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석의 매크로리뷰 <30> 글로벌 반도체 투톱 성적표 비교] 대만 8% vs 한국 1%…AI 호황에도 경제성장률 엇갈린 이유는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수탁 생산) 1위 대만 TSMC는 1월 15일 2025년 순이익이 1조7200억대만달러(약 77조원)로, 전년 대비 46% 증가했다고 밝혔다. 연간 매출은 3조8100억대만달러(약 171조원)로 32% 늘었다. 웨이저자(魏哲家) TSMC 회장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고 했다. TSMC의 2025년 매출총이익률은 59.9%로, 1년 전보다 3.8%포인트 상승했다.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세계 1위 삼성전자의 2025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33조6000억원, 43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 33% 증가했다. 이 중 반도체 부문은 매출 130조1000억원, 영업이익 24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최강자 SK하이닉스는 2025년 매출 97조1467억원, 순이익 42조9479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47%, 117% 급증했다.
AI 반도체 붐과 메모리 품귀 속에서 한국과 대만의 대표 기업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의 거시 경제 성적표는 정반대다. 글로벌 반도체 불황으로 202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한 양국은 2024년부터 엇갈린 길을 걷고 있다. AI 열풍에 올라탄 대만의 GDP 성장률은 2024년 5.25%에 이어 2025년 8.68%까지 치솟았고, 반면 한국은 2024년 2.0%의 회복세가 2025년 1.0%로 다시 둔화했다. 반도체 기업 실적 개선은 같았지만, 경제 회복 강도는 다른 방향이었다. 그 결과 2025년 대만의 1인당 GDP는 3만9477달러로 2003년 이후 22년 만에 한국을 추월했다. 2026년 7.71% 성장률 전망이 현실화할 경우 1인당 GDP는 4만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국은 2.0% 안팎 성장에 머물며 1인당 GDP가 2014년 이후 13년째 ‘3만달러 박스’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닮았지만, 투자가 갈랐다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중심 수출이 성장 동력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2025년 GDP 성장률에서 반도체의 수출 기여도는 대만이 약 70%, 한국은 30% 수준으로 분석된다.
성장 속도를 가른 것은 투자였다. 공장·설비·인프라 등 자본재 투자를 보여주는 총고정자본형성을 보면, 두 나라의 방향은 확연히 엇갈린다.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부진했던 2023년에는 양국 모두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만은 AI 혁명이 본격화한 2024년 2분기 7.5%로 반등한 뒤, 같은 해 4분기부터 2025년 3분기까지 4개 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가며 강한 증가세를 보였다. 기업 설비투자의 선행지표인 제조업 투자재 생산지수도 대만은 2024~2025년 대부분 분기에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2분기와 4분기에는 각각 47.1%, 68.1% 급증했다. 해외에서 도입한 설비 흐름을 보여주는 자본재 수입액(달러 기준) 역시 2024년 2분기 이후 두 자릿수 증가세를 지속했고, 2025년 연평균 증가율은 51%에 달했다. 이는 AI 설비투자가 생산능력 확장으로 빠르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2024년 2분기부터 7개 분기 연속 총고정자본형성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투자가 위축된 가운데 설비투자 회복세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2023년 3분기부터 2024년 2분기까지 마이너스였던 설비투자는 2024년 3분기 6.6%로 반등했지만, 이후 증가세가 둔화해 2025년 4분기(-1.7%)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건설·설비투자가 동시에 힘을 잃으면서 한국 경제는 투자 공백이 장기화하는 국면에 진입했다. 투자 부진이 이어질 경우 생산능력 확충이 지연되며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권효성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대만은 ‘수출 증가→투자 확대→GDP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강하게 이뤄진 반면, 한국은 수출과 투자의 연결고리가 약해진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산업구조가 갈라놓은 투자 궤적
반도체 호황 속에서 한국과 대만의 투자 궤적이 다른 이유는 뭘까. 그 배경에는 양국의 산업구조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워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시장을 장악한 한국이지만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메모리 부문에선 점유율이 2% 남짓이다. 범용 기술인 메모리 제조에 집중된 구조는 업황에 따라 생산과 투자가 급격히 확대·축소되는 높은 변동성을 동반한다. 특히 메모리는 가격 변동성이 크고 재고 조정 주기가 짧아 수요 둔화 국면에서는 설비투자가 빠르게 위축되는 특성이 있다. 실제 2023년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 위축과 메모리 가격 급락으로 약 11조원의 적자를 낸 삼성전자는 감산과 함께 설비투자를 축소했고, 이는 곧바로 한국 전체의 총고정자본형성 축소로 이어졌다. 평택 신규 라인(P4)의 공정 일정과 투자 집행 속도를 늦춘 것은 투자 사이클의 단적인 사례다. 현재 D램·낸드플래시 가격이 급등하는 이유는 당시의 생산·투자 축소가 공급 제약으로 이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OSAT(외주 패키징 및 테스트) 글로벌 1위 ASE, 글로벌 톱 10 팹리스(반도체 설계) 미디어텍, 리얼텍 등이 반도체 전(全) 공정에 걸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AI 서버 제조 부문에서도 폭스콘이 40% 이상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는 등 10위권에 네 곳의 대만 기업이 진입해 있다. 이러한 산업 생태계는 AI 수요 확대를 곧바로 설비 증설과 생산능력 확대로 연결한다.
대만 주요 반도체 기업은 매출의 7~10%를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며 첨단 공정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TSMC는 고성능 컴퓨팅(HPC)의 기반이 되는 첨단 미세 공정과 3D 패키징 기술(CoWoS·InFO 등)을 앞세워 엔비디아와 구글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AI 반도체 칩 생산을 압도적 시장점유율로 주도하고 있다. 이런 기술적 우위는 대규모 설비투자 확대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대만의 GDP 대비 총투자 비율은 약 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을 크게 웃돈다.
AI 시대, 성장의 조건이 달라졌다
2023년 이후 벌어진 한국과 대만의 성장률 격차를 단기간에 축소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구조 차이에서 비롯된 상반된 기술, 투자 궤적의 결과여서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메모리 강국인 한국은 HBM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비메모리 분야 점유율이 낮아 대만과 격차를 단기간에 줄이기 쉽지 않다”고 했다.
AI 호황은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의 경제 재도약 기회가 되고 있으나, 메모리 의존적인 한국보다 다양한 공정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한 대만이 AI 혁명의 경제 성취를 선점하고 있다. AI 기술 발전을 실제 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 플랫폼을 갖추고 있는지가 GDP 성장률을 좌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수출액보다 기술 경쟁력 등 질적 요소가 경제 성장 속도를 결정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대만은 수평적인 대·중소기업 협업을 통해 축적한 기술력으로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 시스템을 갖췄다”면서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문제는 AI 시대가 바꾼 성장 메커니즘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라고 말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