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사령부, ‘불로소득 끝판왕’ 일본 기생지주제를 해체하다 [장준영의 ‘지피지기’ 일본역사]
![일본 재정정책 책임자로서 농민 몰락과 기생지주제 탄생의 토양을 조성한 마쓰카타 마사요시. [출처 : 일본국회도서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ned/20260313111606325oxpl.png)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는 극심한 부의 편중 현상과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 그리고 부의 세습 현상은 헌법에 적시한 경제민주화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한다. 이런 작금의 우려할 만한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투자 세력과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역대 정부는 번번이 부동산 시장과의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가 시장을 완벽하게 제압한 사례가 일본 역사에도 보인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 점령군 맥아더사령부가 단행한 기생지주제 해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회에는 ‘불로소득 끝판왕’ 일본 기생지주제의 흥망에 관해 소개해 보겠다.
“수술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죽었다”
1880년대 초반 일본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린다. 메이지 신정부가 벌인 대만 침공과 세이난전쟁 등 무사 출신들이 일으킨 내란 진압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방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재정정책 책임자 마쓰카타 마사요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강력한 긴축 재정정책, 즉 디플레이션 유도정책을 추진하여 지폐 발행량을 축소하고 증세에 나섰다. 당시에는 산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농업밖에 없었던 만큼, 증세의 부담은 농민들의 몫이 되었고 농민의 조세 부담률은 15.7%에서 34.1%로 급증했다. 디플레이션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자 농민들의 세금 체납과 부채는 쌓여만 갔다.
이 시기에 매각된 농경지가 14%에 이르렀고 담보로 잡힌 농지는 19.4%나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경작지의 30%가 소작지였던 것에 비해 메이지 시대는 50%로 늘어났고 소작농가는 전체 농가 가운데 70%나 되었다. 소작인이 지주에게 바치는 현물 소작료는 50~60%에 달했다. 마쓰카타의 긴축 재정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은 잡혔으나 농촌경제는 파탄이 났다. 역사학자 나카무라 다카히데는 마쓰카타 재정정책을 가리켜 “수술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죽었다”라고 혹평했다.
![일본정부가 대주주의 토지를 강제로 매입하면서 발행해 준 농지피매수자 국고채권. [출처 : 야후재팬 화상]](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ned/20260313111606801bhig.png)
군국주의 천황제를 지탱해준 기생지주제
자작농 몰락으로 자작농의 농지 매각이 잇따르면서 상당 규모의 토지가 지주와 고리대금업자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 시기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면서 다수의 소작인을 밑에 두고 소작료 수입만으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대지주들이 전국적으로 출현했다. 소작료에 기생해서 수익을 취하는, 이런 형태의 지주제를 기생지주제라고 부른다.
소작인들로부터 거둬들인 소작료를 통해 막대한 불로소득을 확보한 대지주들은 이 자금을 공사채와 주식에 투자하여 초기 일본 자본주의 형성에 일익을 담당했다. 일본 산업혁명기에는 중앙에는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로 대표되는 재벌이, 지방에는 대지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 재벌이 각자 뿌리를 내리면서 일본 자본주의의 양대 산맥을 형성해 나갔다.
정치적 측면에서 일본 제국의회의 상원 격인 귀족원 의원 선출 규정 가운데 ‘30세 이상의 남자로서 고액 납세자’ 항목에 근거해서 기생지주가 귀족원 의원으로 진출하는 사례를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5엔 이상의 세금 납부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선거법에 따라 지방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방의회 의원에 다수 포진,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권력 집단으로서의 면모도 드러내며 근대 일본 농촌의 지배층으로 군림했다.
기생지주는 재벌, 군벌과 함께 군국주의 천황제를 지탱하는 3대 축으로 입지를 굳히는데 이는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일본에 진주한 연합군사령부가 척결 대상으로 삼는 근거가 된다.
![일본 기생지주제를 해체한 미국 맥아더 사령관. [출처 : 야후재팬 화상]](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3/ned/20260313111607062eycu.png)
농지개혁에 관한 맥아더사령부 명령, SCAPIN-411호
일본 점령군 맥아더사령부는 1945년 12월 9일 ‘수 세기에 걸친 봉건적 압제 아래에서 일본 농민을 노예화해 온 경제적 질곡을 타파할 것’과 ‘부재지주가 경작자에게 농지소유권을 이전 할 것’을 내용에 담는 농지개혁안을 이듬해 3월 15일까지 제출하라고 일본 정부에 명령을 내렸다(맥아더사령부 명령, SCAPIN-411호). 이로써 일본 농지개혁의 단초가 마련되어 일본 국회는 이듬해 10월 제2차 농지개혁법으로 불리는 개정농지조정법과 자작농 창설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켰다. 맥아더사령부는 소작농이 고율의 소작료를 부담하는 제도, 즉 기생지주제가 군국주의의 기반이 되었다고 보고 지주제 해체를 지시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지침에 따라서 부재지주가 소유한 소작지 전부와 마을 거주 지주가 소유한 토지 가운데 1헥타르를 제외한 소작지는 정부가 직접 강제 매수하여 소작인에게 매각하는데 소작인 측은 연리 3.2%에 30년 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매수한 토지 약 193만 헥타르를 약 475만 농가에 분배했다. 그 결과 자작 농지는 90%로 확대되고 소작지는 9.9%로 축소되었다.
이로써 ‘불로소득 끝판왕’ 일본의 기생지주제는 완전히 해체되고 자작농 시대로 접어들었다. 임금노동자와 함께 일본공산당의 주요 지지기반이던 소작농이 토지를 갖고 자작농이 되자 보수계 정당 지지로 돌아서, 전후 일본 농촌은 보수정당의 텃밭으로 변모했다. 이 농지개혁은 맥아더사령부가 일본에서 실시한 개혁 조치 가운데 가장 혁신적이며 성공한 것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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