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가 만난 사람] 74세 청년 오지트레커 김성태씨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 다만 차이가 있을 뿐"
스페인~북아프리카~이탈리아 남부행 '신발끈'

| 서울=한스경제 최형철 대기자 | "나에게는 두 명의 의사가 있다. 왼발과 오른발이다." 영국의 역사가 트리벨리언의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고 했다. 걷기 예찬으로 회자되는 불후의 명언이다. 니체는 특히 자신의 주저(主著)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는 방랑하는 자이자 산에 오르는 자다"라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중세 신(神) 중심의 세계관을 근대 인간 중심 세계관으로 이끈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빗대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도 트레커들 사이에 유행이다.
오지(奧地) 트레커 김성태씨는 30년간 신문기자로 현장을 누볐다. 팩트와 스토리를 다루던 그가 은퇴 후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티베트, 히말라야를 시작으로 남미의 안데스와 파타고니아를 온전히 두 발로 걸었다. 말이 좋아 트레킹이지 사실상 오지 탐사에 가깝다. 그 여정을 담은 책이 벌써 세 권 째다. '티베트에 美(미)치다'를 시작으로 '히말라야에 美(미)치다'와 '안데스, 파타고니아에 美(미)치다'를 잇달아 펴냈다. 최근 그의 발걸음이 다시 분주해졌다. 배낭을 꾸리고, 신발 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페인을 거쳐, 북아프리카 모로코, 튀니지,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를 거닐 계획이다. 작심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면 두서너 달 일정이 보통이다. 3월18일 인천공항에서 중국 상하이를 거쳐, 스페인 마드리드 입성을 시작으로 '차마실' 멤버를 포함해 6명이 함께 하는 여정이다.

-기자에서 오지 트레커로 변신한 접점이 궁금하다.
"신문사 데스크 시절, 글로벌 화학회사에서 홍보 차원으로 보내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4년여 챙겨봤다. 1997년 12월호 티베트의 천장(天葬)풍습 사진과 히말라야 오지 절경을 보고 그야말로 쇼크를 받았다. 시체를 토막 내면 독수리들이 날아와 먹는 장례 의식인데, 그걸 정연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은퇴하면 반드시 저곳에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기자 생활이 현장을 읽고 글로 전달하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현장을 걷고 사진으로 전달하는 일이다. 본질은 같다."
"중앙대 사진아카데미에서 3년을 공부했다. 이후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아카데미(NGPA) 상급반 과정도 밟았다. 전환점은 성남훈 사진 작가와 만남이다. 그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권위자로 꼽힌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세계적인 사진상을 여럿 수상한 프로다. 저의 '사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 작가가 이끄는 사회공익 사진집단 '꿈꽃팩토리'의 멤버로 함께 사진 전시 프로젝트를 이어가면서 많이 배웠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 전시회에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팀장이 사진을 보고 연락한 거였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는 것으로 유명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는 게, 제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사진 원고료도 두둑했다.(웃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잡지의 사진이 은퇴 후 저의 인생을 결정지었는데, 제 사진도 그 잡지에 실리게 된 거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로 향하는데, 그 지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아프리카는 킬리만자로, 빅토리아 폭포, 사하라, 다나킬 사막 사파리까지 웬만한 곳은 모두 다녔는데 유독 북아프리카 나라들을 못 가봤다. 몰타와 시칠리아는 로마, 아랍, 노르만 문명이 켜켜이 쌓인 섬 문화가 있다. 오랜 시간 종교와 문명이 충돌하고 융합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기자로서의 본능이랄까. 사진 찍을 소재도 풍부할 것 같았다."
-이번 여행 후 계획하고 있는 다음 행선지는?
"남극과 남태평양의 여러 섬, 보르네오의 열대 우림과 원시 민족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쓸 것도 남아 있고, 갈 곳도 남아 있으니 멈출 이유가 없다. 다행히 두 다리가 멀쩡하다.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아무런 제약이 못 된다."
-'차마실'이라는 오지 여행 모임을 만든 계기는?
"15년 전, 오지 여행 중에 변호사 한 분을 만났다. 친해져 함께 다니다 보니,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모이면 '나홀로 여행'보다 행복지수가 수직 상승한다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10년에 걸쳐 멤버가 구성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여행 모임이 '차마실'이다. 차마고도와 실크로드의 준말이다. 현재 60~70대 11명으로 짜여져 있다."
-차마실 멤버는 어떻게 구성했나?
"오지 트레킹은 해발 5000~6000m의 고지를 무시로 넘나들며 인간을 시험한다. 육체와 정신적으로 한계 상황에 몰리면 사람의 민낯이 드러난다. 코드가 안 맞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게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 된다. '차마실' 멤버들은 지금까지 10년을 함께 다니면서 한 번도 충돌이 없었다. 서로 양보하고 포용하고,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두 달 일정이면 여행 경비가 꽤 들것 같다.
"비행 일정부터 숙박까지 모든 걸 멤버들이 직접 기획하고 예약한다. 패키지 여행사를 통하지 않으니 비용이 상당히 줄어든다. 이번 두 달여 일정도 1500만 원 안팎으로 예상한다. 항공료는 출발 한 달 전부터 가격을 지켜보다, 저렴한 티켓이 인터넷 사이트에 뜨는 순간 예매하는 게 핵심이다. 스페인을 열흘쯤 둘러보다가 이슬람 국가의 라마단 기간이 끝나면 모로코와 튀니지로 간다. 이어 몰타~시칠리아~이탈리아 남부를 걷는 일정이다. 유감스럽게도 60세 이상 오지 트레커들에게는 여행자 피보험 자격이 없다. 외국 보험사가 몇 군데 받아 주는데, 거기도 65세 이상이면 안 받아주더라."
-70세 넘어 암 수술까지 했는데,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수술 이후 당분간 오지 트레킹 대신 차량을 이용한 자유여행으로 방식을 바꿨다. 그게 전부다. 암 수술 후에도 여행자로서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배낭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기만 해도 날아갈 것 같은 마음이 샘솟는다. 모험심과 호기심에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느낌이다. 초•중•고를 다닐 때 매일 10리 길을 걸어 다녔고, 특전사에서 군 생활을 해, 10~20대에 기초체력이 다져진 것 같다. 고산병 증세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오지 트레킹을 완주하면서 보고 느낀 벅차 오르는 희열이 나의 에너지다."
"트레킹 도중 서양 젊은이들이 도로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홀딱 벗고 옷을 갈아입는 걸 본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더라. 우리 정서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게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걸 알게 된다. 문화에는 우열이 없고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남의 문화를 열등하다고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티베트의 천장 문화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우리와 전혀 다른 시간 감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더라. 내 상식의 반경이 얼마나 좁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일단 저질러야 한다. 따지고, 재고, 눈치 보다가는 영원히 못 떠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오지 트레킹 15년을 하고 나니 실감이 난다. 경험상 여행 많이 다닌 사람 치고 인성 나쁜 사람이 없더라. 특히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실제 지구도 광활한 우주공간에 외로이 떠 있는 '창백한 푸른점'에 지나지 않는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곳은 그 점의 한 구석에 불과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한없이 겸손해진다. 또 여행을 하다보면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게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든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이다."

"기회가 닿으면 음식 전문가 백종원씨, 화백 허영만씨와 '맛 기행'을 주제로 트레킹을 해보고 싶다. 또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 보기 아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해당 지역을 전공한 교수 혹은 지질학자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74세 청년' 아버지의 오지 트레킹에 대한 가족들 반응도 궁금하다.
"한번은 딸들이 데모 비슷하게 '트레킹 반대' 사보타주를 하더라. '아빠 위험한 곳 가시지 말라'고 하면서 '그 연세에 혹시 잘못되면 우리는 다 고아가 된다'며 울먹이더라… 순간 움찔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이해해주고 응원해준다. 니체의 말처럼 인생은 결국 길 위에서 시작되고 끝나지 않는가. 체력이 닿는 한 오지 트레커로서 삶을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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