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전기료, 낮엔 내리고 밤엔 올리고
낮 최대 82원 인하, 밤엔 65원 인상

정부가 1977년 이후 49년 만에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한다. 전력이 부족하던 시절, 기업의 전력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낮 시간대 전기 요금은 높게, 밤 시간대 요금은 낮게 유지하던 관행을 깨고 ‘낮은 싸게, 밤은 비싸게’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태양광 발전량이 쏟아지는 낮 시간의 전력 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계 부담도 완화하는 효과를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공사는 13일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300kW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산업용(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계절·시간대별 전기요금 개편안’을 확정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전기 요금이 가장 비싼 최대부하 구간을 낮 시간대에서 밤 시간대로 옮긴 것이다. 태양광 발전이 피크에 달하는 오전 11~12시, 오후 1~3시는 중간요금 구간으로 바뀐다. 반대로 해가 지고 화석 연료 발전이 집중되는 오후 6~9시가 최고 요금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전력 단가가 가장 비싼 여름철을 기준으로, 오전 11시~낮 12시와 오후 1~3시에 전기를 쓰는 기업은 개편 전보다 계약별로 kWh(킬로와트시)당 70.3~82.1원의 인하 효과를 본다. 반면 여름철 오후 6~9시는 전기 요금이 kWh당 53.4~65.2원 인상되는 구조다. 기업들의 낮 시간대 전기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한 인센티브인 셈이다.
이번 개편의 직접적 계기는 태양광의 역설이다. 기후부에 따르면, 2023년 대비 2025년 전력 출력제어(발전 강제 축소) 횟수는 41배(2→82회), 제어량은 365배(0.3→109.4GWh) 폭증했다. 태양광이 쏟아내는 낮 시간 전기를 전력 계통이 감당하지 못하면서 원자력·석탄 등 기저발전을 강제로 줄이는 일이 일상화된 것이다.
◇정부 “사업장 97% 전기료 혜택”… 철강·시멘트 업계는 “아쉽다”
현행 산업용 전기 요금 구조는 1977년에 설계됐다. 낮 시간대 전기 수요가 높고 대형 화력 발전이 주력이던 시절, 낮에는 비싸게 해서 소비를 억제하고 밤에는 싸게 해서 수요를 분산시키는 논리였다. 그러나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면서 낮에는 전기가 남아돌지만 요금이 비싸서 소비가 줄고, 저녁에는 싼 요금이 소비를 끌어올리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됐다. 정부가 이번 개편에 대해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춘 가격 신호 정상화’라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한 요금 조정이 아니라 전력 소비 패턴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낮·밤 구조도 바뀌지만 단가도 일부 조정된다. 최저 요금 구간은 kWh(킬로와트시)당 5.1원 오른다. 반면 최고 요금 구간은 여름·겨울철 16.9원, 봄·가을철 13.2원 내려 평균 15.4원 인하된다. 봄·가을에는 추가 할인도 도입된다. 봄·가을에 태양광 발전 증가로 인한 출력 제어가 잦기 때문이다. 3~5월, 9~10월의 주말 및 공휴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전기 요금을 50% 할인한다. 이 제도는 2030년 12월 31일까지 약 5년간 운영되며, 산업계 참여 상황에 따라 연장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정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번 개편으로 산업용(을) 요금을 사용하는 사업장 4만여 곳 중 97%인 3만8000여 곳은 요금이 내려간다. 전체적으로는 전기요금이 kWh당 평균 1.7원 하락한다는 게 기후부 설명이다. 낮 조업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2.7원↓)이 대기업(1.1원↓)보다 절감 효과가 더 크다. 특히 주말이나 심야 조업 없이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에만 가동하는 사업장은 kWh당 16~18원까지 전기 요금이 내려간다.
혜택을 보지 못하는 나머지 3%는 자체 발전소를 보유한 정유·석유화학 부문 대기업들이다. 이들은 그간 낮 요금이 비싸다는 이유로 밤에 자가 발전기를 돌려왔는데, 기존 조업 방식을 고수할 경우 오히려 요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기후부 김양지 전력시장과장은 “하지만 이들 기업 역시 바뀐 요금제에 맞춰 자가 발전기 가동을 낮 시간으로 옮긴다면 충분히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산업용 전기 요금의 직접적인 인하를 기대해왔던 산업계는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다. 산업용 전기 요금은 최근 4년 만에 70% 이상 급등하며 기업들의 경쟁력을 압박해왔다. 특히 중국발 과잉 생산으로 산업 구조조정에 돌입한 석유화학 업계의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24시간 공장을 돌리는 철강, 시멘트 업종도 정부가 설명하는 절감 효과를 섣불리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심야·주말 가동 비중이 높아, 기존에 저렴했던 야간 요금이 오르면 월 전기료가 수억~수십억 원 단위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주간 전기 요금 하락률 보다 야간 인상률이 높아진다면 재무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기를 많이 쓰는 주물·단조·열처리 등 뿌리업종 중소기업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개편안은 4월 16일부터 적용된다. 다만 조업 일정 조정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산업계 의견을 반영해 유예를 신청한 기업에는 9월 30일까지 기존 요금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자체 발전 정유·석화 대기업은 혜택 못봐”
정부는 이번 개편을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춘 전기 요금 체계 개편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계절·시간대별 요금제 개편을 통해 그동안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던 재생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봄·가을철 발생하는 출력 제어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송전 비용과 균형 발전을 고려해 ‘지역별 전기 요금’ 도입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개편이 전기요금 체계의 구조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요금 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봄·가을철 태양광 과잉 문제는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 확대, 송전망 보강 등이 병행돼야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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