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조 태우고, 51조 배당…오천피 넘을 만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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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환원 시대 본격화
국내 기업이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중심의 주주환원 정책을 잇달아 강화하고 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과 자사주 소각을 원칙으로 하는 상법 개정 등 제도 변화가 맞물리면서 기업의 자본 정책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논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 SK㈜는 10일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자사주 1798만 주 가운데 80%인 1469만 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20%로, 이날 종가 기준 5조1575억원에 달한다. 자사주 소각 기한은 내년 1월이다. SK 측은 “이번 결정은 정치권 등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 등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추진해 온 주주환원 강화 기조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지주도 9일 자사주 524만5461주를 이달 31일 소각하기로 했다. 소각 예정 금액은 6일 종가 기준으로 약 1663억원 상당이다. 2017년 일반지주회사로 출범한 롯데지주는 롯데제과를 중심으로 롯데쇼핑·롯데칠성음료·롯데푸드 등 계열사와 분할·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자사주 비중이 높아졌다.
# 다올투자증권은 이달 초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1주당 240원 현금배당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했다고 밝혔다. 전년 150원 대비 60% 상향한 금액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이 439억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주주환원 정책 강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삼성물산도 올해부터 2028년까지 최소 배당금을 1주당 2000원에서 2500원으로 25% 올리기로 했다. GS건설은 24일 주총에서 보통주 1주당 500원 현금배당 안건을 올린다. 현금배당 총액은 424억원으로 전년 대비 67% 증가한 수치다.
정기 주총 시즌 맞아 앞다퉈 주주환원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기업이 현금배당을 확대하고 자사주를 소각하는 등 주주환원 정책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주총 시즌에는 정부의 상법 개정과 맞물려 주주환원 폭이 커지고 있다. 기업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2024년)과 상법 개정, 주가 상승에 따른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면서 한국 주식시장이 구조적으로 주주환원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의 지난해 현금배당액은 5670억원으로 전년(1855억원)보다 205%가량 급증했다. 한국금융지주와 네이버도 전년 대비 현금배당액 증가율이 각각 118.2%, 133.7%에 달했다. ‘주식농부’로 불리는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그동안 한국 증시는 기업이 돈을 벌어도 곳간에만 쌓아두고 주주나 가계로 흘려보내지 않아 돈의 흐름이 막혀 있었다”며 “이제는 제도 개선과 정책 변화로 기업의 이익이 주주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들어서는 이 같은 흐름이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10일까지 자사주 소각을 공시한 기업은 삼성전자 등 48곳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10일 공시한 사업보고서를 통해 2025년 말 기준 보유 자사주 1억543만 주 중 약 82.5%에 해당하는 8700만 주(우선주 포함)를 올해 상반기 소각한다고 밝혔다. 소각 금액은 10일 종가 기준 약 15조6100억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에도 3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 바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매입과 동시에 소각을 병행하거나 소각 계획을 명확히 제시하는 기업이 느는 추세”라고 전했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긍정 영향”
기업의 주주환원 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배경에는 우선 제도 변화가 있다. 정부가 올해 도입하는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배당액을 올려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상 기업은 배당성향이 40% 이상이거나 배당성향이 25% 이상이면서 전년 대비 현금배당이 10% 이상 증가한 기업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 확대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행동주의 투자자는 기업에 대해 자사주 매입·소각 프로그램 도입이나 배당 확대, 이사회 개편 등을 요구하며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압박이 기업의 자본 정책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시행한 상법 3차 개정안도 이러한 흐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안 시행 이후 자사주 소각 기업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 편입을 위한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MSCI 지수는 미국·유럽 등 글로벌 펀드가 투자 성과를 비교하는 벤치마크로 활용한다.
이 때문에 한국 증시가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면 해외 투자자금 유입이 크게 늘고 시장의 안정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 증시가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면 최대 547억 달러(78조원)의 외국인 투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고 예상한 바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주환원 강화라는 흐름이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외국인 투자자 유입 등 시장 접근성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두고 재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자사주는 적대적 인수·합병(M&A)와 같은 외부 경영권 공격에 맞설 유일한 대안이었다. SK그룹은 2003년 해외 투기자본 소버린의 위협에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해 경영권을 지킨 바 있다. 이 때문에 재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함께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법무부도 최근 “현행 회사법 체계상 자사주가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며 “경영권 방어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대체 수단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은 “실질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만큼 국회가 추가 논의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1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등의 도입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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