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함이 미덕인 시대, 도로에서 홀로 울부짖다 [타봤어요]

이배운 2026. 3. 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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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포츠카 명가 로터스 최후의 내연기관車 '에미라'
미드십 엔진이 만든 ‘직결감’...온몸 휘감는 드라이빙 감각
정숙성·편의성 내려놓고...운전 본연의 재미 극대화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모름지기 자동차는 정숙함이 미덕인 시대다. 대부분의 자동차가 실내외 소음을 줄이고 진동을 억제해 운전자에게 최대한 안락한 이동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정숙함의 시대에 로터스가 내놓은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 ‘에미라’는 고요한 도로 위에서 야성적으로 울부짖는 한 마리 맹수에 가깝다.

로터스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 에미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지난 12일 영국의 스포츠카 명가 로터스가 내연기관 시대에 작별을 고하며 선보인 마지막 가솔린 스포츠카 ‘에미라’를 타고 서울 강남 로터스 플래그십 전시장에서 경기 가평군까지 약 60km를 달려봤다.

외관은 마치 자동차계의 아이돌 스타를 보는 듯하다. 강렬한 붉은 색 차체는 세련되면서도 경쾌한 인상을 준다. 날렵한 ‘L’자형 LED 헤드램프와 보닛 위 공기 배출구는 기능과 미학을 동시에 잡았다. 공기가 흘러 엔진룸과 뒤쪽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된 입체적 곡선은 마치 바람과 어우러져 춤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로터스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 에미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실내에는 알칸타라와 나파 가죽이 아낌없이 사용돼 손 닿는 모든 곳의 감촉이 부드럽다. 영국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KEF 시스템의 스피커 그릴은 금속 질감을 더해 실내 분위기를 한층 고급스럽게 만든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0.2인치 터치스크린은 요즘 신차들에 비하면 특출난 수준은 아니지만 충분한 실용성을 갖췄다.

전고 1226mm의 낮은 차체 덕분에 전방 시야가 노면 가까이 깔린다. 운전자를 단단히 감싸는 시트와 조작부는 전투기 조종석에 앉은 듯한 몰입감을 완성한다. 시동 버튼을 누르려면 붉은색 플립 커버를 먼저 젖혀야 한다. 전투기가 출격을 준비하는 순간처럼 묘한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안겨준다.

로터스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 에미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영국 정통 스포츠카 브랜드인 로터스는 과거 차량에 에어컨조차 넣지 않을 만큼 극단적인 경량화를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시대 흐름에 맞춰 각종 편의 장비를 탑재하고 전동화 모델까지 도입하고 있지만 운전자와 자동차가 하나가 되는 듯한 ‘직결감’이라는 철학만큼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엑셀러레이터를 밟는 순간 로터스의 영국식 고집이 단번에 드러난다. 엔진이 움직이는 감각이 소리와 진동을 통해 운전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자동차와 운전자가 한몸이 된듯한 물아일체감의 시작이다.

로터스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 에미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비결은 엔진 구조에 있다. 대부분 자동차는 엔진이 전면 보닛 아래에 위치하지만 에미라는 엔진이 운전석 바로 뒤에 탑재된 구조다. 덕분에 터보 작동 소리와 엔진의 진동이 운전자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노면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고 도로 위를 스치듯 질주하는 감각이 더욱 극대화된다.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뒤쪽 엔진룸에서 터보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쉬익’ 하는 흡기음이 또렷하게 올라온다. 발끝의 미세한 움직임이 그대로 바퀴로 전해지는 감각이 반복된다. 자동차의 호흡이 곧 운전자의 호흡이 된다. 여기에 묵직한 유압식 스티어링까지 더해지며 차를 다루는 찰진 손맛은 더욱 강렬해진다.

로터스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 에미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자동차에서 가장 무거운 부품인 엔진이 차체 중앙에 위치한 덕분에 앞뒤 무게 균형도 이상적이다. 급커브 구간에서도 차체는 흐트러짐 없이 단단하게 노면을 붙잡는다. 고속도로 진출입 램프 구간을 돌아나올 때는 마치 도로를 다림질하며 내려오는 듯한 짜릿한 주행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체감 가속력이 유난히 경쾌한 것도 기분 탓만은 아니다. 에미라 2.0 터보 DCT 모델은 최고출력 364마력을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4.4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공차중량은 1450kg에 불과하다. 현대자동차 쏘나타 중량이 약 1440kg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납작한 차체에 출력은 2배인 에미라는 얼마나 가뿐하게 움직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로터스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 에미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차량에 탑재된 영국 KEF 오디오 시스템도 인상적이다. 거친 댄스 음악이나 메탈 음악까지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게 재생한다. 다만 이날만큼은 엔진음과 흡기음을 즐기느라 오디오 감상은 잠시 뒤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불편한 점을 본격적으로 꼽아보라고 한다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전고와 시트 위치가 너무 낮아 차에 타고 내릴 때마다 몸을 한껏 숙여야 한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운전석 레그룸도 넉넉하지 않아 왼발을 편하게 뻗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3인승은커녕 단 2명만 탈 수 있고, 그마저도 동승자는 장시간 탑승하면 적잖은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로터스 미드십 엔진 스포츠카 에미라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트렁크 공간도 협소하기 그지없다. 엔진이 뒤쪽을 차지하고 있어 책가방 3개 정도가 겨우 들어갈 수준이다. 주행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앞쪽 프렁크도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실내에 용케 컵홀더는 있지만 스마트폰이나 지갑 같은 소지품을 둘 공간도 마땅치 않다. 도어 포켓 역시 좁아 실질적인 수납 기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애초에 에미라는 실용성과 정숙성을 위해 만들어진 차가 아니다. 오롯이 운전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태어난 스포츠카다. 자동차와 한 몸이 되는 듯 물아일체의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면 이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대가다.

에미라의 가격은 1억 4990만원이다. 3억원 이상 슈퍼카에서나 기대할 법한 압도적인 실루엣과 감성을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이배운 (edu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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