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향한 과몰입, 박지훈이 건드린 시대의 감정 [유수경의 무비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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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가 1,2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매일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다.
관객들이 단종이라는 인물에 유독 깊게 감정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단종을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에 쉽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객이 단종에게 과몰입하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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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보다 상처 입은 존재에 마음 쏠리는 시대
권력을 가졌지만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아이러니

‘왕과 사는 남자’가 1,2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매일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둘러싼 진짜 열기는 다른 데서 감지된다. 관객들이 단종이라는 인물에 유독 깊게 감정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과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두고 이른바 ‘단종 앓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단종은 오래전부터 비극의 아이콘으로 소비돼 온 역사 속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권력 다툼 속에서 폐위되고 비극적 최후를 맞은 그의 삶은 한국사에서 가장 애틋한 서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관객들이 단종을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에 쉽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번 반응은 조금 결이 다르다. 단순한 역사적 연민을 넘어 지금을 사는 우리가 그 얼굴에 자신을 겹쳐 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대중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강자에게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이겨내는 영웅, 권력을 움켜쥔 승자, 흔들리지 않는 인물보다 시스템 안에서 소모되고 관계 속에서 밀려나며 감정을 삼켜야 하는 존재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단종은 왕이며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다.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다. 겉으로는 권력을 가졌지만 실질적인 주도권은 없는 상태,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불안, 감정을 드러낼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억눌림에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박지훈의 연기는 결정적이다. 그는 단종을 전형적인 비운의 군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과장되고 장엄한 톤으로 캐릭터를 무겁게 덮기보다 감정을 쉽게 터뜨리지 못하는 인물의 결을 섬세하게 쌓아 올린다. 그래서 그가 연기하는 단종은 슬픈 왕이기 이전에 너무 이른 시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세계와 맞닥뜨린 한 인간으로 보인다.
또한 중요한 건 박지훈이 단종을 불쌍한 인물에만 가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약한 존재를 연기하면서도 그 안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슬픔과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존엄을 함께 담아낸다.
관객이 단종에게 과몰입하는 것도 그래서다. 버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이가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에서 대중은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자기 연민과 자기 위로를 발견한다. 그래서 단종의 슬픔은 오래된 역사 속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의 관객들에게 더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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