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좀 다녀올게” 그 길로 3500㎞…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한 67살 할머니 [.txt]

이유진 기자 2026. 3.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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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트레일 중 하나 일시 단독 종주
30년 남편 폭력에도 잃지 않은 자신의 길
왜 걸었냐 물으니 “그냥 재미 삼아서요”
엠마가 코네티컷에 도착했을 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에 기사가 실렸다. 미국 소셜 미디어 레딧에서도 “비싼 장비가 사고 싶어질 때 엠마 할머니의 사진을 본다”며 이 신문 기사를 인용하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수오서재 제공

11명의 자녀와 23명의 손주, 2명의 증손주를 둔 67살의 할머니는 걷기로 마음먹었다. 식구들에게는 “산책 좀 다녀올게”라고 가볍게 말했다. 초경량 도보여행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에게는 지도, 침낭, 텐트는 물론이고 변변한 가방조차 없었다. 8㎏쯤 되는 자루 하나를 어깨에 메었을 뿐이다. 치아는 몽땅 뽑아 의치를 해 넣었고 엄지발가락엔 큰 혹이 있었다. 안경 없이는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엠마 게이트우드. 1955년, 미국 3대 장거리 트레일 중 하나인 애팔래치아 트레일(AT)을 한번에 단독 종주한 최초의 여성이다. 이 길은 조지아주에서 메인주까지 14개 주를 가로지르는 3500㎞ 코스로, 동부 해안을 따라 높이 솟은 산맥을 따라 이어진다. 그보다 앞선 1952년,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여성이 있긴 했지만, 그는 동료와 함께 걸었고 구간을 나눠 걸었기에 일시 단독 종주는 아니었다. 엠마는 홀로 하루 평균 25㎞를 걸었다. 철조망을 넘고, 방울뱀을 비롯한 야생 동물을 만나고, 밤에는 돌을 달궈 품고 잠을 청했다.

엠마 게이트우드(오른쪽)와 남편 페리 게이트우드. 결혼 직후 찍은 사진이다. 수오서재 제공

1887년 미국의 어느 시골 가난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엠마는 열다섯 남매 중 가운데 딸이었다. 어려서부터 온갖 집안일을 떠맡았고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할 때 한 남자를 만났다. 마뜩잖았지만 남자가 반협박 조로 나와 1907년 결혼했다. 3개월 뒤부터 남편이 때리기 시작했고 30년간 폭력은 지속됐다. 주먹질을 피해 엠마는 숲으로 도망치곤 했다. 거기서는 숨을 쉴 수 있었다. 한동안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엠마는 끈질긴 투쟁 끝에 1941년 이혼하고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지도. 수오서재 제공

11명의 자녀가 모두 성장한 다음, 엠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산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에 홀로 섰다. 그는 고독과 자연과 지성을 사랑했다. 집안일을 할 때도 백과사전 전집으로 지식을 익혔고, 매일 신문과 책을 탐독했던 터였다. 고대 그리스 문학,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 같은 모험 이야기를 좋아했으며, 시 쓰기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1949년 8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애팔래치아 트레일 관련 기사를 발견하고 엠마는 그 길에 서겠다는 꿈을 품게 된다. 그때까지 이 길 전체를 한번에 종주한 사람은 얼 셰퍼라는 29살의 남성 군인 한 사람뿐이었다. 엠마는 이 트레일을 단독 종주한 최초의 여성이 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ㅣ 벤 몽고메리 지음, 우진하 옮김, 수오서재, 1만9800원

길에서 만난 아이들은 엠마를 ‘떠돌이 할머니’라고 손가락질했다. 어른들은 위험하다며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엠마는 죽어도 좋았다. 길을 걷다가 산짐승을 만나면 “아직 너희들 밥이 되려면 멀었어”라고 말했다. 걷는 동안 안경이 부러지고, 물살에 휩쓸리고, 허리케인을 만나고, 독사에게 물릴 뻔했다.

자루를 멘 초라한 방랑자 할머니의 이야기는 서서히 퍼져나갔다. 엠마가 길을 떠난 지 48일째 되던 날, 그는 종주 계획을 무심코 누군가에게 털어놨고 급기야 신문에까지 나오게 됐다. “67세의 오하이오 여성, 3500㎞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도전”이라는 헤드라인이었다. “게이트우드 할머니, 전진을 계속하다.” “흐리거나 맑거나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엠마 할머니’(그랜마 게이트우드)로 잘 알려진 미국의 초경량 하이킹 개척자 엠마 게이트우드(1887~1973). 수오서재 제공

신문이 중계식으로 그의 발걸음을 보도하면서 ‘게이트우드 할머니’에 대한 무시와 질타는 점점 환대로 바뀌었다. 많은 미국인이 엠마를 응원하고 여행의 성패를 궁금해했으며 주부들은 신문 기사를 오려 주방에 붙여 두었다. 기자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물을 때 엠마는 답했다. “그냥 재미 삼아서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소일거리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요.”

1955년 산 아래 농가를 찾아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엠마. 엠마는 이 사진을 찍은 톰슨 부부에게 하이킹의 영감을 주었고, 그들은 결국 애디론댁 산맥의 주요 봉우리 46개를 모두 정상까지 올랐다. 수오서재 제공

1952년 동료와 함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여성 밀드러드 램은 ‘평화의 순례자’로 유명하다. 그는 ‘평화를 위한 4만 킬로미터 걷기’라는 목적을 선명하게 밝혔다. 엠마의 걷기에는 뚜렷한 답이 없는 듯도 했다. 분명한 건 그가 고독과 자유를 사랑하고 홀로 있을 때 가장 행복해했다는 점이다. 68살 생일을 26일 앞두고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끝에 서서 그는 말했다. “나는 해냈어.” 지팡이 하나, 봇짐 하나가 전부였다. 이제 세계의 트래커들은 값비싼 장비를 사고 싶을 때마다, 나이를 핑계로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엠마를 떠올린다.

엠마의 발걸음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10년대 중반까지 1만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는데, 엠마처럼 한번에 완주한 사람은 훨씬 적다. 1964년까지 엠마는 이 트레일을 두번 더 완주했다. 세번째 여행 때는 개에게 습격받아 다리를 물렸고, 무릎도 다쳤다.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에게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 비하면, 이 정도 트레일은 별거 아니더군요.”

1973년 86살의 나이로 영면하기까지 엠마 게이트우드는 지구 둘레의 절반에 육박하는 2만2500㎞ 이상을 걸었다. 수오서재 제공

그는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3500㎞가 넘는 오리건 트레일을 완주했으며 칠순이 넘어서도 길 위에서 자녀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올해 나는 모두 합쳐서 1125㎞ 가량을 걸었고 테니스화는 두 켤레가 닳아 떨어졌다. 이제 나는 일흔두살이고 아직도 더 많이 걸을 수 있단다.” 엠마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전체를 세번 완주한 최초의 인물로 기록됐다. 1973년 86살의 나이로 영면하기까지 지구 둘레의 절반에 육박하는 2만2500㎞ 이상을 걸었다.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을 쓴 저자 벤 몽고메리는 미국의 탐사 보도 전문 저널리스트로 게이트우드가 남긴 일기, 편지, 유족 인터뷰를 통해 엠마의 삶을 자세하게 복원했다. 걷기 문화를 없애버린 미국 자동차 문화와 도로의 질주, 1950년대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대표적 사건들, 선주민을 몰아낸 정착민 식민주의까지 아울러 미국 근현대사 속에 엠마의 삶을 아로새겼다. 덕분에 이 책은 어느 노년 여성 도보 여행가가 주인공이 되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엠마의 자녀들은 말했다. “어머니는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어’라고 하셨어요.” 저자는 말한다. “그녀는 자기 힘으로 버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딘가로 향하든, 무엇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든, 흐리든 맑든 내리막이든 오르막이든, 자기 힘으로 한발 한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옮기려 하는 모든 이를 위한 이야기다.

1971년 신시내티에서. 수오서재 제공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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