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해협에 기뢰 설치까지…‘스태그플레이션’ 공포 확산
반도체·화학·물류 산업 타격…경제 전방위 충격 불가피
(시사저널=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대항한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1970년대 '오일쇼크'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을 남겼고,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명사가 됐다.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산업 전반에 걸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여기에 스태그플레이션 해결을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 경우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꽉 막힌 오일 대동맥, 경제 숨통을 조이다
지금까지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유가 급등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 비슷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아랍과 이스라엘 간 전쟁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원유를 무기화했다. 그 결과 원유 가격은 배럴당 3~12달러 가까이 폭등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는 이란 혁명으로 인한 파업으로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중동에서 나오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국가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당장 원유 및 LNG 가격이 상승하면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해지고, 이는 물가 및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이어진다.
물가 및 공공요금 인상은 1차 충격에 불과하다. 산업계 전반에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가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분야부터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반도체 공정에는 크립톤(Kr), 제논(Xe), 네온(Ne), 헬륨(He), 아르곤(Ar) 등 5가지 희귀가스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카타르로부터 전체 헬륨 수입분의 59%를 수입했다. 헬륨은 반도체 웨이퍼 냉각에 필수적인 원료로 천연가스를 냉각해 LNG를 만드는 과정에서 분리되기에 카타르가 전 세계 1위 수출국이다.
'산업의 쌀' 나프타 생산 역시 비상이 걸렸다. 나프타는 원유를 증류할 때 얻을 수 있는 탄화수소 혼합물로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 각종 화학제품 생산에 쓰인다. 우리나라는 필요한 나프타 중 절반은 수입하고 절반은 자체 생산하는데 국내 생산공장인 여천NCC 등은 고객사에 제품 공급 지연을 선언한 상태다.
항공 산업과 물류 사업은 유가 급등에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항공 산업과 물류 사업은 유류비 비중이 커 국제유가 급등은 비용 급증으로 이어진다. 자동차 업계도 생산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특히 유가 상승으로 타이어 비용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귀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원재료 상승이 지속될 경우 타이어에서 부품으로, 부품에서 완성차 순으로 영향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고유가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 경제학에서는 세로축에 물가상승률, 가로축에 실업률을 놓고 실업률과 물가 상승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필립스 곡선' 그래프를 기준으로 설명했기에 당시로선 스태그플레이션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현재 경제학에서는 임금과 원자재 가격 등이 오르면서 전체 생산이 감소하면 필립스 곡선 자체가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이전보다 경기 상황 및 고용은 부진하고 상품 가격 등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은 공급 감소, 생산비용 상승으로 촉발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다수 나라에서는 원유가 국가 공급망의 핵심 생산 원재료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국내외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지는 이유다. 실제 모건스탠리는 고유가 충격이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상태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상승한다면 국내 경제성장률은 최소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성장률이 0.8%포인트 낮아지고 소비자물가는 2.9%포인트 상승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스태그플레이션 닥치면 끔찍한 고통 예상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파훼법'은 금리 인상으로 알려져 있다. 금리 인상으로 화폐가치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법으로 공급 및 생산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앞서 1970년대 오일쇼크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자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폴 볼커는 금리를 20% 수준까지 올려 이에 대응했고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같은 금리 인상이 실제로 실행되면 자산시장 위축과 이자 부담 증가, 증시 급락 등 국가의 전방위적 고통이 수반된다. 2022년 미국발 금리 인상 당시 국내외 경제가 얼어붙었던 경험이 강도 높게 재현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발작하는 이유가 있다. 특히 GDP 대비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는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지출 급증으로 국가재정 위험이 한층 가중된다. 미국만 하더라도 연간 국가재정의 20%가량을 국채 이자 비용으로 써야 하기에 미국 국채 금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다.
우리나라는 당장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 최대한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과 유럽, 우리나라 등은 이번 호르무즈해협 봉쇄 사태로 시장금리가 올라가는 방향으로 반응하고 있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유가 수준이 배럴당 90달러에서 고착화되는 경로를 배제하기 어렵다"며 "인플레가 재차 3%대로 반등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채권시장의 금리 인상 경계심이 강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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