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가 겨눈 판사의 양심

모성준 고법판사(사법연수원 교수) 2026. 3.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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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수십 년간 대법원은 정당한 사유에 종교적 신념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확인해왔다. 이에 따라 하급심 판사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임을 자처하며 병역을 거부한 청년들에게 대법원 판례에 따라 기계적으로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다수 판사들은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대체복무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무조건 처벌하는 구조가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이에 대법원 판례와 충돌하더라도 자신의 양심을 따르기로 한 판사들은 소신껏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이러한 판결들은 상급심에서 예외 없이 파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에서의 무죄 선고는 계속해서 쌓여갔다. 결국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변경하고 종교적 신념을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는 소신 있는 법관의 양심이 확립된 판례를 어떻게 바꾸어 내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법률이 모든 구체적인 상황을 예정하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에, 실제 사건에서 법률이나 판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때 합당하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률문언만으로 합당한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법관에게, 엄밀하게는 그의 양심에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법왜곡죄가 도입된 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만약 과거 대법원이 병역법 판례를 변경하기 전에 법왜곡죄가 존재했다면, '정당한 사유'를 확대 해석하여 무죄를 선고한 판사들은 '법대로' 판단하지 않고 법률을 부당 해석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을지도 모른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판사들이 대법원 판례에 반하여 일방 당사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불합리를 시정하고 정의를 선언하고자 하는 판사의 소신은, 수사기관이 사후적으로 판단하게 될 '법왜곡'이라는 미명 아래 한순간에 소멸할 위험에 처했다. 상급심에서 결론이 번복될 경우 수사기관의 조사대상이 될 가능성에 직면한 판사들로서는, 판례에 맞서는 시도 자체를 꺼릴 수밖에 없다. 특히 대법원 판례가 확고하게 존재하는 영역에서 하급심 판사의 재량은 극단적으로 축소될 것이며,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을 통해 대법원을 통제하려는 영역에서 대법관의 재량 또한 크게 위축될 것이다. 결국 판사들은 애써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거나 법리를 개발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자신의 판단이 수사기관을 통제하는 권력자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지를 먼저 살필 것이다.

판사들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절차를 진행하는 것조차 처벌받게 될 위험에 직면하면서, 불의한 자들은 '내가 승소할 것이 확실한데, 왜 법을 왜곡하느냐'며 판사를 압박하기 시작할 것이다. 불의한 자들이 내세우는 '법대로'에 맞설 수 없게 된 판사들이 법률과 판례에 갇히게 되면, 현실과 법률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는 영영 자취를 감출 것이다. 불의한 자들의 '법대로'가 판사의 양심보다 우위에 놓이는 순간, 기계적인 논리로만 작동하는 사법시스템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임이 분명하다. 아울러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고, 체계적 법리를 발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온 판사들의 노력은 모두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이때 아무런 고민 없이 불의한 자들에게 유리한 결론만을 기계적으로 내주는 판사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이라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법률 문언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법시스템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불완전한 법률과 정의로운 결론을 연결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부터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발견해 냈던 판사들의 양심과 같은 것으로, 지금의 법왜곡죄가 헌법조항을 정면으로 위배하면서까지 앞장서 처단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모성준 고법판사(사법연수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