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내릴 땐 편지 올릴 땐 5G… 기름값 '속설'은 정확했다 [분석+]

김정덕 기자 2026. 3. 1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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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마켓분석
기름값 급등에 정부는 담합 조사
정부 눈치보는 정유ㆍ주유업계
심지어 주유업계는 책임 전가까지
상승기에 오르면 하락기엔 내려야
국제유가 하락기 가격 분석해보니
하락세 반영 정유사보다 더 늦어
반면 상승기엔 빠르게 수직 급등
상식적 가격이면 눈치 볼 일 있나

# 대통령의 한마디에 갑자기 기름값이 흔들렸습니다. 업계는 눈치를 보기 바빴고, 그로 인해 상승세도 주춤했습니다. 기름값 기습인상 논란에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머리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13일부터는 정부가 정유사의 최고 공급가격을 정해주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까지 시행했습니다. 일부에선 정부가 시장을 교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격이 상식적으로 움직였다면 정부가 나설 일도, 업계가 눈치를 볼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 주유업계를 향한 비난이 거세지자, 주유업계는 정유업계로 탓을 돌렸습니다. 가격은 공급가격이 정하는 것이지, 자신들은 '을'일 뿐이라고 주장한 건데요. 과연 그럴까요. 고작 몇달 전 국제유가가 내림세를 탔을 때를 비교해보면 남 탓을 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더스쿠프가 국제유가 하락기에 정유사와 주유소의 가격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분석했습니다. 결론을 살짝 공개하면 '내릴 땐 편지 올릴 땐 5G'란 속설은 한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국내유가는 여전히 '오를 땐 빠르게, 내릴 땐 천천히'라는 공식을 버리지 못했다.[사진|연합뉴스]
기름값이 치솟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 기름값의 담합 등을 의심하면서 "불합리한 폭리는 강력하게 단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3월 5일 임시국무회의ㆍ주유업계 겨냥)"거나 "합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비정상을 바로잡겠다(3월 6일 SNSㆍ정유업계 겨냥)"는 등 강력한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참고: 현재 주유소의 기름값 상승분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과 무관합니다. 사실은 2월 중순의 상승분이 반영된 건데, 국제유가 급등 분위기와 함께 폭등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주유업계(한국주유소협회)는 '불합리한 폭리'라는 말에 뭔가 억울하다 싶었는지 6일 이런 내용을 담은 해명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주유소는 정유사나 대리점으로부터 석유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소매 유통업이다. 가격 상승의 1차 요인은 정유사 공급가격 인상에 있다. 주유소가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특히 가격 급등 국면에서 선구매 수요가 일시 증가해 재고 소진 속도가 빨라진 경향도 있다." 쉽게 말해 정유업계에 가격 상승의 탓을 돌린 거죠.

정부 눈치 보는 정유ㆍ주유업계

정유업계도 손을 놓고 있기 어려웠던 걸까요? 같은 날 대한석유협회는 한국석유유통협회, 한국주유소협회 등과 함께 "중동 정세 악화로 급등하고 있는 국제유가가 국내 주유소 가격에 급격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손실을 감내하면서 가격 안정화에 노력해왔다"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석유시장 질서 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국내 정유4사(SK에너지ㆍGS칼텍스ㆍ에쓰오일ㆍ현대오일뱅크)는 주유소 공급가격도 낮췄습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에너지 수급 안정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전했습니다.

주유업계와 정유업계가 과할 정도로 정부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알뜰주유소를 관리ㆍ감독하는 한국석유공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경기도 모처의 알뜰주유소 한곳이 경유 가격을 크게 올려 전국 인상폭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러자 11일 손주석 석유공사 사장은 "국민의 유류비 부담을 덜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 안정을 뒷받침하는 데 앞장서야 할 알뜰주유소에서 단기간 급격히 판매가격을 인상한 사례가 일부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실망과 불편을 끼쳤다"면서 "공사 사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눈치를 보는 걸 이해할 만한 구석은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의지 표명 이후 주유업계와 정유업계를 향한 '사정司正'이 시작됐기 때문이죠. 경찰은 전방위적으로 주유소 담합 특별단속에 나섰습니다. 지난 9일엔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정유사들을 대상으로 담합 조사에 나섰습니다.

[사진|뉴시스]
일련의 상황을 두고 일부에선 "정부가 오히려 시장을 교란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가격이 상식적으로 움직였다면 눈치를 볼 일도 없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석유공사 역시 알뜰주유소를 평소에 관리ㆍ감독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죠.

현재의 기름값 상승 국면이 아니라 기름값 하락 국면을 떠올려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국제유가가 오를 때 국내유가가 올라가는 게 당연한 이치라면 국제유가가 내릴 때도 국내유가가 잘 내려야 하지 않겠냐는 거죠.

흥미롭게도 지난해 12월 1주차부터 올해 1월 1주차까지 국제유가는 일관된 내림세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국제유가 상승기와 대조해볼 만합니다. 과연 어땠을까요. 더스쿠프가 이를 분석해봤습니다.

■ 분석1. 국제 휘발유 가격 = 우선 국제유가를 한번 보겠습니다. 여기선 편의상 휘발유만 살펴봤습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인 오피넷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시장 기준 휘발유 가격은 지난해 12월 2일 배럴당 80.69달러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가격이 꾸준히 하락해 올해 1월 7일 69.58달러로 떨어졌습니다(표① 참조). 5주간 국제 휘발유 가격 하락률은 13.77%였습니다.[※참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시장 가격(MOPS)을 기준으로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후 국제 휘발유 가격은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다 2월 3주차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2월 16일만 해도 배럴당 71.77달러였던 국제 휘발유 가격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온 다음날인 20일 77.60달러로 뛰었습니다. 8.12%나 오른 거죠. 2월 27일엔 79.64달러로, 미국이 이란을 침공한 이후인 3월 2일엔 90.31달러로 올랐습니다. 2주 후 국내유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신호나 다름없었죠.[※참고: 따라서 정부가 석유류 최고가격제를 제시한 건 향후 유가 폭등을 선제적으로 대응한 셈입니다.]

■ 분석2. 정유사 공급가격 = 그렇다면 국내 정유사의 휘발유 공급가격은 어땠을까요? 업계가 주장하는 2주의 시차를 적용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3주부터 정유사의 공급가격도 하락했습니다. 12월 2주차에 리터(L)당 825.85원(이하 세전)이던 휘발유 공급가격은 올해 1월 3주차에 767.40원으로 58.45원 내렸습니다(표② 참조).

[사진|뉴시스]
하지만 하락률은 7.08%로 국제가격 하락폭보다는 훨씬 작았습니다. 같은 기간 세후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하락률은 3.85%로 반토막이 납니다.[※참고: 가격이 높을 때 유류세 비중도 높아지기 때문에 생기는 편차입니다.]

정유사 공급가격은 1월 4주차까지 760.37원(전체 하락률 7.93%)으로 내렸다가 2월 3주차에 785.54원으로 올랐습니다. 이후 2월 4주차에는 775.06원으로 소폭 내렸죠. 2월 2~3주차에 나타난 국제가격 등락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오르는 속도는 조금 빨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 분석3.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 = 이번에는 정유사와 마찬가지로 2주의 시차를 적용해서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을 보겠습니다. 같은 기간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도 내렸습니다. 지난해 12월 2주차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745.40원, 올해 1월 3주차엔 1695.16원이었습니다. 하락률은 2.88%였습니다(표③ 참조).

다만,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은 2월 2주차까지도 하락세를 유지했습니다. 이 시기 평균 판매가격은 1686.59원이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전체 하락률은 3.37%입니다.

종합하면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의 하락률은 정유사의 세후 공급가격 하락률(3.85%)보다도 낮습니다. 정유사들의 공급가격에 주유소 판매가격이 좌우된다는 주유업계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지만, 주유소들 역시 국제 석유제품 하락분을 빠르게 반영하진 않는다는 방증입니다.

[※참고 : 약간 복잡하지만, 이 부분에선 설명해야 할 게 있습니다. 1월 3주차 이후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정유사 공급가격은 조금씩 올랐습니다. 반면 주유소들은 2월 중순까지 판매가격을 계속 낮췄죠. 이를 두고 누군가는 주유소들이 욕심을 버린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천천히 가격을 내렸기 때문에 가격을 더 내릴 여지가 충분했을 뿐입니다. 특히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2~3달러 수준의 급등락을 반복했기 때문에 평균 가격은 크게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정유사의 공급가격 역시 1월 3주차 767.40원에서 2월 2주차 769.09원으로 1.69원 올랐을 뿐입니다.]

■ 분석4. 국제유가 상승기 분석 = 그럼 국제 휘발유 가격과 정유사의 공급가격이 '오를 때' 주유소의 평균 판매가격은 어땠을까요. '내릴 때'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주유소들은 2월 3주차에 정유사 공급가격 상승분을 조금씩 반영하다가 3월에 들어서자마자 급격하게 상승분을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주유소의 가격 상승분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의 여파가 아닌 2월 중순 이후의 상승분을 반영하고 있다는 거죠.

문제는 전일 대비로 볼 때 3일엔 1.23%, 4일엔 3.16%, 5일엔 3.20%로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이란을 공습한 2월 28일과 비교하면 불과 5일 만에 L당 1692.89원에서 1834.28원으로 141.39원(8.35%)이나 상승했습니다.

[사진|뉴시스]
정유사의 3월 1주차 공급가격이 어떻게 책정됐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제 휘발유 가격 상승분을 최소한 며칠 더 빠르게 적용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앞서 내림세 기간에 하락분을 천천히 반영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더구나 2월 3주차(2월 16일 대비 20일)에 있었던 국제 휘발유 가격 상승률은 8.12%인데, 3월 1주차(3월 2일 대비 3월 6일)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 상승률은 9.97%로 더 높습니다(표④ 참조). 과연 이게 2월 중순의 국제 휘발유 가격 상승분을 반영한 것인지, 최근의 국제유가 상승분을 반영한 것인지 헛갈릴 정도입니다.

'폭리' 꼬리표 뗄 수 있을까

전국의 주유소들이 넘쳐나는 수요로 인해 3월 1일부터 기름탱크에 기름을 꽉꽉 채워 넣은 게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가격을 올리는 건 꼼수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통령의 '불합리한 폭리'라는 지적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결국 국내유가는 국제유가와 연동은 되지만 꾸준히 지적돼 온 한계가 여전히 작동했습니다. 국제유가 하락기에는 '하락률은 낮게, 속도는 느리게' 반영했습니다. 반면 국제유가 상승기에는 '상승률은 높게, 속도는 빠르게' 반영했습니다. 그게 정유업계든 주유업계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업계가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정유사든 주유소든 가격을 상식적으로 책정하면 누군가의 눈치를 볼 일이 없을 겁니다. 대통령까지 나선 마당에 이들은 '내릴 땐 편지 올릴 땐 5G'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을까요?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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