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퇴직금 철회하고 배당재원 늘리고 … 기업 주주환원 확대

글로벌 펀드에 이어 국내 운용사와 개인투자자들이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권 행사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주주권 행사를 위한 소액주주들의 소유자증명서 발급도 급증하는 상황에서 최근 상법 개정에 따른 자사주 처분이 주총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13일 VIP자산운용은 코스닥 상장사 대원산업 이사회가 상정한 재무제표 승인 의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VIP자산운용은 그간 우호적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했지만 대원산업이 순현금 4100억원 보유에도 시가총액이 2700억원에 불과한 저평가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려 하자 주총 안건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주주 지분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집중투표제가 배제되면 소수주주들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현재 주가순자산비율(PBR) 0.48배의 저평가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VIP자산운용이 지난 3일 코스닥 반도체 기업 월덱스의 '황금낙하산' 정관 폐기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월덱스는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이사가 해임되면 평균 연보수의 20배에 달하는 특별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변경안을 주총에 상정하려 했지만 주주와의 논의 끝에 철회했다.
한국단자공업은 쿼드자산운용의 압박 속에 오는 20일 정기주총에서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는 안건을 다룬다. 한국단자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다소 감소했음에도 자본준비금 가운데 주식발행초과금 126억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옮겨 배당가능이익을 확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25년 주당배당금은 2024년보다 59%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쿼드자산운용이 한국단자공업의 내부거래 가능성을 제기하며 회계장부 및 이사회 의사록 열람 등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자 한국단자공업이 이에 대응해 적극적인 주주 환원책을 내놓은 것이다.

주주 제안 등 각종 주주권 행사를 위한 소유자증명서 발급은 올해 들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소유자증명서는 특정 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로, 주주 제안과 주주 명부 열람, 의결권 행사 준비 과정에서 활용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총 시즌 초반인 지난 9일까지 소유자증명서 발급 건수는 28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전체 접수 건수 523건과 비교하면 두 달여 만에 이미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시행되면서 이번 주총에서는 '경영상 목적'이라는 예외 사유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자사주를 통해 미국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할 수 있는 근거 정관을 마련하고 있어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정기주총에 경영상 목적으로 자사주를 보유·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다. 해당 정관이 마련되면 ADR 상장을 위해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는 정관상 근거가 생긴다. 다만 회사는 올해 이미 보유 자사주 1530만주를 소각한 데 이어 남은 자사주 165만여 주를 임직원 보상에 활용하겠다는 자사주 보유·처분 계획도 함께 상정했다. 이 때문에 실제 자사주를 활용한 ADR 상장을 추진하게 되면 추가 자사주 매입 방안이 뒤따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증권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이번 주총에서 ADR 상장을 위한 자사주를 마련하려는 포석으로 정관 변경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 측의 ADR 상장 의지가 확고하고 글로벌 투자자의 요구도 큰 만큼 자사주를 더 사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수주주들이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가 부양을 바라는 것과 달리 경영상 목적으로 자사주를 활용하겠다는 상장사도 다수 나오고 있어 주총 통과가 주목된다. 셀트리온은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를 제외한 전체 자사주의 약 35%에 해당하는 323만주가량을 경영상 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자사주 보유·처분 계획을 안건으로 올렸다. 회사는 이를 유동화해 단기 투자자금에 충당할 방침이다. 더블유게임즈는 지난해 인수한 캐주얼 게임 개발사 팍시게임즈의 잔여 지분 취득을 비롯한 경영상 이유로 자사주 189만여 주를 2028년까지 보유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자사주 외에 추가 주주 환원책 제시도 주총 관전 포인트다. 2024년 잉여현금흐름(FCF)의 절반 수준을 주주 환원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삼성전자를 향한 시장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16조원 규모의 대규모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번 주총 국면에서 자사주 활용을 포함한 추가 주주 환원책이 제시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금융지주들도 비과세 배당(감액배당)을 통해 주주들의 실질적인 배당 수익률 높이기에 나섰다. 작년 초 우리금융지주가 은행금융지주 중에서는 처음으로 비과세 배당에 나섰는데 올해는 하나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iM금융지주도 비과세 배당을 위한 자본준비금 감소의 건을 주총 목적사항으로 발표했다.
이 밖에 현대해상도 비과세 배당을 올해 주총 안건에 올렸다. 개인주주가 비과세 배당을 받으면 원천징수(소득세율 15.4%)를 하지 않기 때문에 배당금액의 100%를 수령하게 된다.
[김정석 기자 / 김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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