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키오스크 대신 “어서 오세요”…다시 사람 세운 기업들

이휘빈 기자 2026. 3. 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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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미국 일부 기업 무인계산대·기기 빼자
도난 줄고 만족도·매출 등 상승 사례 눈길
국내 적용 쉽지 않지만…“사람간 연결 중요”
미국과 유럽의 몇몇 기업들은 무인계산대와 키오스크 대신 계산원을 고용하고 서점 운영진이 꼽은 추천 도서를 매대에 올린다.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한 이미지. 제미나이

요즘 대형마트는 소비자가 직접 계산하는 무인계산대 줄이 더 길다. 패스트푸드나 카페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메뉴를 추천하는 키오스크도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몇몇 기업은 이런 시대 흐름에 거스르는 경영을 펼치고 있다. 키오스크 대신 직원이 손님을 맞고, 계산원이 안부를 물으며 계산을 돕고, 알고리즘 대신 서점 운영진이 꼽은 추천도서가 매대에 오른다. 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는 기업의 모습을 들여봤다. 

스크린 걷고 매대에서 “주문하시겠어요”
영국 페스트푸드 체인 ‘레온(leon)’은 올해 1월 주문용 키오스크와 디지털 스크린을 제거했다. 레온 누리집
올해 1월, 영국의 패스트푸드 체인 ‘레온(leon)’의 동영상이 영국 내에서 화제가 됐다. 이 체인점 일부 매장은 주문용 키오스크를 빼고 메뉴를 소개하는 디지털 스크린도 제거했다. 대신 매대에는 인쇄된 메뉴 안내판이 걸리고 직원들이 직접 손님을 맞았다. 

레온의 공동 창업자인 존 빈센트는 “나와 우리 고객들 모두 디지털 화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며 “사람을 통하는 선택지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기계가 고객 서비스 방해한다”
영국 슈퍼마켓 체인 부스(Booths)도 2023년 11월 잉글랜드 북부 28개 매장 가운데 두곳을 빼고 셀프계산대를 철거했다. 대신 계산원이 계산대에 섰다. 

나이젤 머레이 대표이사는 “고객들이 오랫동안 매장 셀프계산기가 느리고 불안정하며 인간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도입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4월 부스는 셀프계산대 철거 이후 도난 사례는 줄고, 계산 속도는 빨라졌으며, 고객 만족도도 소폭(70점→74점, 100점 기준) 올랐다고 밝혔다. 

느림과 대화가 있는 ‘수다 계산대’
네덜란드 슈퍼마켓 체인 점보가 2021년 200번째 수다계산대를 기념하는 모습. 점보 누리집
네덜란드 슈퍼마켓 체인 점보(Jumbo)는 2019년 남부 블리멘(vlijmen) 지점에 ‘수다 계산대(kletskassa·클레츠카사)’를 처음 도입했다. 효율 향상이나 매출 증대가 목적이 아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수다 계산대는 고객이 여유 있게 계산하면서 직원과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운영된다.

이에 대해 주민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점보는 고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수다 계산대를 확대했다. 2026년 기준 200여곳에서 운영 중이다. 또 매장별로 고객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화 코너’와 ‘산책 모임’ 등을 조직하기도 했다.

알고리즘 대신 사람이 고른 책
문구류와 선물용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이 들어선 미국 서점 체인 ‘반스앤노블’ 풍경. 반스앤노블
사람이 고른 책들로 적자를 흑자로 바꾸는 사례도 눈에 띈다. 12일(현지시각) 미국 ‘로빈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서점 체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은 2019년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인수된 뒤 제임스 다운트 CEO를 영입해 수익을 개선했다.

그는 각 매장이 체인점이 아닌 독립서점처럼 운영돼야 한다는 철학을 내세워 지역 매장 관리자들에게 특성에 맞는 선별 권한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관리자들은 알고리즘 기반 추천 대신 각자 다른 큐레이션을 만들었다. 

서적 구성도 전문·기술 분야를 줄이고 문구류와 선물용품 등 생활 상품 카테고리를 늘렸다. 또 낭독회와 작가 사인회 등 행사를 열고, 어린이와 어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반스앤노블과 산하 영국 서점 체인 워터스톤스(waterstones)의 연 매출은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넘어섰다.

국내는 배경·문화 달라…‘사람만의 장점’ 주목을
국내는 어떨까. 이같은 역발상이 당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서울 송파구가 대형마트 5개 점포에서 키오스크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느린 키오스크 캠페인’을 한 해 동안 진행했으나, 키오스크와 스크린을 대체하는 움직임이라 보긴 어렵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내 계산원들의 업무처리가 기계적이어서 소비자들은 오히려 기계를 선호하는 상황”이라며 “해외 사례들은 사람 간의 대화를 목적으로 한 확고한 경영 철학이 바탕이 됐지만, 우리나라 마트 계산 문화는 속도를 중시해 적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특정 유통업에서는 인공지능(AI)보다 사람의 장점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스앤노블 사례처럼 공간을 직접 체험하는 오프라인 유통에서는 AI와 알고리즘만으로 최대 수익을 추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감성과 장점이 사람들을 연결하고 소비를 불러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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