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發 쇼크에 출렁이는 국제유가…이재명 정부 ‘필살 카드’ 통할까
국제유가 변동에 따라 추가 조치 예정…‘유가 대응 풀 패키지’ 가동하나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중동전쟁의 불씨가 밀어올린 국제유가 여파로 국내 기름값까지 오르자 정부가 결국 '가격 통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석유제품 판매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다. 국내 석유 가격이 시장에 맡겨진 1997년 이후 사실상 사라졌던 정책이 29년 만에 다시 시행됐다. 고유가가 물가와 민생 부담을 빠르게 끌어올리자 정부가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초강수를 택한 것이다.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선을 두고 2주 단위로 조정하는 방식을 통해 유가 급등을 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보조금 지급, 유류세 인하 카드 준비 등 '유가 대응 풀 패키지'를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가운데, 고유가 충격을 넘기기 위한 정부의 처방이 시장에서 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선 설정
중동 정세 불안으로 치솟은 국제유가는 국내 기름값에 즉각 반영됐다. 3월12일 유가 정보 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휘발유와 경유의 전국 평균 가격은 1900원선에서 움직였다. 중동 사태 발발 이후 전국 주유소 기름값은 10일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가 소폭 하락했음에도 여전히 높은 가격을 유지 중이다.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 유가 급등의 여파가 국내 기름값 상승으로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다.
최근에는 인천 중구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 매진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기름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 바 있다. 해당 주유소가 리터당 경유·휘발유를 1700원대에 판매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변 지역에서 주유하려는 차량 행렬이 대거 몰리며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내일 기름값은 오늘보다 더 비쌀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자 소비자들은 차량 운행을 줄이거나 '오피넷' 검색을 통해 기름값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나섰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정액보다 10%가량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상품권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어났다.
특히 연료비 비중이 높은 운수업·택배업 종사자들이나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농어민들의 고충은 크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름값이 1주일 새 400원 이상 오르면서 25톤 화물차를 운행하는 일부 운수업 종사자들은 월 200만원에 달하는 추가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난방을 가동해야 하는 하우스에서 농산물을 재배하거나, 봄철 농번기를 앞두고 경유를 대거 소비하는 트랙터를 운영해야 하는 농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유가 상승은 곧 물류비와 에너지 비용 상승 등으로 이어진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위기 속에서 유가 폭등의 여파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고심하던 정부는 석유제품의 최고 판매 상한선을 정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시장가격 통제에 따른 공급 절벽 등 부작용과 재정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최근 국내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 돌파를 목전에 두자 초강수를 둔 것이다.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별 임대료나 물류비 차이가 커 일괄적 가격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가격 형성이 시작되는 정유사 공급가의 상한을 정해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 실효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고가격제는 2주 단위로 시장 상황에 따라 운영한다.
산업통상부가 3월12일 발표한 '석유제품 가격 안정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1차 최고가격으로 리터당 보통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을 설정했다. 이는 3월11일 정유사가 제출한 평균 공급 가격과 비교해 휘발유 109원, 경유 218원, 등유 408원 저렴한 수치다. 제도의 해제 시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과 국제 유가 추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최고가격제로 시중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을 대비해 매점매석 행위를 금지하는 고시도 시행했다.
최고가격제의 경우 시장 왜곡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시적 시행 필요성이 거론된 바 있다. 한국은행은 3월12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의 '가격상한제에 관한 의견' 질의에 "국제 유가 급등과 같은 큰 외부 충격 발생 시 소비자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 수요 발생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답했다.

단기대책 넘어 유류세 인하 카드도 준비
앞서 정부는 유류세 인하, 유가연동보조금 한시 상향 등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해 중동 상황이 민생과 경제·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계획도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운수업·택배업 종사자, 농어민 등 계층을 지원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재 유류세 인하율은 휘발유 7%, 경유·LPG 10%다. 휘발유는 리터당 57원, 경유는 58원, LPG는 20원의 가격 인하 효과가 적용되고 있다. 이번 석유제품 가격 안정 방안에는 빠졌으나, 향후 국제유가 변동 등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유류세 인하 카드도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류비가 운송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유 화물차, 노선버스, 택시 등 유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 2월 말 만료된 경유 유가연동보조금도 4월 말까지 2개월간 연장해 지급하기로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25톤 화물차를 운행하며 한 달에 2502리터의 경유를 사용하는 화물차주의 유류비 실 부담은 최대 월 44만원 감소할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유사들의 폭리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초과 이익을 세금 등 형태로 환수하는 일명 '횡재세' 도입 필요성도 제기됐으나,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리스크 변수가 여전한 만큼, 대응 정책은 '장기전'에 대비한 패키지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사상 최대 규모로 비상 비축유를 방출했음에도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긴장이 계속되면서 원유 공급 차질 우려는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3월12일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선박 3척이 이란군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결국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거나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호위 시스템이 구축돼야 유가가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현재의 고유가 혹은 변동성 확대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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