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암에 걸린 채 탈북한 그의 마지막 기도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2026. 3. 1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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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 예배당 앞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커다란 캐딜락 한 대가 조용히 곁으로 다가왔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장례차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슬픔이나 절망의 분위기도 아니었다. 고통의 그림자도 없었다. 오히려 평안했고, 어딘가 위엄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꿈이 믿음의 대상은 아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이상하게 그 장면이 떠나지 않았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북에서 내려와 치료를 받고 있던 50대 초반의 광이(별명) 형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는 3년 전 북한에서 내려와 신체검사를 받을 때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 후 나라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며 살길을 찾고 있었지만, 병세는 이미 깊어졌다. 작년 봄 강원도 평창의 우리 공동체에 왔다. 그는 한 가지 소망을 말했다. “산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땀 흘려 일하면서, 실컷 살고 싶습니다.” 그는 공동체에서 몇 달을 함께 지냈다. 아픔을 잊고 함께 어울려 지내며, 앞장서서 일도 참 잘했다. 무엇보다 얼굴에 기쁨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자유로운 삶을 깊이 맛보았다.

생전의 광이(왼쪽 마스크 낀 사람) 형제가 편치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농사 일을 돕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주연 목사

그러나 병세가 악화됐다. 결국 가을 무렵 그는 공동체를 떠나 다시 병원으로 가야 했다. 간 이식을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가 공동체를 떠나던 날 말했다. “정말 살고 싶습니다. 정말 가족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의 맑아진 눈 속에는 삶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퇴원 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그를 정성을 다해 돌봤다.

그는 처음에는 믿음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 후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말씀을 읽으며 큰 위로를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새벽마다 혼자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했다. 병상에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점점 주님께 가까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예배 중에 매주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땅의 삶을 마친 것이다.

그에 대한 꿈이 떠올랐다. 슬픔이 아닌 평안과 위엄이 가득했던 분위기! 어쩌면 주님께서 한 영혼을 맞이하는 장면을 잠시 보여 주신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가 모든 고통을 잊고, 천국에서 평안히 쉬고 있으리라는 위로를 받았다. 언젠가 천국에서 그가 가족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생각할수록 또 하나의 깊은 아픔이 남는다.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이산가족이 이렇게 세상을 떠났을까? 우리는 같은 민족이지만 이 지상에서 가장 깊은 적대적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늘을 오가는 새처럼 구름처럼 모든 원한을 씻고, 다시 한 민족으로 평화를 누리는 날은 언제 올까? 그 날은 반드시 오리라! 그리고 그 소망을 품으며, 나는 매달 평화를 위한 기도 모임을 갖기로 했다.

광이 형제는 흔들리지 않는 반듯한 목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이주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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