다. 신규 원전(대형 원전 2기, 소형모듈원전 1기 규모) 건설을 원안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이와 관련해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시사저널에 "이 대통령이 국정을 다루면서 실무적인 부분에서 각종 의견 수렴과 여러 채널을 통해 에너지 믹스에 대한 정보를 얻고 확신이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런 행보는 이전의 진보 정권과 차별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금투세와 탈원전은 문재인 정부의 노선을 대표하는 정책이었다. 

이 대통령의 중도보수 노선은 인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이혜훈 카드'는 정치권 전체에 큰 충격파를 안겼다. 이 대통령은 최근 보수진영의 대표적 학자였던 이병태 교수를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여기에 삼성전자 출신의 기업인 남궁범 에스원 사장과 삼성 저격수이자 비명(非이재명)계 대표 주자로 평가받던 박용진 전 의원을 같은 자리에 함께 기용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운동장을 넓게 쓰겠다는 뜻을 재차 천명한 셈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3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해 머리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K자형 양극화'인데 '서민 목소리'는 어디?"

이 대통령의 이런 기조는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다. 주요 여론조사 지표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대부분 60%대를 기록 중이다.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관련해 박정현 민주당 의원은 "좌우, 보수와 진보, 세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이 대통령 지지가 많은 이유는 결국 '정치적 효능감'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며 "이 대통령은 '내(정치인)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가 아니라 '지금 국민이 필요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박수를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의 중도보수 노선은 '보수 1당' 국민의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이 선점해온 경제 성장과 시장 친화적 의제를 정부가 먼저 추진하면서 야권이 차별화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 야권 내부에서는 언제든 추가로 인재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의힘 서울 당협위원장은 "당의 내홍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중원으로 넘어와 인재를 끌어당기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대통령의 기조에 대한 여론의 호응이 높아 정국 주도권은 한동안 계속 이 대통령이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대통령 집권 후 효능감을 느끼고 유입된 새 지지층인 이른바 '뉴이재명'은 민주당의 새로운 지지층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과 다른 결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물론 기존 여권의 핵심 스피커 역할을 해온 방송인 김어준씨와의 갈등도 불사하며 이 대통령 지킴이를 자임하고 있다. 분란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그만큼 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한층 더 공고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중도보수론이 지지층을 전략적으로 확대시킨 만큼, 민주당은 대통령 중심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짚었다. 우려의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작년 4분기 성장률(-0.2%)이 마이너스일 만큼 한국 경제의 'K자형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지금 여권 전체가 계속 주식과 부동산의 수치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면서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을 자임하는데, 자칫 '서민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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