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스코프3 조기 도입…법정공시도 의무화
與, 국제 기준 맞춰 공시체계 구축
“단기적으론 기업들 부담 늘겠지만
코리아 프리미엄 형성에 도움될것”
기업 책임면제 ‘세이프 하버’ 도입
갑작스런 로드맵 개정에 재계 속앓이
“협력사 탄소배출까지 어떻게 챙기나”

더불어민주당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가운데 스코프3(공급망 전반 탄소 배출량) 적용 시점을 앞당기기로 가닥을 잡았다. 당초 3년이던 유예 기간을 줄여 시행 시점을 최대 2년까지 단축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둔 것이다. 거래소 공시로 예상됐던 ESG 공시는 법정 공시로 강화하고 공시 대상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 전체로 넓히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정무위 간사를 맡고 있는 강준현 민주당 의원은 “박 의원이 발의를 준비 중인 안을 놓고 이달 중으로 금융위원회 등 정부와 당정 간담회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공시 기준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표준과 맞추는 데 있다. 지난달 금융위가 발표한 로드맵은 기업의 충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도입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취지였는데 민주당은 국제 기준 정합성을 최우선 목표로 방향성을 재설정했다. 금융위의 안은 △2028년 자산 총액 30조 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기업부터 ESG 공시 적용 △법정 공시 대신 거래소 공시부터 시행 △스코프3 적용은 3년 유예 등이 골자다.
민주당은 ‘ESG 공시가 국제 정합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무 혹은 권고 사항을 개정안에 반영한다. 현재 스코프3의 유예 기간을 1년으로 두고 있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기준을 따르자는 취지다. 기존 금융위 안(3년 유예)보다 2년 앞선 것으로, 이에 따라 스코프3의 의무화 시점은 2031년에서 2029년으로 앞당겨지게 된다. 다만 구체적인 공시시점은 시행령을 통해 구체화될 전망이다. 개정안 진행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구체적인 시점을 법안에 명시하기는 어렵지만 스코프3 유예를 1년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공시 방식도 한국거래소 공시 대신 법정 공시로 정했다. 법정 공시는 위반 시 과징금 및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반면 거래소 공시는 제재금과 벌금이 적용돼 기업의 부담이 작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이번 개정안은 법정 공시를 활용해 법률에 기반한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항을 적용받게 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고의성이 없는 공시의 오류에 대해서는 3년간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등 기업의 소송 리스크를 줄이는 데 집중하며 소송 등 기업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목표다.
민주당은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공시 의무화 기업을 늘려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로 확대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일부 대기업만 공시 의무를 지게 될 경우 중견·중소 상장사가 오히려 투자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더불어민주당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도입 속도를 높이려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과 함께 기업의 투자 매력을 높이겠다는 판단에서다. 단기적으로는 기업 부담이 늘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 유치와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재계에서는 “준비 기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속도를 높이면 전후방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민주당은 최근 투자 업계와 기업 의견을 수렴한 결과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ESG 공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코리아 프리미엄’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는 물론 해외 투자자들도 ESG 공시 수준을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어 공시 도입이 늦어질수록 기업 경쟁력이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일반적으로 세 단계로 나뉜다. 기업이 공장에서 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직접 배출하는 탄소는 ‘스코프1’, 전력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은 ‘스코프2’로 분류된다. 반면 스코프3는 협력 업체 생산 과정, 물류·운송, 제품 사용과 폐기 과정 등 기업의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배출량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동섭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장은 최근 박상혁 민주당 의원 주재로 열린 ESG 공시 토론회에서 “내부 기준상 ESG 공시를 시행한 기업에 대한 평가가 더 높고 이에 따라 투자 비중도 늘어나는 구조”라며 “공시 후발 기업들은 투자 유치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 업계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온다. 임대웅 BNZ파트너스 대표는 “ESG 공시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장 전반의 새로운 국제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여기서 뒤처진다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스코프3 공시에 대해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기업의 혁신 수준과 공급망 관리 능력을 평가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스코프3 시행을 이르면 2029년으로 앞당기려는 것도 이런 판단에 따른 것이다. 스코프3는 산정이 까다롭고 기업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국제 기준에 맞춰 공시 체계를 조기에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장기간 논의를 거쳐 마련한 ESG 공시 로드맵에 여당이 갑작스럽게 손을 대는 것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ESG금융추진단 회의에 참여해 온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여러 기관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로드맵을 갑자기 바꾸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스코프3는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충분한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국가들 간 공시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일본과 호주는 스코프3 도입을 1년 유예해 2029년 시행할 계획이지만 캐나다는 3년 유예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년 유예를 적용하되 시가총액 상위 기업에만 공시 의무를 부여한다. 재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공장의 전기 사용량(스코프2) 측정조차 힘겨워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수만 개 협력사의 탄소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검증하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입법 과정에서 산업계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건율 기자 y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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