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사회, 실현될 수 있을까[서중해의 경제망원경](59)

지난 2월 25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대한민국 인공지능(AI)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9월 8일 위원회가 출범한 지 170일 만에 향후 3년 동안 정부가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국가 비전의 하나로 제시했는데, 이번 행동계획은 이 비전을 실현할 방향으로 ‘AI 혁신 생태계 조성’,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라는 3개의 정책 축과 실행과제 99개를 발표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다. 행동계획에는 ‘모두가 AI의 혜택을 누리고, 기술 발전이 곧 포용적 사회를 향한 발전의 동력이 되는 AI 기본사회 실현’을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아울러 세계에서도 두루 통용될 포용적 AI 모델을 구현해 글로벌 리더십 확보’를 강조했다. 그런데 행동계획에서 언급한 AI 기본사회 비전에는 엄청난 전제가 깔려 있다. AI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는 것으로, 그리고 기술 발전이 곧 포용적 사회의 발전 동력이 된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희망 사항이다. 오히려 AI의 혜택은 더욱 소수에게 집중되고 AI 기술 발전은 더 불평등한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심각한 게 현재 상황이다.
모두가 AI 혜택을 누리고 기술 발전이 포용적 사회로 향할 수 있으려면, 어떤 조건이 선결돼야 할까? AI의 가장 큰 잠재력은 생산성 혁명에 있고, 가장 큰 우려는 일자리 감소 위협과 불평등 심화에 있다. AI의 생산성 잠재력은 실현하면서 불평등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어떤 경제체제가 효율성과 형평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

미드의 오래된 질문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의 상충은 경제학의 근본 문제 중의 하나다. 자본주의 체제 논쟁의 핵심은 어떤 제도가 시장체제가 제공하는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형평성을 손상하지 않을 수 있는가이다. 공산주의는 그 이상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효율성을 실현하지 못하면서 노예의 길을 예정한다고 경고한 것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였다면, 자유 방임이 초래하는 대규모 실업이라는 재앙을 정부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전파한 것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현재의 조건이라면 AI 경제는 효율성은 극대화되겠지만 형평성은 크게 악화할 것이다. AI를 지배하는 주체가, 개인이건 기업이건, 수익을 더 많이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미드는 국제경제이론을 개척한 공로로 197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미드는 자신의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밝혔듯이,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에도 평생 천착했다. 이 문제를 다룬 책이 1964년에 출판된 <효율성, 형평성, 그리고 재산 소유>이다. 이 책에서 미드는 ‘재산 소유 민주주의’라고 부른 새로운 형태의 경제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어떤 마법의 지팡이의 힘으로 재산 소유가 모든 시민에게 균등하게 분배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리의 미래 자동화 경제에서 너무나 놀라운 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본질적인 특징은 노동이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불유쾌한 일들은, 재산 소득을 보충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매우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전혀 상업적이지 않은 활동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생활 수준이 낮아지더라도 굶주리며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집약적인 서비스가 번성할 것이다. 연극, 발레, 회화, 글쓰기, 스포츠 활동과 같은 모든 비생산적인 활동은 반-전문가, 반-아마추어 형태로 번성할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 제공자들은 더 이상 부유한 후원자들의 가난한 아첨꾼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다.”
위의 두 번째 인용문은 재산 소유 민주주의가 실현됐을 때 펼쳐질 수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유토피아적 세상은 현실 경제체제의 개혁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미드는 책에서 소득세, 재산세 등으로 소규모 재산의 상대적 성장률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또한 교육 투자와 같은 공공정책을 통해 소득 능력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할 것을 제안한다. 최종 목표는 균등한 재산 분배를 통해 시장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평등을 이루는 것이다.

특이점 이후의 분배
그런데 미드의 모델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미드의 제안을, 미드가 상정한 경제 모델로 시뮬레이션해 보면, 형평성의 개선은 모두 효율성을 희생한 대가로 나타난다. 이는 미드 모델에서 생산은 자본과 노동 두 요인이 함께 운용될 때 가능하다고 상정돼 있기 때문이다. 즉 자본과 노동은 생산 과정에서 보완적이어서 하나의 이익은 다른 하나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AI 기술이 생산 과정에서 인간 노동을 완전하게 또는 상당히 대체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대다수 사람은 생산의 결과와 수익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또는 대부분 상실하게 되는데, 이는 소득의 원천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 인간은 모두 빈털터리로 살아갈까?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독점 이익을 가져가는 주체들에게서 이익의 상당 부분을 조세로 징수하고 이를 나머지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생산의 문제는 AI를 통해 해결하고, 사람들은 미드가 상상한 노동집약적 서비스 활동에 종사하는 유토피아적 경제가 가능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재산 소유 민주주의와 고도로 발달한 AI 경제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재산 소유 민주주의의 관건은 ‘재산을 어떻게 균등하게 분배할 것인가’에 있다. 미드는 ‘마법의 지팡이’를 상상하면서 현실적으로는 조세와 분배 제도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I 경제에서는 생산 과정에서 노동이 배제되므로 남은 것은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결정하는 정치적 과정이 관건이 된다. 어떤 마법의 지팡이가 있어서 재산 소유를 균등하게 분배해주는 것이 아니라 AI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과정에서 노동이 배제되면(즉 경제적 특이점이 오면), 경제적 성과를 놓고 정치적 과정을 통해 조세와 상속 제도를 다시 설계할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그 결과가 보다 효율적이고 평등할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고도로 발달한 AI 경제에서 인간은 더욱 정치적 동물이 될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행동계획은 ‘AI 기본사회 추진계획 수립’을 올해 정부가 해야 할 숙제로 남겨두었다. AI 기본사회로의 이행은 기존의 경제 체제와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어떤 거버넌스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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