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똑같은 생수' 왜 비싼가 봤더니

손유지 2026. 3. 1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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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같은 수원지, 다른 브랜드…가격차 이유는
무라벨 시대, 정보 부족에 갇힌 소비자의 생수 선택
온라인 계산서 속 ‘랜덤 수원지’ 의미와 불편한 진실
100㎖당 43원 vs 72원... 생수 가격 차이의 이면 구조

[지데일리]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500㎖ 생수 세트를 고르던 30대 직장인 장모 씨는 눈치 채지 못했다. 같은 수원지에서 떠온 물이지만, 한 브랜드는 100㎖당 43원, 다른 브랜드는 72원이었다. 

알고 보면 “똑같은 물”이지만 가격만 1.7배 이상 차이 나는 생수 시장이 한국소비자원 실태조사로 드러났다. 소비자의 선택은 브랜드 이미지와 포장지에 좌우되지만, 정작 맛도, 성분도, 수원지도 같은데 왜 2배 가까이 비싸게 팔릴 수 있는지, 그 배경과 의미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같은 수원지·성분의 생수도 브랜드별로 가격이 최대 1.7배까지 차이 나고, 수원지와 유통기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AI생성

같은 물, 다른 가격의 현실

소비자원은 이달 국내 주요 유통매장과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생수 28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수원지별 가격 차이와 표시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동일한 수원지의 원수를 사용하고 제조원과 무기물질(미네랄) 성분 함량 범위가 같은 제품이라도 브랜드별로 가격이 크게 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대표 사례로 전북 순창군 쌍치면 수원지를 사용하는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8.0’과 쿠팡 PB 상품 ‘탐사수 무라벨’이 지목됐다. 

두 제품 모두 500㎖ 40개 묶음 기준 아이시스8.0이 1만4440원, 탐사수 무라벨은 8590원으로 약 1.7배(67.4%) 차이가 났고, 100㎖당 가격으로 따지면 각각 72원과 43원에 달해 같은 수원지·성분의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간 가격 괴리가 뚜렷했다.

같은 수원지를 공유하는 다른 브랜드 간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경기 포천 수원지 제품 중 ‘몽베스트 무라벨’은 100㎖당 59원으로, 같은 수원지에서 생산된 ‘가야 워터’(48원)보다 약 22.9% 비쌌다. 경북 상주 수원지 제품에서는 ‘가야 워터’가 100㎖당 43원으로 ‘탐사수 무라벨’과 ‘마신다 무라벨’(48원)에 비해 약 11.6% 저렴한 가격을 형성했다. 

이처럼 수원지와 용량, 성분이 동일하다는 전제가 충족된 상품조차도 브랜드에 따라 단위당 가격이 최대 1.7배까지 차이 나는 구조가 시장 전반에 퍼져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됐다.

가격 차이의 배경과 시장 구조

이같은 가격 차이에는 ‘맛이나 성분 차이’가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 유통채널 구조, 마케팅 비용, 그리고 PB(프라이빗 레이블)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시스처럼 대형 음료사가 브랜드로 운영하는 제품은 TV·온라인 광고, 스포츠 후원, 리필 정수기 연계 등 마케팅·유통 네트워크에 리소스를 투입하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 비용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는 구조다. 

반면 탐사수 무라벨처럼 온라인 플랫폼(쿠팡 등)이 직접 선정해 만드는 PB 상품은 브랜드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자동화된 물류·정기배송 시스템이 효율을 높여 단가를 낮출 수 있다.

2020년대 중반 이후 1인 가구 증가와 온라인 배송서비스 확산은 이런 PB 생수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특히 ‘무라벨’ 생수는 라벨 인쇄 비용을 줄이고, 포장 단순화로 물류·환경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같은 수원지·성분임에도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브랜드 로고 하나 차이로 30~70% 이상 가격이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표시 실태와 정보 비대칭

더 큰 문제는 가격 차이보다도 정보 표시의 미흡함에서 비롯된다. 

소비자원이 온라인 판매 페이지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제품의 43%가 여러 수원지에서 생산된 생수를 무작위로 배송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 제품은 최대 9곳 수원지에서 생산된 생수를 섞어 배송하는 사례까지 보고됐지만, 대부분 온라인 설명란에는 “여러 수원지 상품이 랜덤으로 발송된다”는 문구 정도만 적혀 있어, 소비자가 어떤 수원지의 물을 마시게 되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유통기한 정보 역시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조사 대상의 64%는 온라인 판매 페이지에서 유통기한을 ‘제조일로부터 12개월’ 등으로만 표기하고, 실제 제조일은 명시하지 않아 소비자가 제품의 실질 유통기한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는 특히 무라벨 생수와 같이 용기 표면에 정보를 적어둔 제품에서 가독성이 떨어져, 소비자가 유통기한·제조일을 확인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을 악화시킨다.

무라벨 제도와 소비자 정보 권리

올해 새롭게 논의되기 시작한 ‘무라벨 생수’ 제도는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 대응 차원에서 도입된 환경 정책이다. 라벨을 붙이지 않으면 플라스틱·잉크 사용이 줄어드는 대신 제품 정보가 병마개나 용기 표면에 작게 인쇄되거나 흐릿한 각인으로 처리되면서 소비자 정보 접근성이 낮아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소비자원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무라벨 생수에 QR코드를 표기해 수원지, 제조일, 유통기한, 성분 정보 등을 모바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을 강화할 것을 사업자에게 권고했다.

이는 지난해 이후 환경 정책 강화와 소비자정보보호법 체계가 결합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정부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려는 동시에, 소비자가 더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 공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QR코드·모바일 라벨 등 디지털 표시 수단을 활용하면, 라벨 없이도 수원지, 유통기한, 제조일, 성분 정보 등을 제공할 수 있어 환경 보호와 소비자의 균형을 잡는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책과 소비자 행동에 미치는 의미

이번 조사 결과는 생수 시장이 단순한 ‘물’의 거래가 아니라, 브랜드 가치·유통 네트워크·환경 규제까지 엮인 복합 구조임을 보여준다. 수원지와 제조원, 성분이 같아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현상은 '같은 물'이라는 인식과 실제 가격 차이 사이의 괴리를 드러내며 소비자의 선택이 정보 부족 속에서 이뤄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부와 소비자원은 온라인 판매 사업자에게 수원지·유통기한 정보를 배송권역별로 명시하거나, 유통기한 범위를 예측 가능하게 공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무라벨 생수의 경우 QR코드를 통한 정보 제공 의무화 또는 가이드라인을 강화해, 소비자가 환경 이슈와 정보접근권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앞으로 생수를 고를 때 단순히 브랜드나 포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원지·성분·유통기한·단가(100㎖당 가격)를 비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물이라도 가격이 최대 1.7배까지 차이 날 수 있다는 데이터는 마케팅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 버블’을 확인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기 위한 선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소비자원의 이번 조사 결과는 지난해 이후 환경·소비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물'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상품에서도 정보·가격·브랜드 전략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