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무력 충돌의 장기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동 의존도가 높은 국내 건설사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쟁 기간과 확전 여부에 따라 국내 건설사에 미칠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주요 건자재와 장비, 인력 공급이 지연되고 중동 주요국의 건설 투자와 발주 계획이 중단되거나 연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국내 건설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안정화 이후, 석유 공장 시설 인프라 및 토목·건축 등 시설에 대한 '전후 재건 사업' 수요가 기회적 요인이 떠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해외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E&A, 삼성물산 등이 중동에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이라크 신항만 프로젝트를, 삼성E&A는 사우디 파딜리 가스 증설 사업과 카타르 에틸렌 저장 설비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건설은 사우디에서 자푸리 유틸리티 현장과 380kV 송전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라크에서는 해수처리시설 공사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들 현장에서 대규모 공사 중단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일부 현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공정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길어지고 확전되면…"건설사들 울상"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공급망 차질이다.
특히 국내 수입 원유의 약 7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해상 물류 차질과 운임 상승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건자재와 장비, 인력 공급이 지연되면서 공사 기간 연장과 공사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국제 유가는 전쟁 상황에 따라 요동치고 있다. ICE선물거래소에서 12일(현지시간) 브렌트유 5월 인도분 선물은 9.22% 급등한 배럴당 100.46달러를 기록했다. 종가기준 100달러를 넘어선 건 2022년 8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이후 처음이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9.72% 급등한 95.73달러로 마감했다.
정지훈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 연구위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국제 유가 상승과 해상 운임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수행 중인 프로젝트 현장에서는 공기 연장과 공사비 증가 등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충돌이 중동 주변 국가로 퍼질 경우 중동 주요국 내 건설 투자 및 발주 계획을 중단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국내 건설사가 수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카타르 등에서 낙찰자 선정 일정이 지연되거나 연기될 수 있다.
손태흥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기술·관리연구실 실장도 확전에 따른 영향에 대해 "해외 주변국으로까지 확전될 경우 확실히 건설사들에게는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전엔 영향력 제한적"…재건 사업 기회도
반면 전쟁이 단기전에 그칠 경우 건설사들에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중동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의 중동 지역에 대한 누적(1966년~2025년) 수주 비중은 48.9%(5127억달러)였지만 최근 5년간(2021년~2025년) 비중은 약 34.6%(620.5억달러)으로 감소했다.
최근 5년간 국가별 수주 비중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53.8%)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카타르(18.6%), UAE(11%), 이라크(7.9%)가 뒤를 이었다.
중동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는 배경으로는 ▲중국·인도·이집트 등 현지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으로 인한 중동 수익성 악화 가능성 확대 ▲지속되고 있는 중동 내 지정학적 리스크 ▲중동 주요국의 현지화 제도 강화 등 사업 환경 변화가 꼽힌다.
또 앞선 사례들로 미루어 보아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닫지 않을 경우 국내 건설사들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정 연구위원은 '최근 중동 상황이 해외건설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중동 내 수주를 비롯한 해외건설 수주액에 대한 과거 주요 이벤트가 국지적 양상으로 국한되거나, 그 기간이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은 경우, 해외건설 수주액이 급감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손 실장은 "1~2주 안에 전쟁이 종료 되고 확전이 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면 단기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해외 건설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국내 건설사들에게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충돌이 끝나 안정화 시기가 찾아오면 석유 인프라 시설 및 토목·건축 시설에 대한 전후 재건 사업 수요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연구위원은 "국제 유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중동 산유국을 중심으로 인프라 발주 확대 등 사업 환경이 개선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란 국기 앞에 3D 프린터로 제작한 원유 시설 모형이 놓여 있는 일러스트. / 사진 = 뉴스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