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살아나는 봄… 사람도 ‘소생’ 가능할까

고혜련 칼럼니스트 2026. 3. 1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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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13)
최근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데이비드 싱클레어 미 하버드대 교수가 '수명연장'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세계정부정상회의

만물이 소생(蘇生)하는 봄이 왔다. 봄을 얘기할 때 늘 따라붙는 ‘소생’이라는 단어, “거의 죽어가다 다시 살아나다”를 뜻한다. 움트는 새싹과 함께 다시 찾아든 봄을 맞으면서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소생이 가능한가 그런 의문이 든다. 요즘 ‘역(逆)노화’라는 단어가 자주 떠도니 말이다.

어느덧 자주 드나들게 된 병원에 조만간 이런 벽보가 붙게 되리라는 상상에 이른다.

‘노화 치료 접수 중. 6주 치료 후 생물학적 나이 40대로 회복.’ 아직은 “무슨 공상만화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일부 의과학자들은 이 가능성을 장담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 명성의 유전학자 데이비드 싱클레어(미국 하버드 의대교수)는 노화 치료에 사뭇 공격적이다. “노화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치료 대상의 질병”이라는 것. 관련 자료들을 두루 찾아보니 국내 연구진들도 이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이미 몇 년 전 ‘노화의 종말(원제 : LIFESPAN)’이라는 책을 출간,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싱클레어 교수. 최근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발표한 ‘수명연장(Longevity)과 혁명’ 연설에서도 “인간 건강의 한계를 확장하는 역노화가 가능하며 노화는 치료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여러 국가의 정상들도 대거 참석한 그곳에서 그는 “20여 명의 하버드 연구팀이 노화의 근본 원인을 파악, 5년 전에는 불가능했던 노화극복이 가능해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역노화 임상시험을 조만간 인간에게 실시, 노화 치료를 확인하는 순간이 코앞에 왔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노화는 세포 속 유전 정보 체계가 흐트러지는 현상이며 이 정보를 다시 정렬하면 세포는 젊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이미 진행했던 동물실험에서 노화된 조직을 젊게 되돌린 연구 결과도 보고했다. 최근 ‘노화치료의 시대’라는 책을 펴낸 이영진 교수(연세대 의대 등에서 40년 재직) 역시 “전 세계 의학자들이 역노화 연구에 쏠려 매일 수많은 관련 논문이 쏟아진다”고 전한다. 그 가능성이나 시기에 대한 이견도 있으리라.

그동안 인류의 ‘생명개입역사’는 전염병 등 질병으로부터 생명 지키기 → 공중보건의 발전으로 평균수명 늘리기 → 저속노화로 생명의 질 높이기 → 생명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역노화의 4단계를 거치며 줄기차게 진행돼 왔다. 역노화 치료가 현실이 된다면 그 파장은 지금까지의 어떤 산업보다 크고 각 나라 미래 국가경쟁력의 잣대가 될 듯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핵심은 의학이나 경제가 아니라 인간 삶의 철학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존재하는 존재’로 정의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만드는 기본 조건”이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인간은 이제 죽음을 기술적 문제로 보면서 기존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존재에서 운명을 ‘수정’하는 존재로 변하고 있다. 역노화 시대가 오면 사회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80세 노인이 다시 40대의 몸으로 거듭나면 사회 전반의 인식과 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생명 관리 자체가 산업과 권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부의 격차가 젊음의 격차로 나타날 수도 있겠다. 생산 인구 급변으로 인한 산업·노동계의 재편과 세대 갈등, 가족 구조와 결혼 및 교육 시스템의 변화 등이 이어질 것이다.

인생의 가을·겨울을 지나고 있는 장노년들에게 ‘역노화 치료’는 환호 또는 부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역노화 시대가 던지는 질문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보다 다시 주어진 또 한편의 인생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다. 사유(思惟)가 본령인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피할 수 없는 질문에 계속 답을 내놓으려 번민을 거듭해야 할 것 같다. 과연 인류의 바람은 어디까지이며 끝없는 변화가 인류의 목표인가. 유한한 생명이 가르쳐주는 한계와 교훈, 재물과 권력의 무상함, 사랑·연민·감사의 소중한 가치들이 빛바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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