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오른 산의 기억, 아들 삶에 든든한 버팀목 되길 [박준형의 아이와 백패킹]

“저희 열차는 잠시 후 구례구, 구례구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문은 진행 방향 왼쪽입니다.” 자욱한 안개가 내려앉은 아침, 고즈넉한 기차역에 무궁화호가 서서히 멈춰 섰다. 재잘거리며 대화를 이어가는 아들 서진(9)과 그의 동네 친구 주안(10)의 뒤를 따라 주안 아빠와 내가 차례로 플랫폼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여기는 왜 구례역이 아니고 구례구역이야?” 앞서 걷던 아이들의 질문에 주안 아빠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전남 순천이야. 역 앞을 흐르는 섬진강을 건너야 구례가 나오지. 여기는 구례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에서 구례구(求禮口)역이 된 거래.”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는 지리산의 서쪽 산마루, 노고단(1507m)이다. 노고단은 천왕봉(1915m)과 반야봉(1732m)에 이은 지리산의 제3주봉이다. 화엄사 코스로 노고단 고개에 올라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노고단 정상에서 일출을 맞을 계획이었다. 화엄사 코스의 들머리는 해발 240m로 지리산의 주요 등산로 중 시작점이 제일 낮다. 표고 차가 큰 탓에 화엄사~노고단 구간은 수많은 지리산 코스 중에서도 난도 높은 코스로 손꼽힌다.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쉬운 길도 있지만, 우리가 찾은 날은 ‘천은사 입구~성삼재~달궁삼거리’(14㎞) 구간이 도로 통제로 막혀 있었다. 그 때문에 이날은 치트키 없는, 진짜 등산으로만 노고단에 오를 수 있는 날이었다. 산행에 앞서 지리산 자락의 천년고찰 화엄사를 둘러보았다. 대웅전과 각황전을 천천히 돌아본 뒤, 시원한 약수 한컵을 들이켜며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되었다. “이제 한동안 주말 여행은 어렵겠네요.” 내 말에 주안 아빠의 얼굴에 아쉬움이 서렸다. “방학도 있고, 휴가도 활용하면 되죠!” 그는 이번 학기부터 한국과학기술원의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40대 초반인 그는 현재의 안정적인 직장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타개하는 방편으로 새로운 배움을 선택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산을 찾았다는 그는, 그때마다 산에서 받은 기운 덕을 톡톡히 봤다고 했다. 이번 산행 역시 인생의 전환점이 될 힘을 얻어 가는 시간이 되리라며 잔잔히 웃었다.


“아빠! 우리 좀 쉬었다 가자!” 앞서 걷던 서진이와 주안이가 배낭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어느덧 중재를 지나 집선대에 올라선 참이었다. 숨을 고르는데, 뒤따라오던 한 등산객이 말을 건넸다. “아들과 함께 지리산을 오르던 때가 생각나네요. 주말마다 왔었죠. 방학이면 종주도 했고요.” 광주에서 왔다는 50대 후반의 남성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어릴 땐 곧잘 따라다녔는데, 사춘기가 되니 힘들다며 가기 싫다더군요. 그땐 용돈으로 꾀었습니다. 하루에 2만원씩 줬어요. 당시엔 제법 큰 돈이었습니다. 2박3일 종주하면 6만원이란 거금이 생기니, 군말 없이 지리산 종주에도 따라나섰답니다.” 그의 아들은 얼마 전 군에서 전역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크게 엇나간 적은 없어요. 그럭저럭 괜찮은 부자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산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큰 몫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곤 서진이와 주안이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오후 4시,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서로의 숨결을 공유하는 평상형 대피소와 달리, 이곳은 개별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국립공원 대피소 중에서도 손꼽히는 시설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노고단 호텔’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피소 한편에 놓인 방명록을 발견한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과 흔적을 남겼다. 그 모습을 본 직원이 다가와 국립공원의 마스코트 ‘반달이’ 스티커를 건넸다. 귀여운 반달곰 선물에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짐을 풀고 취사실에 모여 식사 준비를 했다. 저녁 메뉴는 살치살과 부채살, 치마살로 구성된 한우 모둠 구이. 지글거리며 고기가 익는 소리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다. “이야, 일몰이 장관이에요!” 음식이 비어갈 즈음 누군가 외쳤다. 우린 반사적으로 수저를 내려놓고 대피소 앞 전망대에 올랐다. 붉게 물든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나는 나의 속도로, 서로의 숨을 기다려주던 걸음이 모여 이곳에 닿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되뇌었다. 언젠가 아들이 홀로 인생의 벅찬 오르막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함께 산을 오르며 다진 삶의 체력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박준형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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