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와 '클리프행어' 합쳐 놓은 눈세상 [스위스 여행]
스위스 융프라우 산간지역은 11월부터 4월까지 겨울 왕국이다. 우리나라의 봄인 3~4월에도 스키를 탈 수 있다. 겨울 융프라우에서도 하이킹은 가능하다. 고도가 낮은 인터라켄은 강을 끼고 있어 사계절 러닝을 하기에 제격이다. 아름다움에 한적함을 더한 3~5월에 찾아도 걷기 좋은 코스를 소개한다.
천불동계곡 몇 배 늘려놓은 압도적 협곡
클라이네 샤이덱~벵엔 하이킹
융프라우의 겨울이 스키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클라이네 샤이덱의 열차 소리가 멀어지면,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 남는다. 스위스 알프스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싶은데 힘든 코스는 부담스럽다면, 이 코스가 안성맞춤이다.
클라이네 샤이덱Kleine Scheidegg에서 벵엔Wengen으로 이어지는 하이킹은 융프라우의 웅장함을 가장 가까이서, 편하게 만끽할 수 있는 산행 코스다. 해발 2,061m에서 1,274m로 내려가는 7km의 내리막길이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썰매를 빌려 타고 갈 수도 있다.
광활한 협곡과 압도적인 설사면, 설악산 몇 개를 이어 붙어 놓은 듯한 화려함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도, 독일가문비나무숲이 주는 상쾌한 공기에 폐가 청소되는 것만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임도 같은 산길이라 초보자도 어렵지 않으며, 다만 스키 코스와 평행을 이뤄 길이 이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이킹·썰매 코스 이정표가 있으며 외길에 가까운 내리막이라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 구간은 융프라우 지역 겨울 하이킹 중에서도 '풍경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대표적인 하산형 루트다. 설원을 가르는 스키어들의 속도를 벗어나 눈길 위를 천천히 걷는 이들에게 사랑받는다.
출발 지점만 찾으면 길찾기는 이미 반 이상 한 것과 마찬가지다. 클라이네 샤이덱 남쪽 철길을 지나면 임도가 벵엔으로 이어진 철길과 나란히 이어진다. 협곡 사면을 따라 이어진 길은 융프라우 지역에서 가장 아기자기한 변주곡이다. 클래식하면서도 현란한 파가니니 바이올린 변주곡처럼 휘감아 도는 협곡을 따라 압도적 능선과 계곡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 3시간을 걷는 것만으로 평생 소장할 만한 사진을 찍고, 살아 숨 쉬는 비경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다.
장점은 쉽다는 것. 내리막이라 미끄러짐과 관절을 조심해야 하지만, 어린 자녀와 함께 걸어도 큰 어려움이 없다. 중간 지점인 알멘드Allmend역에서 열차를 타고 벵엔 방면으로 내려가거나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올라갈 수 있다. 다만 무인역이라 버튼을 눌러야 정차한다.
이곳 하이킹을 변주곡에 비유한 것은 융프라우와 묀히를 두고 걷던 산길이 라우터부르넨 협곡을 따라 꺾어지면서 맞은편 비텐호른(2,756m) 산줄기와 방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높이는 낮지만 직벽에 가까운 압도적 사면을 따라 걸음걸음 달콤한 내리막 산길이 이어진다. 천불동계곡을 몇 배로 늘려놓은 것 같은 스케일을 보노라면, 한국인들은 보통 "부지런히 일해서 다시 와야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라우버호른(2,472m) 능선도 장관이다. 하이킹 코스가 라우버호른 능선 사면을 따라 이어지며 거침없는 능선의 설경은 실로 섬세해, 천재 화가의 작품을 파노라마로 펼쳐 놓은 것만 같다. 덕분에 내리막길은 느리지 않은 속도지만, 슬로모션처럼 느껴진다. 추억의 고전 영화 '러브스토리'의 설경, 나카야마 미호의 '러브레터' 설경,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클리프행어' 험산까지 모두 깃든 명작 같은 하이킹이다.
거리
: 7km
소요 시간
: 약 3시간(풍경 감상, 사진 촬영 시간 포함)
난이도
: 하(내리막 임도, 길찾기 쉽고 중간 무인역 알멘드에서 열차 이동 가능)
주요 포인트
: 협곡 따라 펼쳐지는 묀히, 융프라우, 비텐호른, 가문비나무숲, 라우버호른 능선
주의 사항
: 눈길과 빙판길이 있어 스틱과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
순백의 아름다운 고요에 사로잡힌 영혼
휘르스트~바흐알프제~휘르스트 하이킹
대중적인 하이킹 코스 중 가장 알프스다운 광활함과 압도적 능선의 힘을 누릴 수 있는 코스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이킹 코스지만 겨울(11월부터 5월까지)이면 이 길은 거친 바위 대신 부드러운 설원과 침묵으로 가득 찬다. 해발 2,167m의 휘르스트에서 시작해 '알프스의 눈Eye of the Alps'이라 불리는 바흐알프호수까지 왕복 6km, 2시간의 여정은 꿈속을 걷는 듯한 알프스 진경산수화 산책이다.

휘르스트 곤돌라 역에서 내려 '클리프 워크Cliff Walk'의 아찔한 전율을 뒤로하고 산책로에 들어서면, 소란스러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산장 겸 레스토랑 겸 전망대인 휘르스트는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빈다. 호수로 향하는 산길에 들면 공기가 달라진다.

인파는 사라지고 완만한 오르막이 꾸준히 이어진다. 눈 쌓인 겨울에도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화만 있다면 등산을 평소 하지 않았어도 큰 어려움 없이 경치의 감동에 푹 빠질 수 있다. 산행은 쉽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가볍지 않다. 레티(2,757m)와 파울호른(2,680m)의 막강한 아킬레스건 능선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 점에 불과한지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마침내 닿은 바흐알프호수는 얼어붙은 적막이자, 눈 쌓인 설원이다. 설원에서 뒤돌아서면, 비로소 베터호른(3,692m), 쉬렉호른(4,078m), 아이거(3,970)가 한눈에 든다. 그동안 책으로만 읽었던 그리스 신화가 살아난다. 신神이 인간의 모습으로 환생해 거인이 되어 우뚝 섰다.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전율, 이런 천국 같은 풍경을 모르고 살았다는 허망함이 동시에 밀려들어 아등바등 살았던 지난날에 감사하게 된다. 열심히 살았기에 여기 있는 것 아닌가.
여름철 쉬렉호른을 거울처럼 비추던 호수는 겨울이 되면 두꺼운 얼음과 눈 아래 잠이 든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거울 같은 투명하고 신비로운 모습은 없지만, 웅장한 산 속에 고요히 자리 잡은 호수의 터는 그 자체로 동화 같은 풍경이다.
걸음을 멈추고 거친 숨을 고르며 알프스 능선의 실루엣을 보노라면, 산이 이토록 경이롭고 드라마틱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일반 관광객도 이럴진대, 등산을 하던 이들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추억이 생기게 된다.

거리
: 왕복 6km
소요 시간
: 약 2시간(적설량과 풍경 감상 시간에 따라 상이)
난이도
: 하(3km 오르막 있으나 어렵지 않은 편)
주요 포인트
: 바흐알프호수에서 본 베터호른, 쉬렉호른, 피셔호른, 아이거의 감동.
주의 사항
: 제설된 눈길이지만 미들컷 이상의 등산화 신어야 안정적.
동네 사람만 아는 고요한 사색의 길
인터라켄 골드스빌 교회 유적 트레일러닝·산책
인터라켄 아레Aare강을 따라 스위스 사람처럼 러닝하고, 고도 120m를 높여 현지인만 아는 명소인 골드스빌 교회 종탑에 올라 경치를 즐긴다. 2.3km의 짧은 러닝 혹은 산책이지만 즐거움은 작지 않다. 융프라우 지역의 관문인 인터라켄은 어딜 가도 관광객과 스키어들로 붐비지만 현지인만 아는 뒷산과 강 따라 이어진 고즈넉한 트레일러닝 겸 산책 코스를 소개한다.
이 코스는 고지대의 파노라마 뷰에서 시작해 평온한 강변길을 지나 역사적인 유적지까지 이어지는 짧지만 알찬 구간이다.

출발은 아레강을 지나는 보리바주 브뤼케Beaurivage-Br.cke 다리이다. 이곳이 출발점인 까닭은 인터라켄 시내에서 여기까지 오는 도심은 관광 인파가 많아 현실적으로 러닝이 어려워서다. 다리를 지나면 왼쪽 아래로 강변 흙길이 나온다. 강을 따라 뛰는 트레일러닝의 시작점이며 인파가 확연히 줄어들어 생소한 느낌마저 드는, 현지인들만 아는 코스다.
한강보다 훨씬 작은 강이지만 고운 물빛과 클래식한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다. 강가의 캠핑장과 마을을 지나기도 하는 강변길은 1.5km를 달리면 열차와 사람이 통행 가능한 철다리가 나온다. 여기서 반대 방향으로 꺾어서 올라가면 링겐베르크Ringgenberg 마을 뒷산인 골드스빌로 이어진다.

마을길을 따라 오르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산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오르면, 한동안 경사로가 이어지지만 아쉬울 정도로 짧다. 산 정상에는 교회 종탑이 있다. 골드스빌 교회 유적Goldswil Church Ruins(681m)이며 지금은 종탑만 남아 있다. 아레강의 고도가 565m이므로 고도 120m만 높이면 닿는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120m 높이의 언덕이자 친근한 뒷산인 것.

골드스빌 교회는 11세기에 지어진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교회 중 하나이다. 지금은 건물 본체는 사라지고 독특한 형태의 종탑만 남아 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 마치 등대 같은 분위기다. 1661년 교구 기능이 링겐베르크로 옮겨가면서 폐허가 되었지만, 보존 상태가 좋아 국가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골드스빌은 탁월한 전망대다. 브리엔츠호수의 에메랄드빛 물결과 인터라켄 시내, 주변의 알프스 고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인터라켄 중심가와 달리 매우 고요하고 평화로워 러닝을 즐기거나, 사색하거나, 사진을 찍기에 최적의 장소다.
하산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거나, 뒤쪽 포장된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11/6' 도로에 닿는다. 여기서 왼쪽 인터라켄 방면으로 200여 m 가면 골드스빌 마을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버스를 타면 10여 분 만에 인터라켄 시내로 돌아올 수 있다. 동신항운VIP패스가 있으면 버스비 무료. 버스정류장에서 마칠 경우 2.3km이며 1시간(사진 촬영 포함) 걸린다.

거리
: 왕복 4.4km(종탑에서 왔던 길을 돌아가는 코스)
소요 시간
: 약 2시간(골드스빌마을에서 버스 탑승 시 1시간 소요)
난이도
: 하(오르막 있으나 어렵지 않은 편)
주요 포인트
: 아레강의 우아하고 고요한 정취와 골드스빌 교회 종탑의 파노라마 경치.
주의 사항
: 지도 앱 사용하면 길찾기 수월. SWISSTOPO앱 추천(국내 와이파이 구역에서 융프라우 지역 미리 다운받아 놓으면 효율적), 구글맵은 산길 취약해.
인터뷰: 융프라우 철도의 한국인 역무원 진혜진기차표 비싸서 바라만 보았으나 22년 후 융프라우 철도 역무원 되다

"처음 스위스에 왔던 게 2002년이었어요. 유럽 배낭여행을 하다 인터라켄까지 왔는데 융프라우 기차표가 너무 비싸서 올라가지 못하고 잔디 광장에서 멀찍이 산을 바라만 봤어요. 그때 나중에 여기서 꼭 살고 싶다는 꿈을 꿨어요. 지금 인터라켄에서 살고 이뤘으니, 꿈을 이룬 셈이에요."
인터라켄의 상징 융프라우 철도에서, 한국 국적의 역무원은 진혜진씨가 유일하다. 아이거글레처역을 주 무대로 활약하며, 한국인 특유의 친절함과 글로벌한 감각으로 무장한 그녀를 만났다. 그는 5개 국어를 하는 외국어 능력자다. 중국에서 10년, 일본에서 5년 살며 언어를 익혔고, 호텔리어인 독일인 남편을 2006년에 만나 독일어를 추가, 영어 포함 5개 언어를 구사한다.
그 꿈은 호텔리어인 독일인 남편의 스위스 발령으로 현실이 되었다. 5개 국어를 섭렵한 그녀는 스위스 인터라켄에 안착했다. 이전에는 중국 상해의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했으며, 글로벌 호텔 체인에서 일하며 전 세계를 누볐다.
주요 근무지인 아이거글레처역에서 그녀는 예약 상황을 점검하고 단체 관광객들의 좌석 지정 및 열차 운영 사인을 담당한다. 수백 명의 승객을 실은 열차가 정시에 출발할 수 있도록 결정하는 막중한 책임이 그녀의 손끝에 달려 있다.
언어에 능통하다 보니 역무원 업무 외에도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 전 세계에서 오는 VIP나 인플루언서들의 개인 투어 가이드 역할도 수행한다. 어디서든 일이 생기면 달려가는 '리베로' 같은 존재인 것. 다양한 국적의 손님을 응대하다 보니 재미있는 특징도 발견한다.
"일본 손님들은 매뉴얼에 매우 충실한 편이고, 한국과 중국 손님들은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이죠. 간혹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제게 화풀이하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은 매우 신사적이에요."
그녀의 취미는 하이킹이다. 가족과 함께 알프스를 걷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그에게 좋아하는 장소를 물었다.
"계곡 끝 마을인 슈테헬베르크Stechelberg와 그 너머의 브라이트호른Breithorn 능선을 좋아해요. 2박3일 일정으로 뮤렌에서 출발해 산장에서 자며 외시넨호수Oeschinensee까지 걷는 코스는 정말 환상적이죠."
스위스 영주권을 가졌고, 독일인 남편이 있지만 여전히 한국 국적을 고집하는 진혜진씨는 "우리나라 여권이 가장 편하고 좋다"고 함박웃음 짓는다.
알프스 칼바람에도 든든한 장비블랙다이아몬드 미션다운 4000M·글리세이드 장갑

알프스에서 빛을 발한 4,000m급 패딩이다. 블랙다이아몬드는 다섯 단계로 보온 옷 체계를 나누는데, 최고 등급이 원정급 미션Mission이다. 원정급 미션은 다시 3000M·4000M·6000M로 세분화되는데, 이 제품은 알프스 고산등반을 겨냥한 4000M급이다. 구스다운 패딩도 무게와 보온력이 천차만별이고, 내구성에 차이가 있다. 800필파워 중에서도 최상급이라고 몸이 느낄 만큼 다운이 부풀어 오르고 따스한 공기층으로 몸을 둘렀다는 착각이 들었다. 무게 600g에 불과해 충분히 그런 착각이 들 만했다. 비탈을 1시간가량 걸어도 지퍼만 조금 내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체온 조절이 가능해, 땀이 차지 않아 쾌적했다. 2-way 지퍼로 빌레이 장비 조작과 더 활동적인 움직임의 산행도 가능하고, 액정 폴리머LCP 립스타 소재는 초경량이면서 튼튼해 바위에 스쳐도 흠집조차 없었다.

글리세이드 장갑은 한 번 끼면 중독된다. 장갑 한쪽의 무게가 80g에 불과한데, 신슐레이트 단열제가 부풀어 올라 찬 공기를 차단한다. 100% 방수 가능한 드라이 인서트 소재이며, 손바닥의 염소 가죽은 거친 등반과 스틱이나 바위를 잡는 모든 활동에서 탁월한 내구성을 보여 준다. 가볍고 마찰에 강한 쉘 소재이며, 손목 부분에 조절 끈이 있어 눈이 스며드는 걸 막고, 끼고 벗기 편하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