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신윤호 베이스벤처스 대표] “인터넷→모바일→AI 시대…혁명기 창업 초기엔 기업 투자 유리”
올해 벤처 투자시장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유동성이 공급될 전망이다. 정부가 연간 벤처 투자액을 40조원으로 증액하겠다고 공표한 데 이어, 모태 펀드가 올해 1차 정시 출자 사업을 통해 4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 조성에 나섰다.
시장 시선은 벌써부터 기업 가치가 수조원을 넘어 10조원에 달하는 ‘데카콘’의 탄생으로 향하고 있다. 유동성이 풍부해질수록 리스크가 적은 창업 후기 기업으로 자금이 쏠리는 경향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의 무게추가 뒤로 기울고 있지만, 베이스벤처스는 설립 이래 지금까지 쭉 창업 초기 기업 투자를 고수하고 있다.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해 수십 배에서 100배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하고자 한다. 성과는 수치로 증명된다. 기업 가치 25억원에 투자한 트래블월렛은 3500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50억원 가치에 발굴한 라포랩스는 5000억원의 몸값을 달성했다.
번개장터, 블라인드, 지그재그, 뱅크샐러드 등이 베이스벤처스의 손을 거쳤다. 특히 미국 세쿼이아캐피털 등 글로벌 벤처캐피털(VC)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마크비전은 베이스벤처스가 ‘첫 번째 기관투자자(LP)’로서 가능성을 알아보고 씨앗을 뿌린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서울 강남구 베이스벤처스 본사에서 신윤호 대표를 만나 투자 전략과 벤처 투자시장의 현주소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는 출자 제안서에 ‘왜 VC 펀드에 출자해야 하는지’를 가장 먼저 다룬다. ‘빈티지가 좋다(펀드가 결성됐거나 투자가 시작된 연도에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가 대체로 낮아 기대 수익률이 높다는 뜻)’는 뻔한 얘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바로 지금같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때마다 스타트업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2025년 한 해를 돌아본다면.
“2024년 이태양 대표를 선임해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했고, 2025년엔 총 568억원 규모의 100% 민간 펀드를 만들었다. 기존 LP 절반 이상이 다시 참여해 줬고, 모태 펀드 등 정부 자금 없이 순수 민간 자금으로만 조성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투자는 예년과 비슷한 약 300억원 규모로 집행했다. 지난해에는 특히 (투자받는 기업으로서) 첫 번째 LP가 되는 데 집중했다.”
펀드를 100% 민간 출자금으로 만들었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모태 펀드나 성장 금융 등 정책 자금은 ‘VC 중에 골라서’ 투자하는 LP다. 그러나 민간 LP는 다르다. 모든 자산군을 냉정하게 비교한다. 냉정하게 말해 금, 비트코인, 미국 주식 등이 모두 VC의 경쟁자인 셈이다. 결국 그들이 자산을 VC에 투자하게 하려면 뭔가 다른 걸 보여줘야 한다. 지난 4~5년간 한국의 VC 펀드라는 자산은 민간 LP에 만족보다 실망을 준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LP가 VC 펀드에 왜 실망한 걸까.
“펀드 결성이 끝나고 나면 LP도 부담이 없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솔한 얘기를 많이 해준다. 들어보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려고 여러 VC 펀드에 출자해 봤지만 결국 손에 쥐는 포트폴리오는 똑같더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VC가 한 회사에 같이 투자(클럽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LP 입장에서는 헤지(손실 상쇄)가 안 되는 것이다. 이건 자산 운용 측면에서 굉장히 합리적인 문제 제기다. 그래서 핵심은 ‘어떻게 하면 우리만이 접근할 수 있는 자산군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 역량과 특징, 철학을 기반으로 초기 기업 투자에 더 많이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LP에 출자를 제안할 때 주로 어떤 점을 강조하는지.
“우리는 출자 제안서에 ‘왜 VC 펀드에 출자해야 하는지’를 가장 먼저 다룬다. ‘빈티지가 좋다(펀드가 결성됐거나 투자가 시작된 연도에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가 대체로 낮아 기대 수익률이 높다는 뜻)’는 뻔한 얘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바로 지금같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때마다 스타트업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미국 벤처 펀드의 연 내부수익률(IRR) 중간값을 분석해 본 적이 있다. 인터넷 시대가 태동했을 때 만들어진 펀드, 모바일 시대가 시작했을 때 만들어진 펀드의 IRR이 가장 높았다. 무려 40%에 육박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AI) 시대의 시작과 함께 결성된 펀드도 수익률이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다.
이는 단지 ‘뜨는 산업’에 투자하는 스타트업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산업 지형도가 바뀌면 원래 패권을 쥐고 있던 기업은 지고 새로운 기업이 뜬다. 즉,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산업 격동기에 강할 수밖에 없다.
AI 시대가 도래한 지금도, 기존 전통 기업은 원래 일하던 방식을 빠르게 전환하기 쉽지 않은 반면 신생 기업은 훨씬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전환하고 있다. 신생 스타트업은 애초 레거시(과거의 유산) 없이 ‘AI 네이티브’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가 올 때는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게 유리하다고 LP를 설득했다.”
베이스벤처스는 VC 중에서도 특히 업력이 짧은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회사로 알려졌다. ‘초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베이스벤처스가 투자하는 회사 중 80% 이상이 우리를 첫 번째 LP로 맞이하는 회사다. 첫 투자는 위험도 크지만, 그만큼 높은 수익을 낼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LP에는 이런 점을 설명하고, ‘다만 우리는 그 리스크를 제어할 계획이 없다’는 점까지 미리 고지한다. 펀드의 리스크를 제어하려면 결성액의 20%는 시드 투자, 50%는 시리즈 A 및 B에 할당하는 전략을 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자산 배분은 LP가 자기 포트폴리오 내에서 스스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주로 무엇을 보고 투자하나.
“창업자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많이 본다. 대부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표와 그 회사가 닮아간다. 즉, 대표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회사 미래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100개 넘는 회사에 투자했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의미 있는 수익을 가져다준 회사는 4~5개 사 정도다. 그런데 이 4~5개 사의 수익률은 10배 수준이 아니라 100배에 육박한다. 5년 내, 길면 10년 내 수익률 100배를 기록하려면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안 된다. 우리 슬로건이 ‘미친 꿈을 위대하게’인데, 정말 문자 그대로 미친 꿈을 가진 사람이 위대한 걸 만들어내는 수밖에는 없다.”
한국 창업 생태계의 현주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젊고 뛰어난 사람이 많이 창업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우리가 투자했던 회사 중 5개 사의 창업자가 의대 출신이었다. 그중에 본과 3학년에 자퇴하고 창업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인데, 그 똑똑한 순위에 비해선 (의사가 된 후) 갖게 될 것이 그리 크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굉장히 합리적인 생각이다. 의사가 되기보다 창업해서 큰 성공을 거두길 원하는 것이다.”
학벌 등 소위 ‘배경’이 좋은 사람이 창업하면 투자받기도 더 쉽고 성공할 가능성도 큰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학벌 좋은 사람은 어떤 지침이나 매뉴얼에 대한 학습이 빠르고, 좋은 인재를 남보다 쉽게 영입해 조직을 빠르게 키울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동안은 배경이 괜찮은 사람이 창업해 성공할 가능성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과거 지침이나 매뉴얼 자체가 흐려지고 있다. 또 과거와 달리 예전만큼 많은 사람을 데려오지 않아도 회사가 돌아간다. 즉 학벌 좋은 창업자의 강점이 점점 빛을 잃고 있다. 실제로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이 2011년 내놓은 ‘틸 펠로십’은 대학 중퇴자에게 20만달러(약 2억9300만원)를 지원하며 창업을 돕는다. 우리가 투자한 A사의 경우 대표가 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창업했는데, 월 매출액을 1년 만에 50배 이상 늘리며 급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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