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과도 싸우고 나치와도 싸워야 했던 역설의 중립

최윤필 2026. 3. 1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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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전시 핀란드가 나치 독일과 협력한 사정은 아일랜드보다 더 절박하고 비극적이었다.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중부(동)유럽과 북유럽 영토를 나눠 갖기로 한 소련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직후인 1939년 11월 핀란드를 침공했다.

핀란드는 나치 이념에 동조해 독일과 정식 동맹(Axis 가입)을 맺은 게 아니며, 단지 소련의 재침공을 막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협력한 것일 뿐이라고, 자신들의 전쟁은 2차대전과 별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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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2차대전 유럽의 중립국들- 핀란드
나치와 군사동맹을 맺고 소련과 전투를 벌였던 '계속전쟁 '당시의 핀란드군. 핀란드인 1,400여 명은 나치 SS 기갑사단에 자원병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Military Museum of Finland

(이어서)2차대전 전시 핀란드가 나치 독일과 협력한 사정은 아일랜드보다 더 절박하고 비극적이었다.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중부(동)유럽과 북유럽 영토를 나눠 갖기로 한 소련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직후인 1939년 11월 핀란드를 침공했다. 핀란드는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사실상 외면하는 가운데 고립무원 소련에 맞서야 했고, 결국 영토의 약 10%를 소련에 빼앗긴 채 40년 평화조약을 맺었다. 41년 6월 나치가 독소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하자 핀란드는 나치와 손잡고 영토 탈환에 나섰다. 이른바 ‘계속전쟁(41.6~44.9)’이었다.

핀란드는 나치 이념에 동조해 독일과 정식 동맹(Axis 가입)을 맺은 게 아니며, 단지 소련의 재침공을 막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협력한 것일 뿐이라고, 자신들의 전쟁은 2차대전과 별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핀란드는 영토 내 유대인을 송환하라는 나치 요구에 “유대인도 우리 군대에서 함께 싸우는 핀란드 시민”이라며 완강히 불응했다. 당시 핀란드 군에 복무한 300여 명의 유대인 병사는 독일군과의 연합 전선에서도 ‘천막 시나고그’에서 토라를 읽으며 예배를 보았다. 유대인 의무병 레오 스쿠르닉(Leo Skurnik)과 간호병 디나 폴리야코프 등은 독일군 부상병을 구한 공로로 나치 철십자훈장 수여자로 지명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훈장을 거부했다. 그렇게 핀란드는 41년 말, 겨울전쟁으로 잃었던 영토 대부분을 회복했다.

하지만 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44년 6월 소련의 대공세가 시작됐다. 독일의 패배가 불가피해지자 핀란드는 그해 9월 소련과 단독 평화조약을 맺고 영토 내 독일군을 추방하고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수복한 영토를 되돌려주기로 합의한다. 그러곤 어제의 동지였던 독일군과 종전 직전까지 전투를 벌였다(라플란드 전쟁). 전후 핀란드의 중립 정책(Finlandization)이 저 절박한 외줄타기의 유산이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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