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을 수집하는 15년 차 출판 편집자 [사람IN]

장일호 기자 2026. 3. 1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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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김흥구

드립커피 내리는 법과 티라미수 케이크 만드는 법을 새로 배웠다. 위생 교육을 받으러 간 강소영씨(45)에게 담당자가 물었다. “거긴 도대체 뭐 하는 곳이에요?” 순간 튀어나온 대답이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지난해 11월11일, 강씨는 서울 마포구에 15명 정도가 넉넉히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 ‘얼굴들’을 열었다. 사업자는 중복으로 등록했다. 그 덕분에 얼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술과 커피는 물론이고 꽃과 식물을 판매할 수 있다. 출판사도 될 수 있고, 서점이 될 수도 있으며, 독자가 모이는 북살롱이 될 수도 있다.

강씨는 ‘1인 다역’을 해야 했던 작은 출판사부터 분업이 철저했던 큰 출판사까지 두루 거치며 15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동료들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 출판사 창업을 예상하거나 권유했다. 그러나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굳이 나까지··· 싶었어요. 제가 책을 가지고 무언가를 한다면 책 자체보다는 책 ‘너머’에 대한 일을 해보자 싶었고요. 그때 생각난 단어가 공간 이름이 됐어요.” 강씨의 휴대전화에는 기억도 안 나는 시절부터 각종 얼굴 사진을 모아둔 ‘얼굴들’ 카테고리가 있다. 미국 독립영화 1세대에 속하는 존 카사베츠 감독의 영화 〈얼굴들〉도 좋아한다. ‘얼굴들’이 들어간 문장 역시 수집한다. “정말 거의 모든 책에 얼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이름은 모르거나 없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얼굴은 모두에게 있어요. 그 얼굴은 다 제각각이거든요.”

사랑스러운 제각각이 모이는 공간을 상상했다. 출판사를 차리면 원고를 ‘받아야만’ 하는데, 공간을 열어놓고 나니 타인에게 ‘줄 것’이 생겼다. 강씨는 그 점이 가장 기쁘다. 지난 3개월 동안 동료들이 애써 제작한 책을 자랑하는 자리를 여럿 만들었다. 마케팅 비용이 없어서, 외서라서, 학술서라서, 구간이라서···. 각종 이유로 북토크를 할 수 없었던 책들을 주인공의 자리에 올려놓으려 한다.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중요하고 필요한 책이 세상에는 너무 많았다. “사실 책은 언제나 안 팔렸거든요. 계속 어려웠고요. 제가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내내 사양산업이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책 만드는 사람은 계속 나타나고, 책도 계속 출간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와 가능성을 만들어내려는 마음에 저 나름대로 응답하고 싶었어요.”

‘얼굴들’이 내놓은 첫 번째 출판물은 독립 출판물로, 초판본만 판매된다. ⓒ김흥구

출판사로서 얼굴들이 내놓은 첫 번째 출판물은 진(zine) 형태다. 4권이 동시에 나왔다. 각 권은 200자 원고지 50장 분량이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엽서 크기로 만들었다. 온·오프라인 서점에 등록하지 않은 독립 출판물로 자체에서 유통하고, 초판본만 판매한다. 번역가 서제인, 미술비평가 남웅, 활동가 나영정(타리), 팔레스타인 구호선에 탑승했던 ‘항해자’ 김아현(해초)까지 저자 네 명에게 강씨가 부탁한 이야기는 단 한 줄이었다. 지금 가장 쓰고 싶은 뜨겁고 절실한 이야기를, ‘그게 무엇이든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관하여’ 요청했다. 이 출판물이 앞으로 또 무엇으로 이어질지 강씨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가능성’을 본다. 그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쓴 시의 한 구절, ‘나는 가능 속에 살아요(I Dwell in Possibility)’라는 문장을 기대처럼 품는다.

얼굴들은 강씨가 편집자로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고 나서, 자신이 쌓아올린 경력을 모두 해체한 뒤 새롭게 가보는 낯선 길이다. 비효율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편집자로 일할 때도 책보다는 그 언저리에 머물다가 ‘이게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이어진 기획이 많았다. “저는 굳이 따지자면 ‘활동가 덕후’ 같아요. 책이야말로 운동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책과 현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얼굴과 얼굴이 만나는 공간이야말로 ‘얼굴들’의 정체성이다. 3월14일에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이곳에 온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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