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사랑의 언어 / 김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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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언어를 읽다가 문득 고린도전서 13장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시의 화자는 대뜸 제목을 사랑의 언어라고 붙이고 사랑을 탐구하고 있다.
우선 사랑의 언어는 그 침묵의 끝 간 데가 어딘지 알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그렇다면 사랑은 침묵이라는 것인가? 그 끝을 알 수 없으니 무장 답답하지만, 한 편으로는 몹시 궁금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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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침묵의 끝 간 데 어딘지 알 수 없는// 너의 언어는 늘 말없음표를 거느린다// 슬픔의 폐사지에서 네 침묵을 듣는다// 마침표를 찾아서 더듬는 그 문장은// 쉼표에서 쉼표로 끝없이 이어진다// 내 아는 가장 긴 만연체 생애에 읽을 수 없다
『오늘의시조』(2026, 상반기호)
「사랑의 언어」를 읽다가 문득 고린도전서 13장이 떠오른다. 그 한 부분을 옮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13장은 말한다. 그 모든 것 중에서도 제일 가는 것은 사랑이라고. 그래서일까? 시의 화자는 대뜸 제목을 「사랑의 언어」라고 붙이고 사랑을 탐구하고 있다. 자신만의 사랑론을 펼친다. 성서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우선 사랑의 언어는 그 침묵의 끝 간 데가 어딘지 알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첫머리에서 침묵을 거론한 점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면 사랑은 침묵이라는 것인가? 그 끝을 알 수 없으니 무장 답답하지만, 한 편으로는 몹시 궁금하여진다. 그래서 너의 언어는 늘 말없음표를 거느린다, 라고 넌지시 암시한다. 그 말없음표로 인하여 어쩌면 사랑은 끝없이 지속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슬픔의 폐사지에서 네 침묵을 듣는다. 폐하여져 승려가 없는 절을 찾은 것이다. 그곳에서 무언가 얻어낼 듯한 느낌이 있어서일 터다. 이어서 문장부호인 마침표를 찾아서 더듬는 그 문장은 쉼표에서 쉼표로 끝없이 이어진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마침이 없기에 쉼표의 연속이다. 사랑의 언어가 연속된다. 끊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결구에서 단정 지어 말한다. 자신이 아는 범주 내에서 가장 긴 만연체가 사랑의 언어이므로 생애를 다해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 깊이 와닿는다.
모처럼 밀도 있고 철학적이고 개성적인 사랑론인 「사랑의 언어」와 맞닥뜨리게 되어 반가웠다. 연륜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시인이 원숙한 세계를 이렇게 열고 있는 점을 눈여겨보면서 동지애를 느낀다.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안으로 그윽하니 깊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건필할 일이다. 쓰는 일이 진정 사는 일이기에 그 행복감을 길이 품고서…….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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