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화·디톡스·영양제 루틴…오늘도 나는 ‘완벽한 나’를 샀다 [.txt]
유튜브·SNS 콘텐츠 보며 영양제 사들이는 현실
불안과 강박 대신 다정한 식탁으로 돌아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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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은 평소대로 먹었는데, 이 효소 하나 추가했다고 라인이 달라졌어요”, “오후 3시만 되면 기절했는데, 이 영양제 먹고 야근까지 거뜬해요”, “병원 약으로도 안 잡히던 염증이 이 조합으로 잡혔어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만 열면 쏟아지는 문구들이다.
‘영양제 과잉 시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5조9626억원에 달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미국의 영양제 산업은 지난 30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해 1994년 약 4000여종에 불과하던 시판 제품 수가 오늘날에는 9만5000종에 이른다. 인스타그램에만 약 5만명의 피트니스 인플루언서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이 ‘꼭 먹어야 된다’고 강조하는 영양제들을 모두 챙겨 먹으려면 한달에 최소 20만∼30만원 이상은 써야 한다.
과연 이렇게까지 먹는 게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왜 이렇게 영양제를 챙겨 먹게 되었을까? 이 같은 영양제 과잉 섭취 현상이 뜻하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무엇일까?

약사 출신 푸드라이터 정재훈 작가가 쓴 ‘건강 구독 사회’는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 시대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먼저 약과 식품의 경계는 자연에 새겨져 있는 선이 아니라, 현대의 법과 제도가 그어놓은 선이라고 말한다. 스펙트럼처럼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의 세계에서 한쪽 끝을 약으로 지정하고 다른 한쪽 끝을 식품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사이에는 넓고 모호한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건강기능식품은 이 회색지대를 파고들어 제도화한 결과물이다.
약은 어쩐지 독하고 부작용이 있을 것 같고, 식품은 어쩐지 농약에 오염돼 있거나 영양이 충분치 않을 것 같은데, 건강기능식품은 순하면서 부작용도 없고 영양이 가득할 것 같다는 착시를 준다. 이런 인식은 제도의 공백에서 비롯된다. 약은 수천명, 수만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고 최악의 부작용까지 고지할 의무가 있지만, 건강기능식품은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칠 의무도 위험을 알릴 의무도 없다. 그래서 안전해 보일 뿐인데,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이 팔린다. 그 초과분을 설명하는 것이 현대인의 독특한 ‘감정 지도’다.
약을 먹는 건 병에 걸린 환자의 행위지만, 영양제를 먹는 순간 자신의 건강과 미래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힙한 사람’이 되는 심리적 이득이 있다. ‘갓생러’ ‘자기관리 끝판왕’ ‘스마트한 엄마’ 같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모닝 루틴, 셀프 케어, 영양제 타임, 항산화, 디톡스 같은 썸네일로 클릭을 부르는 인플루언서들의 탄탄한 몸매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욕망을 자극한다.
요지는 우리는 건강해지기 위해 영양제를 산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인스타그램 속 그들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을 사고 있는 셈이다. “선명한 복근, 완벽한 레깅스 핏, 땀에 젖은 채 거울을 응시하는 모습. 소셜 미디어는 건강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승인받아야 하는 일종의 수행으로 바꿔 놓았다.”
무엇보다 의사들과 전문가들은 “검사를 해봐야 한다” “원인이 복합적이다” 같은 답답한 말이나 늘어놓는 반면, 이들 인플루언서는 “이 영양제 당장 갖다 버리세요” “이 신호 무시하면 10년 뒤에 후회합니다”라며 1분 만에 진단부터 해결책까지 명쾌하게 제시한다.
한편, 과거 약이 결핍을 채우고 고장을 수리하는 치료의 도구였다면, 오늘날의 약은 정상 범주의 몸을 더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올리는 향상의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비만 치료제가 전국적인 열풍이 된 것도 ‘내 몸을 내가 원하는 최상의 상태로 튜닝해 주는 도구’라는 환상을 심어준 탓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는 ‘공부 잘하는 약’으로, 당뇨약은 ‘노화 방지제’로, 탈모 치료제는 ‘헤어 스타일링의 기초’로 소비되는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책은 위고비, 성장 호르몬, 오메가3, 프로바이오틱스, 단백질 보충제 등 요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다양한 영양제와 건강 관련 질문에 대해 상세한 답변을 들려준다.
하지만, 결국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그래서 약사님은 뭐 드시는데요?’일 터.
저자의 답변은 명쾌하다. 첫째는 공포 마케팅에 속지 말고 두려움 없이 음식을 먹어라. 적당히 먹는다면 세상에 나쁜 음식은 없다. 둘째는 영양제는 구원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다.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섭취하라. 셋째 최고의 식단은 관계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앞사람과 눈을 맞추며 먹어라.
결론은 불안과 강박 대신 우리가 잃어버린 다정한 식탁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다.
글·사진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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