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정해졌고 넌 관세만 내라”는 美 301조 조사 [트럼프 스톡커]
美, 韓 등 16개국 상대 무역법 301조 조사 개시
7월 말까지 ‘과잉생산’ 주시...상호관세 대체용
中 ‘강제노동’ 별도 조사...회담 협상안 가능성
EU “합의 위반하면 대응”...약소국들은 눈치만
金총리 밴스 또 만나...전문가들 “쿠팡과는 무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관세를 위법으로 판단한 데 따라 이를 만회하기 위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했다. 지난해 부과한 상호관세, 합성 마약 펜타닐 관세 등이 무효화되자 대체 수단으로 재정 수입을 유지하겠다는 복안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4일부터 무역법 122조에 따라 전 세계 모든 무역 상대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조사를 위한 시간을 벌고 있다. 무역법 122조는 대통령이 국제수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량을 제한하는 쿼터를 설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또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 행동 등에 맞서 행정부에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주는 조항이다. 불공정 무역 관행이 먼저 발견돼 관세를 부과하는 게 아니라 관세를 부과할 목적으로 그 근거를 찾아보겠다는 다소 황당한 절차를 밟는 셈이다. 이는 미국이 관세 부과를 위해서라면 과잉 생산 등 어떤 자의적인 이유라도 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조사 대상에는 중국 등 적성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대만 등 동맹국도 다수 포함됐다. 외교·안보적 관계가 아니라 충분한 돈을 지불할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를 우선 조사하는 분위기다. 이란 사태로 가뜩이나 글로벌 경제가 어려운 국면에서 무역 조사 대응까지 겹져 각국의 부담이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제 정권과 무관하게 미국의 관세를 상수로 보고 무역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USTR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외국의 과잉 생산 문제를 지적하며 “기존 미국 내 생산을 대체하거나 미국 제조업 생산에 대한 투자·확장을 방해한다”며 “미국은 많은 분야에서 상당한 국내 생산 능력을 상실했거나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외국 경쟁사들에 뒤처졌다”고 주장했다. 그리어 대표도 전화 브리핑에서 “이번 조사는 특정 경제권의 제조업 부문의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과 이에 연계된 행위, 정책, 관행을 검토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 조사로 과잉 생산 능력과 다양한 불공정 무역 관행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잉 생산 능력은 과잉 생산, 지속적인 무역 흑자, 제조업의 낮은 활용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리어 대표는 이와 함께 과잉 생산이 발생하는 이유로 “보조금, 억제된 임금, 국영 기업의 비상업적 활동 등 시장 수요와 동떨어진 생산·수출 촉진 정책이 포함될 수 있다”며 “외국 수출품의 진입을 막는 시장 장벽, 부적절한 환경, 노동 보호, 보조금 대출, 금융 억압, 통화 관행 등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디지털 서비스세, 의약품 가격, 수산물·쌀 시장 접근성, 해양 오염 등 과잉 생산 능력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추가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어 대표는 이어 조사 종료 시점을 현 10% 글로벌 관세의 150일 시한 만료 전으로 제시했다. 오는 7월 하순 전에는 조사가 끝날 것이라는 뜻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달 17일 서면 의견 제출과 공청회 참석 요청 접수 창구 개설, 다음달 15일 의견 제출과 요청 마감, 5월 5일 공청회, 5월 12일 당사자 반박 의견 제출 등을 일정으로 내걸었다. 그리어 대표는 한국, 일본, EU 등과 이미 맺은 무역 합의에 대해 “합의는 그대로 유지된다”며 “해당 합의에서 상대국들은 관세·비관세 장벽을 낮추기로 했고 미국은 특정 추가 관세를 조정했기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품목별 관세 수단인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추가 조사 여부에 대해서는 “당장 몇 주 안에 새 조처를 예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약 60개국을 대상으로 한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 조처’ 겨냥 별도 301조 조사는 12일 개시한다.

미국의 무역법 301조 조사에 각국은 대체로 심란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3월 31~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준비하는 중국은 명시적으로 반대 입장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협상 카드로 내밀 수 있는 까닭이다. 무역법 301조는 2018년 3월 1차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됐을 때도 중국산 수입품에 대대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근거가 됐다. 강제 노동 관련 별도 조사 역시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은 이전부터 중국이 위구르족을 비롯한 무슬림 소수민족을 탄압하며 강제노동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중국 외교부 궈자쿤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중미 경제·무역 문제 처리에 대해 입장이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각종 형태의 일방적 관세 조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관세 전쟁과 무역 전쟁은 어느 한쪽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양측은 평등, 존중, 호혜의 기초 위에서 관련 문제를 협상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과잉 생산은 하나의 거짓 명제이고 중국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중미는 양국 정상 간 상호 교류와 관련해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중 정상회담과 관련해 베선트 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15∼16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무역·경제 의제를 조율하기로 했다. 외교가와 월가에서는 대체로 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무역 전쟁 휴전 연장 정도로 합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U는 중국보다도 한층 강렬한 반발 입장을 냈다. EU 집행위원회의 올로프 길 대변인은 12일 “무역법 301조 조사 개시가 지난해 EU와 미국이 체결한 합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할 것”이라며 “공동 성명에서 합의된 핵심 내용을 위반할 경우 우리는 단호하고 비례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른트 랑에 유럽의회 무역위원회 위원장도 “미국이 지난해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체결한 무역합의의 실질적 내용을 유지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관세를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럽의회는 그린란드 영유권 분쟁 등 미국과 갈등이 이어지자 지난해 체결한 무역 합의안을 아직도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한국의 청와대도 12일 “기존 한미 관세 합의에서 확보한 이익 균형이 훼손되지 않고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미국 측과 적극 협의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같은 날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DC에서 JD 밴스 부통령을 만났다. 김 총리가 밴스 부통령을 만난 것은 지난 1월 23일 이후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이다. 두 사람은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대미투자특별법이 이날 여야 합의로 한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황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무역법 301조 조사가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김 총리가 강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USTR은 11일 무역법 301조 조사 관련 관보 게재문에서 한국을 두고 “대규모나 무역 흑자를 통해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이 보인다”며 글로벌 상품 무역 흑자를 유지하는 수출 산업 분야로 전자 장비, 자동차와 부품, 기계, 철강, 선박 등을 꼽았다. USTR은 “무역 흑자가 2024년 크게 확대돼 520억 달러에 달했고, 이는 2023년의 100억 달러 상품 무역 적자에서 증가한 수치”라며 “석유화학 부문은 한국 정부도 생산 능력을 줄일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대미 상품·서비스 무역 흑자는 2024년 560억 달러로 증가했다”며 “2024년 3분기~지난해 2분기 4개 분기 동안 대미 상품·서비스 흑자가 약 490억 달러 수준을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견된 무역법 301조 조사를 두고 미국 전문가들은 “대법원 위법 판결에도 관세는 계속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법무법인 윌머헤일의 로런 맨델 국제무역 부문 파트너 변호사는 11일 뉴욕 맨해튼 코리아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관세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행정부의 메시지는 일관된다”고 강조했다. 맨델 변호사는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USTR에서 6년간 근무한 통상 전문가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투자 부문 수석 협상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특히 무역법 301조 부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맨델 변호사는 “무역법 122조에 따른 새로운 관세 체제는 전례가 없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나 다른 국가에 관세를 부과할 강력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무역법 301조 조사를 쿠팡 사태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수라고 입을 모았다. 앞서 쿠팡의 미국 모회사인 쿠팡Inc의 투자사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올 1월 22일 한국이 범정부 차원에서 회사를 공격하고 있다며 USTR에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직접 조사를 요청했다. 이후 이달 9일 USTR이 광범위한 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청원을 철회했다.
맨델 변호사는 “미국 기업에 대해 차별적이거나 불리한 대우를 하는 외국 정부의 관행에 대해 미국 행정부는 우려하고 있고 쿠팡은 그 중 하나일 뿐”이라며 “이는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EU 등 전 세계적인 흐름에 대응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스탠거론 연구원은 “미국의 관점에서는 쿠팡이 법적으로 미국에 등록된 데다 본사도 미국에 있고 연구개발(R&D)도 미국에서 수행한다는 점만 중요하다”며 “사업의 90%를 한국에서 수행한다는 점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쿠팡에 대해 전문적이고 철저한 조사에 기반해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모습을 보이면 미국도 불만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 전문가는 한국이 지난해 미국과 약속한 무역 합의 이행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스탠거론 연구원은 “한국이 대미 투자를 단행할 때는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한국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에 보탬이 되는 차세대 기술 프로젝트를 선택해야 한다”며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돈만 쓰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맨델 변호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 통상 관계의 근간이기에 미국이 협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한국만은 이를 준수하려 한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그래야만 미국 행정부에 ‘미국이 협정을 통해 이득을 얻는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새 관세 마련 작업에 돌입하면서 대법원의 상호관세 판결의 위력은 일부 희석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사가 진행되는 사이 새로운 무역 변수가 나타날 때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 이란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시장 불확실성 요인이 자꾸 늘어나는 모양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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