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공항 밤하늘 가른 미사일 불꽃…가족여행은 생지옥이 됐다 [불타는 중동 탈출르포①]
회항후 착륙하자마자 ‘공습 비상문자’
여권·지갑만 든 채 카타르 공항 갇혀
새벽 하늘 밝힌 불덩어리 요격미사일
현금·생수 챙기고 지도깔고 ‘생존모드’
![2월 28일 오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전격 군사작전에 돌입하면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쟁이 시작된 순간, 기자는 카타르 도하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고 있던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다. 비행기는 상공에서 전쟁이 격화되자 다시 카타르 도하 하마드 공항으로 회항했다. 사진은 비행기 좌석 내 모니터에 띄워진 항로지도 상 회항하는 비행기의 모습. [이소연 기자]](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mk/20260313172402376wlgl.jpg)
지난 2월 28일 오전 8시 15분, 카타르 도하 하마드 공항에서 스페인 마드리드행 QR 149편이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을 때만 해도 기자의 설렘은 하늘 위로 솟을 것 같았다.
출발 후 2시간쯤 지났을까. 좌석 앞 모니터에 띄워진 항로지도가 이상했다. 스페인을 향해 순항하고 있어야 할 비행기가 쿠웨이트로 기수를 돌려 되돌아가고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찰나, 기장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카타르 도하 하마드 공항으로 회항합니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기자의 머릿속엔 ‘도착이 늦어지면 바르셀로나에 예약해 둔 저녁 식당은 어떡하지’라는 소박한 짜증뿐이었다. 어머니도 “오늘 늦게나 내일 스페인에 가기면 하면 되지뭐. 어차피 예약해둔 미술관 입장 시간은 내일이야”라며 웃으셨다. 그 웃음이 이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을 줄은 몰랐다.
그땐 몰랐다. 그 회항이 기자는 물론 가족 모두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 고단한 중동 탈출기의 서막이었다는 것을.
![2월 28일 낮 12시 40분, 비행기가 갑작스럽게 회항하자 비행기에서 내린 수백명의 환승객이 좁은 대기실을 채웠다. 항공사 직원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공항 내에서 기다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양한 나라의 여행객들이 직원에게 “언제 비행기 재개되나”, “안전한 것이 맞냐” 등의 질문을 쏟아내는 모습. [이소연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mk/20260313172403738pcaw.jpg)
“War(전쟁)!”
건너편에 앉은 백인 남성이 외쳤다. 황급히 휴대전화 검색창을 켜보니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공습을 시작했다는 속보가 화면을 덮고 있었다. 단순한 기상 악화나 기체 결함이 아니었다. 전쟁이었다. 짜증은 그 순간 공포로 바뀌고 있었다.
사실 비행기가 기수를 돌려 카타르 도하로 돌아가는 그 순간에도, 중동의 하늘은 이미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기자가 탄 비행기가 이륙하고 약 1시간 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정부 시설에 대한 공동 공격을 개시했다. 기장도, 300여 명의 승객도 처음엔 몰랐다. 비행기는 그저 경쾌하게 순항 중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위험이 감지되자, 비행기가 뒤늦게 처음 출발한 카타르 도하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중동의 허브 공항답게 인천공항만큼이나 큰 거대한 하마드 공항 대기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수천 명의 환승객이 항공사 카운터로 몰려들었고, 각국 언어가 뒤섞인 항의와 탄식이 공항을 가득 채웠다. 직원들은 “언제 비행기가 다시 뜰지 알 수 없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지난달 28일, 이란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날 카타르 도하 공항에 예정됐던 모든 항공편이 취소됐다. 카타르 영공이 닫히면서 어떤 비행기도 카타르 도하 하마드 공항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수천명의 환승객은 카타르에 발이 묶였다. 사진은 모든 항공편이 취소된 항공편 안내 전광판의 모습. [이소연 기자]](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mk/20260313172405040scyb.jpg)
그렇게 보낸 4시간은 그러나 결코 편안한 시간이 아니었다. 회항 후 비행기에서 내릴 때, 트렁크 짐은 그대로 두고 몸만 내렸으므로 손에는 지갑과 여권, 휴대전화 뿐이었다. 그 상태로, 타국의 공항에 갇혀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 채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다. 우리 가족은 애써 웃으며 “괜찮겠지. 곧 스페인 가겠지”라며 서로 달랬다.
![2월 28일 오후 5시, 전쟁으로 영공이 막힌 카타르 도하 하마드 공항 곳곳엔 발이 묶인 환승객들이 하루 눈을 붙일 수 있는 호텔 바우처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공항 곳곳에 있는 카타르 항공 카운터에 수백명이 줄을 섰다. [이소연 기자]](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mk/20260313172406409uhyf.jpg)
기자의 가족도 커피를 연신 들이키고, 다리가 아프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2시간 넘게 줄을 섰다. 하지만 드디어 카운터가 눈앞에 보일 때쯤, 항공사 직원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호텔 바우처가 방금 다 동났습니다.”
주변에서 영어 욕설이 터져 나왔고, 어딘가로 화상통화를 하던 중국인 관광객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의자를 차지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나머지는 서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밤 이란 전쟁 발발 직후 모든 비행편이 취소된 카타르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에서 발이 묶인 승객들이 수면실 맨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이소연 기자]](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mk/20260313172407710eduh.jpg)
등받이가 젖혀지는 의자 30여 개 중 4개를 차지하고, 회항 비행기에서 챙긴 안대를 착용해 억지로 눈을 감았다. 양치질을 하고 싶었지만 세면도구는 비행기에 두고 온 트렁크에 들어있었다. 껴입거나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자리가 부족한 탓에 40여 명의 여행객들은 바닥에 철퍼덕 누워 모자와 옷가지로 눈을 가리고 잠을 청했다. 아버지는 “이게 하루이틀이면 재밌는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오래 지속되면 어떡하냐”며 한숨을 쉬셨다.
밤 10시 20분께, 고요해야 할 수면실의 적막을 깬 것은 멀리서 들려온 둔탁한 “쿵” 소리였다. 몇 분 전 비슷한 소리가 났을 때 기자가 “혹시 미사일 소리 아니야?”라고 하자 아버지는 “공항 트램 소리야”라고 무심하게 받아쳤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소리가 너무 컸다.
자리에서 일어나 수면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창으로 다가갔다. 이미 창가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까만 밤하늘 위로 주황색 불꽃이 수직으로 치솟고 있었다.
처음엔 불꽃놀이인 줄 알았다. 다만 축제 때처럼 양 사방으로 꽃무늬를 그리며 터지는 화려한 불꽃은 아니었다. 불덩어리 하나가 조용히,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하늘로 치솟았다. 마치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상공에서 불꽃을 흡입하는 것 같았다. 카타르가 쏜 요격미사일이었다. 두 눈으로 미사일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밤에 보는 미사일이 아름답다는 점을 그날 처음 알았다.
이날 오전 이란의 반격이 시작된 후, 카타르 방공망은 수십발의 이란 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했다. 그 파편이 곳곳에 떨어졌다고 한다. “쿵” 하고 들렸던 소리는 잔해가 지상에 떨어지는 소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창가의 백인 모녀는 서로를 꼭 껴안은 채 떨었다. 인도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아예 의자 밑으로 기어 들어가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두 귀를 틀어막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그의 손가락이 떨렸고, 이가 부딪히는 ‘타타타탁’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두 눈이 충혈된 한 백인 여성은 프랑스어로 숨죽여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스마트폰을 충전하러 수면실 밖으로 나간 어머니를 찾는 기자의 목소리도 이 작은 방 안을 울렸다. “엄마! 엄마! 아빠, 엄마 데리고 와야 돼.”
![1000명이 넘는 카타르 교민과 여행객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카톡방엔 미사일 소리와 진동이 들리자 동요하는 카톡 내용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카카오톡 캡쳐]](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mk/20260313172409037tvxx.jpg)
가족이 다시 수면실에 모이자, 이젠 이 상황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주카타르 한국 대사관에 긴급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파악했고, 부모님 스마트폰에 도하 구글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로드해 대사관 위치를 저장했다. “혹시라도 휴대폰 안 터지면 이 지도 보고 대사관 찾아가야 해.”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들에겐 가족들의 여권 사진과 영어 이름, 비상 연락처를 친한 친구들 단체카톡방으로 전송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유럽 여행을 위해 환전한 유로화를 4등분 해 가족 각자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건너편 매점에서 프로틴바 4개를 사 왔고, 공항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생수도 여러 병 더 챙겼다. 어머니는 “우리 딸이 든든하네”라고 했지만, 기자의 마음은 불안감에 요동치고 있었다. 너무 불안해서 오히려 차분했다.
카타르 교민 오픈카톡방엔 도하에서 약 400km 떨어진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공항이 공격을 당했다는 이야기와 대피 영상이 올라왔다. 이란의 반격은 카타르는 물론 인근 아랍 국가 전역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었다. 오픈카톡방엔 “공항에 계신분들 미리 비상구같은거 잘 확인하세요”, “공항에 계신 분들이 걱정이네요”라는 글도 이어졌다. 공항이 안전하다고 판단해 남은 것인데, 지금이라도 시내 호텔을 예약해 이동해야 할지 고민됐다. 판단이 서지 않았다.
미사일을 두 눈으로 목격한 지 약 3시간이 넘고. 불안이 임계점에 다다른 새벽 2시였다. ‘이러다 타지에서 큰일 나는 건 아닐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던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수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카타르항공 직원의 검은 구두가 정적을 밟고 들어왔다.
직원이 전해준 소식은 ‘굿뉴스’이기도 하고, 동시에 ‘배드뉴스’이기도 했다. 가족의 카타르 체류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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