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펼쳐진 톨스토이의 세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샹들리에 불빛 아래 펼쳐지는 러시아 대문호의 세계
압도적인 오페라 극장 장면과 강혜정의 아리아
제정 러시아 시대 샹들리에 불빛이 넘실거리는 무도회장, 밀밭이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 그리고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모스크바역까지. 어지간한 작품이라면 길을 잃고 헤맬 정도로 넓다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파노라마처럼 채워진다. LED 화면과 융합한 트러스교와 기둥 네 개가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화려하고 생생하다. 허영에 쌓인 귀족 사회에 대한 성찰과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긴 톨스토이의 세계가 펼쳐진다. 러시아 혈통을 자랑하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7년 만에 돌아왔다.

톨스토이가 애정을 갖고 만든 또다른 커플 레빈과 키티의 이야기는 정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브론스키에게 한때 마음을 빼앗겼던 키티는 상처를 딛고 레빈과 결혼해 농촌의 대지 위에 삶을 뿌리내린다. 두 여인의 엇갈린 삶이 만들어내는 대위법은 이 소설을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걸작 반열에 올려놓았다. 농노 해방 이후 급변하는 귀족 사회, 위선과 체면으로 유지되는 사교계의 이중성,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진실한 감정을 품은 한 여성의 파멸을 그렸다. 단순한 불륜 치정극이 아니라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해부한 사회소설이다.


그만큼 화려한 무대는 어느 한 장면 부족함 없이 제정 러시아 곳곳을 재현한다. 연인이 스케이트를 타는 첫 장면부터 산업화 시대의 상징적인 장소인 기차역과 이에 대비되는 시골 장원, 그리고 귀족 대저택 등이 속도감 있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LED 화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요즘 무대 유행과 달리 영상이 무대를 강화하는 수준에서 선을 지킨다. 가장 빼어난 장면은 광활한 대평원이 순식간에 기차역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스케이트장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군무와 밀밭 농부들의 춤도 인상적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숨결이 살아있다.

결국 이 공연의 가장 큰 과제는 안나의 내면을 보여주기다. 원작이 위대한 이유는 독자가 안나의 의식 속에 함께 있기 때문. 질투, 도취, 자기혐오가 뒤섞인 그 내면을 따라가며 독자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뮤지컬에선 노래로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뮤지컬 속 안나는 무도회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설명 없이 식어버린 연인, 맥락 없이 폭발하는 질투에 안나는 매력적인 인물 대신 답답한 캐릭터가 됐다. 옥주현·김소향·이지혜가 돌아가며 안나로 무대에 서는데,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연기 성공의 관건이다.
원작과 달리 비중이 확 줄어든 뮤지컬 무대임에도 키티는 더 많은 공감을 얻는다. 레빈과 키티 커플의 서사가 오히려 설득력 있게 전달된 덕분이다. 그래서 2막에서 안나와 키티가 화해하는 장면은 아름다웠다. 반면 1막에서 안나가 스스로 눈가루를 뿌리며 춤추는 장면은 기이하다.
오랫동안 뮤지컬 톱스타로 자리를 지켜온 옥주현은 이번 무대 총 38회 공연 중 20회 이상을 혼자 소화한다. ‘배역 몰아주기’ 논란이 벌어졌는데 2막 중 아이를 안고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자장가 장면에서 안나의 비극이 비로소 무대 위에서 살아나며 감동을 줬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29일까지.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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