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영산강의 심장, 신창 마한을 다시 부르다

전남일보 2026. 3. 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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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신창 마한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전남도립 어린이국악단 마한금 연습 장면

무등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조용히 남쪽으로 흘러내린다. 그 물은 산을 지나고 평야를 적시고 들판을 지나 다도해와 서남해로 간다. 흐르는 내내 남도 산하 천지사방에서 스며들다 솟구치는 물길들과 만나 대하를 이룬다. 그것이 영산강이다. 섬진강인들 무에 다르겠는가만 오늘은 영산강변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들 하나하나가 강의 시원이자 하늘의 시원이다.

발원(發源)과 시원(始原)이 다르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와 같다. 일종의 다핵론이다. 나는 이 물길의 근원을 상고하여 무등산을 영산강의 시원이라 주장한 바 있다. 우리가 영산강이라고 부르는 그 물길은 단순한 강이 아니다. 그것은 마한 이전부터 이 땅의 사람들이 삶을 모으고 기술을 만들고 노래와 의례를 연행하였던 통로였다.

그 터전 위로 부여에서 고구려로 다시 백제로 이어지는 지층들이 겹겹이 쌓였다. 그 핵심에 광주 신창동이 있다. 내가 지속적으로 이를 입에 올리는 까닭은 이 맥락이 담론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반도 최초의 현악기에 대해서는 이미 '마한금'이라는 이름을 지어두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제는 신창동을 '신창 마한'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해남 거칠마 유적이 마한 소도(蘇塗)의 전형이라는 점을 연전에 주장했는데 눈 밝고 귀밝은 이들은 이를 새겨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거칠마 마한'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광주 신창동은 '신창 마한'으로 불러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광주신창동 출토악기세트.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남도 젖줄의 심장, 신창동에서 공명하는 오래된 울림
신창동 유적은 한국 고고고학에서도 특별한 장소로 꼽힌다. 보통의 유적은 토기와 금속 중심으로 발굴되지만 신창동 유적들은 매우 종합적이다. 생산, 생활, 의례, 교류, 무덤이 한군데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영산 바다의 상류였을 기수지역인 까닭에 목재, 칠기, 직물까지 남아 있다. 갯벌이어서 가능했다.

국가유산청이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을 두루 검토해보면 토기류, 목재류, 칠기류, 금속기, 동식물 유체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출토 양상을 보고하고 있다. 이 수많은 유물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므로 몇 가지만 리뷰해둔다.

토기류와 의례 토제품으로는 굽다리 접시, 덧띠토기 등 여러 그릇류, 농어업 생산도구로는 괭이, 따비, 절구공이, 통발, 삼태기 등 논밭 경작 흔적과 결합된 농어업 도구군, 직물, 복식 생산으로는 삼베, 비단, 베틀 부속구인 바디, 신발틀 등이 있고, 칠기, 용기 등 생활 목기로는 칠 주걱, 삼베, 국자, 소쿠리 테, 싸리비, 문짝 등 문화적으로도 매우 발달했던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외의 항목들에 오히려 주목해왔다. 내가 처음 마한금으로 이름 붙인 한반도 고대 현악기는 물론 고깔형 북으로 해석되는 타악기 등이 그것이다. 중국 화폐인 오수전을 비롯해 수레 물류 등 대외교류가 활발했던 사회이고 그중에서도 음악이 발달해있던 사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수준으로 보면 미술이나 철학 또한 발달해있었을 텐데 물증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를 아우르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는 수원(水源) 문명이다. 익히 알려진 영산강의 세 곳 발원지(장성, 담양, 화순)외에 무등산의 물들이 저습지로 스며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갯벌 혹은 기수지역으로 분리할 수 있는 습지 문명도 거론 가능하다. 이 저습지가 아니라면 어떻게 목재, 칠기, 직물, 문짝, 수레 부속구, 악기 같은 유기물이 남아 있겠는가. 농경이나 어로 관련 문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공명(共鳴)의 문명이다.

왜냐하면 남도의 음악이 가진 탁월한 보편, 그 공명(共鳴)의 정신에 이 맥락이 닿기 때문이다. 이태 전에 신창동 출토 현악기를 '마한금'으로 훌륭하게 재구성해준 조준석 명인에게 내가 '공명'이라는 호를 지어드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한금과 고깔북으로 대표되는 이 공명의 맥락을 여기, 현재, 우리는 어떻게 드러내고 의미화해야 할까?

통합 전남광주특별시, 마한금 중심 문화도시의 서사
바야흐로 전남광주가 통합되어 약칭 광주특별시로 불리게 되었다. 광주시가 1986년에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으니 40년 만에 원상회복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전의 전라남도와 시방 전개되는 광주특별시는 많이 다르다. 물론 하나의 행정 생활권으로 회복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나아가 지방 소멸위기 대응과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이라는 목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위와 위상 재정 및 인허가 특례, AI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 구조 등이 확연하게 다르다. 정부의 특별법을 통해 설치는 전남광주특별시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이자 새로운 형태의 광역지자체다. 4년간 최대 20조원 규모의 재정지원과 중앙정부의 인허가권을 대폭 이양받는 강력한 특례도 부여된다.

1차산업에서 벗어나 인공지능 클러스터, 반도체 특화단지, 풍부한 재생 에너지 기반의 첨단 산업 중심지로 육성된다. 40년 후의 원상회복이 아니라 4차산업 시대에 발맞춘 전혀 다른 지자체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이번 통합은 지방소멸 극복을 위한 고도의 재정, 산업적 특례를 동반한 탄생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물론 첩첩이 산중이라 풀어나가야 할 일들이 많지만 나같은 땔나무꾼들은 우선 문화적으로 풀어가야 할 일들에 주목하고 한 땀 한 땀 꿰어나가는 일들을 실천할 수밖에 없다. 마한금을 수차례 거듭하여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내가 보기에 마한금은 당면한 여러 겹의 서사를 열어젖힐 수 있다.

예컨대 마한금은 광주뿐만 아니라 백제 이전의 마한을 대표하는 가장 오래된 소리맥을 가지고 있다. 마치 판소리처럼 말이다. 민주, 예술, 인권의 도시로 호명되는 광주의 시원과 더불어 울림 즉 공명의 도시로 재구성해나갈 원천이 되는 셈이다. 벼를 심고, 비단을 짜고, 수레를 굴리고, 북을 치고, 현을 뜯으며 떼춤을 추고 떼창을 하던 소도(蘇塗)와 도시를 두 천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공명하는 신도시로 재구성할 수 있을까?
조준석 국가지정 악기장과 신창동 현악기 복원 마한금

남도인문학팁

신창 마한, 새문명 프로젝트의 거점으로

나는 일찍이 해남과 영암 솔라시도에 도레미파를 곁들여 문화와 산업이 함께 작동하는 새문명 도시를 건설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솔라시도는 주지하듯이 AI 및 반도체 관련 산업이 집중되는 신도시 지역이다. 이게 기술 문명의 집적이라면 도레미파는 마한 이전으로부터 면면히 흐르는 남도의 예술과 혼, 그 공명의 기술이라는 비유였다.

이를 통합해야 온전한 도레미파솔라시도의 한 옥타브를 완성한다는 뜻이다. 이제 고고학적 대상이던 신창동을 '신창 마한'으로 고쳐 호명하여 새로 출발하는 광주전남특별시의 문화적 핵심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으로 해양수산부를 이전했듯이, 마땅히 신창동의 맥이 흐르는 남도로 문화체육관광부를 이전하여 나라 전체의 공명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뿐이겠는가. 문명 프로젝트에서 예술 프로젝트로, 도시 프로젝트에서 관광 프로젝트로, 다시 4차산업 프로젝트로 수백 개의 테마가 마치 강강술래처럼 주마등이다.

더군다나 역사 이래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떼춤과 떼창을 이끌어 온 지역이지 않은가? 나는 빛의 혁명 내내 떼춤과 떼창이 연행되는 현장을 보면서 마한의 소도를 떠올렸다. 고대의 선조들과 현대인들이 겹쳐져 그야말로 동시대적 군무로 탄생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다. 2026년 통합 담론 속에서 신창동을 남도 공명의 시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손에 손잡고 앞 사람을 따르며 발을 구르던 마한의 자장 위에 오늘이 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떨쳐 일어나 나라를 구했던 남도인의 기질을 신창 마한에 스민 공명의 기술로 드러내어야 문화강국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