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6이 쓴 민주화운동 감상문에 “개고생한듯 ㄷㄷ” “독재는 에바각ㅠ”
<6> 심각한 글쓰기 실력 저하
경기 용인의 한 초등학교 교사 박모(38)씨는 지난 학기 6학년 학생 22명에게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감상문을 쓰게 했다. 10분 동안 정해진 분량(문장 5개)만큼 써낸 학생은 1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2, 3문장만 쓰거나 아예 한 단어도 쓰지 못했다. 문장 수준도 엉망이었다. 한 학생은 ‘옛날 사람들은 민주주의 지키려고 진짜 개고생 많이 하신 것 같다. 진짜 ㅈㅅ(죄송)하고 ㄷㄷ(덜덜)... 독재는 완전 에바각(오버·실수)ㅠ’이라고 썼다. 박씨는 “고학년인데도 자신의 생각을 온전한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놀랐다”며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학생이 너무 많아 올해부터는 글짓기를 시키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글쓰기는 읽기와 더불어 문해력의 핵심 요소다.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AI 시대에 필요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사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초·중·고교부터 대학교까지 글쓰기 실력 저하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교사들은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모든 글에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 쓰는 구어체를 사용하는 이른바 ‘글쓰기의 채팅화 현상’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단어의 초성만 쓰거나, 일부러 오타를 쓰는 식이다. 서울 지역 중학교 교사 전모씨는 최근 1학년 사회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써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ㅇㅏㅇㅣㄷㅗㄹ’(아이돌) ‘ㅅㅖㅍㅡ’(셰프) 등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 쓰는 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게임 채팅방에서 자주 쓰는 말투다. 전씨는 “요즘 아이들 중에는 자기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할 때 ‘대박’ ‘개멋져’라고 한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글쓰기를 할 때도 그런 식으로 단편적인 단어만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대 등 연구진은 경기도교육청의 의뢰로 ‘초등 문해력 지도 모델 및 전략 연구’를 진행했다. 초등 3·4학년 382명에게 ‘글을 잘 이해하면 좋은 점 3가지’를 쓰라고 했다. 그런데 79명(21%)이 3가지를 다 못 쓰거나 엉뚱한 대답을 했다. 3가지를 쓴 학생 상당수도 기본적인 맞춤법이 틀리거나,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았다. 연구 책임자인 임혜숙 경기도교육청 초등문해력정책연구 책임연구자는 “문장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한 줄로 나란히 쓸 줄도 모르고, 단어만 나열한 경우도 너무 많았다”며 “이 아이들이 글쓰기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서도 글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의 글쓰기 실력 저하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구대 연구진이 1학년 225명이 글쓰기 강좌의 ‘설득적 글쓰기’ 과제로 제출한 글을 분석한 결과, 153명(68%)이 정해진 분량(A4 용지 3쪽 이상)조차 다 채우지 못했다. 이 중 61%는 1.5쪽을 써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심각한 글쓰기 실태는 학교에서 ‘쓰기’ 교육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해 한국리터러시학회가 중·고교생 950명의 쓰기 교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 중학생의 경우 한 학기에 두 문단 이상의 긴 글을 쓴 경험이 1~2회뿐이라고 답한 비율이 절반 가까이(41.2%)를 차지했다. 고등학생은 3~4회가 32.5%로 가장 많았는데 1~2회도 26.2%나 됐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최근 일부 학부모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는 바람에 일기 쓰기, 받아쓰기를 하는 경우가 줄어들어 학생이 손으로 글쓰기를 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했다.
AI의 등장 이후 학생들의 글쓰기 경험은 더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5년 전 대학생의 문장 오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이연정 서원대 교수는 “학생들이 생성형 AI를 많이 사용하니까 글에서 아예 오류가 사라져서 이젠 문제점을 연구조차 할 수 없다”면서 “‘오류가 있는 글’은 피드백을 받아 고칠 수라도 있지, 아예 글을 AI에 맡겨버리는 ‘쓰기 실종’ 사태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김혜정 한국독서학회장(경북대 국어교육과 교수)은 “쓰기는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남에게 전달하는 능력으로, 기본적 훈련을 하지 않으면 대학에서도 어느 분야든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어렵다”며 “글쓰기 교육 과정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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