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의 '味학', 커피에 집중하다…아돌프 로스의 카페 뮤지엄 [커피와 공간 '끽(喫)']

서윤경 2026. 3.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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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카페 뮤지엄 이야기]
박물관 밀집한 거리에 자리…제체시온 전시관·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
예술과 일상 결합한 제체시온 운동 일어난 빈…건축물도 예술과 결합
로스, '장식은 죄'라며 제체시온에 반대…카페 뮤지엄 인테리어에 반영
제체시온 운동 앞장선 클림트·에곤 쉴레 등 단골…커피와 사람에 집중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뮤지엄은 장식이 화려하지 않은 게 특징이자 장점이다. /사진=서윤경 기자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지나치게 직관적이다.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카페 이름 얘기다. 주변에 박물관이 많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유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뮤지엄(CAFÉ MUSEUM) 얘기다.

앞서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가들의 건축이 미술관, 박물관이 되고 카페가 들어선 것과 달리 아예 이름부터 박물관이다.

카페 이름이 성의 없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화려한 주변 건물과 달리 밋밋하다. 지금도 그런데, 처음 카페 문을 열었을 땐 오죽했을까. ‘카페 니힐리즘(카페 허무주의·Café Nihilism)’이라 불리며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됐다.

늘 그렇듯 생긴 것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을 구성하고 메뉴를 제공하는 데 들인 공은 직관적이지도, 성의 없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이해하려면 ‘경험’해야 한다”는 커피하우스에 대한 오스트리아 관광청의 자신있는 제안은 어쩌면 카페 뮤지엄을 두고 한 말일 지도 모르겠다.

잔 부딪히는 소리가 퍼지는 ‘박물관’

카페 뮤지엄의 빨간색 표지 메뉴판과 에스프레소.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뮤지엄의 가치는 우연히 알게 됐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철학과 함께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역임한 데다 카페 뮤지엄이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학술예술 1급 십자훈장을 받은 승효상 이로재 대표를 통해서다.

건축과 커피의 유사성을 느끼고 확인하던 중 “꼭 가 보라"고 했다.

그는 “카페라는 공간은 혼자건, 여럿이건 커피를 마시는 풍경 자체를 문화로 만드는 곳이다. 건축은 바로 그런 풍경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풀이를 건넨 뒤 “단순한 내부 공간에서 굴곡진 테이블과 천정은 비좁은 공간임에도 서로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며 카페 뮤지엄을 설명했다.

카페 뮤지엄도 자신들의 카페 공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감각을 만족시키는 걸작입니다…매력적인 페이스트리가 진열된 곳, 바로 옆 커피 머신은 설득력 있는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커피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고 찻 숟가락이 달그락거리며 우아한 웨이터가 맛있는 커피를 서빙할 겁니다.“

카페 뮤지엄은 자신들의 공간을 "커피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고 찻 숟가락이 달그락 거리며 우아한 웨이터가 맛있는 커피를 서빙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공간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커피 자부심도 있다. 빨간 색 표지의 메뉴판엔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비엔나 커피하우스의 커피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다. 카페 뮤지엄은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있고 우수한 로스팅 사이클을 통해 특별하게 준비되고 있다”며 메뉴를 소개한다.

첫 손에 꼽은 건 빈의 전통이 된 ‘비엔나 멜랑즈(Wiener Melange)‘다. 빈에서 흔히 마시는 비엔나 멜랑즈는 한 샷의 에스프레소에 스팀우유와 우유 거품을 올린 커피다.

특선 커피라며 ‘돌진한 노이만‘이라는 뜻의 우베르스튀르츠터 노이만도 소개했다. 카페 헤렌호프의 단골 손님이던 성격 급한 노이먼이 커피를 빨리 마시겠다며 제안한 방식이다. 블랙커피 위에 휘핑 크림을 얹은 아인슈패너의 제조 순서를 반대로 했다. 그래서 ‘아인슈패너의 독특한 형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박물관이 보이는 ‘박물관‘

카페 뮤지엄은 1899년 오페른가세와 프리드리히슈트라세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졌다.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뮤지엄은 1899년 도로명 오페른가세와 프리드리히슈트라세가 만나는 모퉁이 건물에 문을 열었다.

이 곳은 '황금 양배추'라는 애칭이 돋보이는 빈 분리파의 제체시온 전시관,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이라 불리는 비엔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 극장, 야수파·인상파·제체시온 등 다양한 학파의 작가 샤갈·피카소·세잔·뭉크·칸딘스키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알베르티나 박물관이 인접해 있다.

카페 뮤지엄은 홈페이지에 카페 위치를 설명하면서 조금은 특별하게 주변 미술관과 극장 등을 소개한다. 비엔나 슈타츠오퍼는 비엔나궁정오페라, 알베르티나 박물관은 퀸스틀러하우스라고 소개했다. 카페가 문을 열 당시 명칭이다.

카페 뮤지엄은 1899년 오페른가세와 프리드리히슈트라세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지면서 내부 공간이 삼각뿔처럼 구성돼 있다. 디저트가 있는 쇼케이스(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우로 매장이 갈라진다.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의 입구는 두 도로가 만나는 꼭짓점에 있다. 그러다 보니 내부 구조도 L자형이다. 디저트가 전시된 쇼케이스 등이 꼭짓점에 자리하고 양옆으로 갈라진 공간에 테이블이 있다. 둥그렇게 구부린 나무 의자와 둥그런 인조가죽 의자, 은색 공모양의 조명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미술관 속 ’박물관’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에곤 쉴레 컬렉션과 함께 빈 분리파를 대표하는 구스타프 클림트 등의 작품들이 있다. 레오폴트 미술관에 있는 에곤 쉴레의 '중국등나무가 있는 자화상'(왼쪽)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죽음과 삶'(Tod und Leben).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뮤지엄이 박물관이 밀집된 이 곳에만 있는 건 아니다.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에도 있다.

이 미술관은 안과 의사인 레오폴트라는 인물이 50여년간 수집한 5000여점 이상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빈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인데 에곤 쉴레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곳에 카페 뮤지엄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술관에 입점한 게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으로 전시돼 있다. 이는 카페 뮤지엄을 가야 할 또다른 이유를 보여 준다. 그저 커피가 아닌, 공간에 대한 이야기여서다.

쉴레의 주요 작품, 빈 분리파(제체시온) 작품이 있는 3층을 지나 4층으로 가면 홀 중앙에 건축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 곳에서 카페 뮤지엄의 공간과 그 공간을 만든 사람, 아돌프 로스를 소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레오폴트 미술관 4층에는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인테리어한 카페 뮤지엄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이 있다. 사진 아래는 로스의 의뢰로 오스트리아 목재 기술자 미하엘 토네트가 만든 카페 뮤지엄의 가구들. /사진=서윤경 기자

당시 로스는 근대 합리주의에 입각해 건축물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건축을 맡긴다는 건 모험이었다.

오스트리아 예술계는 빈을 중심으로 클림트 등이 이끄는 제체시온 운동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과 기술을 결합시켜 모든 일상 오브제들의 형태를 예술적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게 이 운동이었다. 건축도 다르지 않았다. 예술과 결부시킨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로스는 제체시온 운동을 불편해 하며 전혀 다른 방식의 디자인과 건축 형태를 제시했다.

한 언론 기사에서 그는 “예술보다는 인간이 편한 방식에 따라 건축과 가구 등의 형태를 결정해야 한다”며 제체시온 운동을 부정하며 의자를 예로 들었다.

예술가들이 의자를 만들면 형태는 독창적이고 아름답지만, 앉기에는 불편해 의자의 본래 목적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건축 역시 건축가가 아닌 거주자가 가구 등 오브제들의 형태와 배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봤다.

이는 1908년 그의 논문 ‘장식과 죄(Orna ment und Ver b rechen·1908)'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카페 뮤지엄은 '장식을 죄'로 본 그의 신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대표작이었다.

카페 뮤지엄이 있는 프리드리히슈트라세 도로 끝자락에 있는 제체시온 미술관. /사진=서윤경 기자

로스가 기사에서 말한 그 의자는 카페 뮤지엄에 그대로 구현됐다. 로스의 의뢰로 독일 출신 오스트리아 목재 기술자 미하엘 토네트가 만든 둥그렇게 구부린 단순한 나무 의자는 당시 관습처럼 자리한 고급 가구와는 완전히 모순된 형태였다. 이는 커피하우스 디자인에 진정한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레오폴트 미술관에 가면 카페 뮤지엄에 설치된 바로 그 토네트의 의자를 만날 수 있다.

모험에 가까웠던 로스의 건축과 인테리어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었다. ‘스캔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정도로 예술가들이 몰려왔다. 놀랍게도 로스가 불편함을 드러내던 제체시온 작가들이 카페 뮤지엄을 사랑했다. 클림트, 페터 알텐베르크, 로베르토 무질과 쉴레 등이 이곳을 찾았다.

승효상 대표는 “그 동안 건축의 중심은 형태나 장식이었는데, 그는 공간을 중심으로 건축했다. 카페 뮤지엄은 커피를 위한 공간을 만들려던 로스의 건축 양식을 만날 수 있다”고 사람들이 카페 뮤지엄을 사랑한 이유를 풀이했다. 이어 “단순한 내부 공간에서 굴곡진 테이블과 천정은 비좁은 공간임에도 서로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31년 조티는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면서 둥그런 가죽 의자와 은구 조명을 설치했다. 2003년 로스의 초기 디자인을 재현하면서 지금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이후 카페 뮤지엄 속 로스의 인테리어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화를 거듭했다. 1911년 유겐트 슈틸(젊은 양식)의 건축가인 요제프 조티가 카페 뮤지엄 밖 도로 위에 야외 테이블인 ‘샤니가르텐‘을 만들었다. 클림트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1931년 내부 인테리어에도 변화를 줬다. 토네트의 의자와 함께 현재 우리가 만나는 둥그런 인조가죽 의자, 은색 공모양의 조명이다. 70여년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 인테리어는 지난 2003년 로스의 초기 디자인을 재현하려던 중 위기를 맞았다.

오랜 세월 이어온 인테리어에 익숙해진 단골은 카페 뮤지엄을 떠났고 경제위기까지 찾아오며 폐쇄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새 운영자가 은구 모양의 조명과 의자 등을 부활시키며 2010년 10월 재개장하면서 단골들이 돌아왔다.

카페 뮤지엄 외부에 설치된 야외 테이블(샤니가르텐) 위로 조명불이 켜져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카페 뮤지엄은 홈페이지를 통해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나 디저트 외에도 새로운 경험을 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정기적으로 작가들을 초대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회가 대표적이다. 입장료는 무료고 고전부터 신작까지 서적도 다양하다. 따뜻한 계절이 오면 샤니가르텐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추천했다. 클림트, 쉴레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면서 전하는 메시지.

“원하는 곳에 앉아서 원하는 만큼 오래 머무르십시오. 고독하게 또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세요. 비엔나 커피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음으로 떠날 카페는 다른 의미에서 특별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과 여왕의 거대한 석상이 세워진 곳, 이집트대박물관(GEM) 속 카페다.

/그림=서윤경 기자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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