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주유소 신고하라는 대통령, 왜 가격을 직접 정하지 않았나

이재명 대통령이 “만약 제도를 어기는 주유소 등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석유가격 상한제 시행 첫날인 13일 SMS를 통해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요동치는 국내 기름값을 잡기 위해 공급 가격에 분명한 상한선을 두기로 했다. 일부 업체가 어수선한 틈을 타 폭리를 취하거나 부당이득을 챙기는 일 없도록 국민 여러분의 감시와 참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유류값 많이 안정돼가고 있나요? 바가지는 신고하세요”라며 재차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중동 상황으로 인한 석유가격 변동 폭을 완화하기 위해 ‘석유제품 최고 가격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최고 가격은 정유사의 주유소 및 대리점 등에 대한 공급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13일부터 적용되는 1차 최고 가격은 리터당 보통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다.
11일 정유사가 제출한 평균 공급 가격에 비해 휘발유는 109원, 경유 218원, 등유 408원이 저렴한 수치다. 해당 가격은 26일까지 2주간 적용된다.
소비자들이 실제로 주유소에서 만나는 요금은 다를 수 있다. 석유 최고 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에 적용되며, 주유소는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가격을 정한다. 즉, 정유사로부터 싸게 공급을 받아서 비싸게 파는 폭리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정부는 석유정제업자, 수출입업자, 판매업자에 대해 석유 판매 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다. 정유사 공급 가격뿐 아니라 소매 판매 가격도 정할 수 있다. 정부는 왜 소매가격을 직접 정하지 않았을까?

왜 소매가가 아니라 도매가에 상한선을 뒀나
도매가격에만 최고가격제를 적용한 이유는 행정 효율성과 시장 구조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는 2024년 6월 기준 1만 528곳이다. 개별 주유소가 최고 가격제를 잘 지키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려면 어마어마한 행정 비용이 소요된다. 그에 반해 석유를 공급하는 주요 정유사는 4곳(SK, GS, S-OIL, HD현대오일뱅크)에 불과하기 때문에 점검이 용이하다.
도매 가격에 비해 소매 가격을 구성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1만여 개의 주유소가 임대료, 인건비, 위치적 특성을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임대료, 운송비가 비싼 지역의 주유소와 그렇지 않은 주유소에 일괄적으로 기준을 잡을 경우 반발이 생길 수 있다.
또 소매 가격을 정부가 결정할 경우 경쟁을 통한 주유소 가격 인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유가가 오를 것이 확실할 경우 주유소의 소매 가격이 먼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아직 비싸진 가격에 사 온 원유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소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누군가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폭리를 취할 수도 있다.
통상 유가가 오를 것이 확실할 경우 주유소들은 판매량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격을 올린다. 보유한 석유의 량이 정해져 있고 가격이 오를 것이 확실하다면 천천히 소진되는 편이 유리하다. 폭리를 취하기 위해 가격을 올린다기보다 팔지 않기 위해 가격을 올리려는 유인이 생긴다.
유가의 방향성을 알 수 없을 때는 더 많이 팔기 위해 주변 주유소에 비해 가격을 낮게 책정하려 하지만, 오를 것이 확실할 때는 판매를 하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을 높게 설정하게 된다.
도매 가격을 최고 가격으로 제한하면 주유소는 굳이 판매를 뒤로 미룰 유인이 사라지고 주변 주유소에 비해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소매 가격을 정하면 가격을 낮추는 경쟁 유인이 사라진다.
최고 가격제 손실 보전은 정유사가 더 쉽다
향후 보상 절차를 위해서도 도매 가격에만 최고 가격제를 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석유사업법에 따르면 정부는 최고액 지정으로 인해 석유정제업자, 석유판매업자가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
도매의 경우 국제 유가와 도매 판매가를 기준으로 정유 4사와 정산을 해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 소매의 경우 각기 다른 1만여 개의 주유소와 최고 가격제 시행에 따른 손익을 정산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행정 비용이 소요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바가지 요금에 대한 신고를 독려한 이유는 제도 시행에 따른 효과가 현장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매 가격을 내린다고 해도 주유소가 소매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정부의 재정 지원을 근거로 한 차익을 소비자가 아닌 주유소가 얻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산업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범부처 합동점검단’은 지난 6일부터 불법 석유 유통 위험군 주유소를 대상으로 800회 이상 집중 단속한 결과, 20건의 불법행위를 적발했다. 정부가 감시 활동을 벌이지만 모든 주유소를 점검할 수는 없다.
정부가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주유소는 ‘위험군 주유소’다. 위험군 주유소란 수급 상황 불일치, 과다·과소 거래와 소비자 신고가 많이 접수된 주유소다. 즉, 소비자 신고가 접수된 주유소를 중심으로 점검을 하기 때문에 신고가 필요한 것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범부처 합동점검단’ 회의를 주재하고 가격 담합, 유가 보조금 부정 수급, 세금 탈루 혐의 등을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서 점검단은 불법 석유 유통 근절을 위한 협조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또 마포 지역 한 주유소를 방문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국민이 석유 가격 안정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판매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