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램마겟돈’ 시나리오 톺아보니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6. 3. 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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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다른 슈퍼사이클 ‘없어서 못 판다’
천장으로 간 눈높이…돌발 변수 있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뜨겁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경쟁이 격화되며 과거와 차원이 다른 ‘슈퍼사이클’에 올라탔다.

낙관론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수요 측면에서 AI 가속기 성능을 좌우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부품이 됐다.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 메모리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배경이다. 공급 구조 변화도 ‘메모리 병목’ 현상을 만들었다. 공정 고도화와 HBM 중심 생산 전략이 맞물리면서 범용 D램 생산 여력이 줄었다. 제한된 생산라인에서 HBM 비중이 확대되면서 범용 D램 공급이 예상보다 빠르게 감소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2028년까지 만성적인 메모리 공급난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

다만, 신중론도 적지 않다. 반도체 산업은 ‘거미집 현상(Cobweb Theory)’이 나타나기 쉬운 구조인 탓이다. 공급 부족을 확인하고 증설에 나섰지만, 실제 공급이 늘어나는 시점에는 시장 상황이 달라져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단 의미다. 특히 최근의 AI 위기론 등은 이를 우려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를 고려하면 일부 IB의 실적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신중한 시각도 있다. 맥쿼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7년 영업이익을 각각 476조원, 447조원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연간 실적 추정치 대비 각각 1033%, 915% 증가한 수준이다.

낙관론: ‘램마겟돈’ 3년 더

‘빅테크 설비투자’가 교본

낙관론의 출발점은 수요의 성격 변화다. 과거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PC나 스마트폰 같은 소비재 확산이 동력이었다. 소비자 교체 수요가 늘면 세트 업체가 생산을 늘렸다. 메모리 업계도 설비투자에 나섰다. 시간이 지나 공급이 수요를 추월하면 가격이 급락했다.

지금은 구조가 다르다. 슈퍼사이클의 중심에 소비자가 아니라 빅테크가 있다. AI 패권 경쟁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밀어 올리고 있다. 서버용 DDR5와 HBM은 빅테크의 ‘전략 자산’이 됐다. 빅테크 사이에서는 ‘일단 확보하고 보자’는 심리가 확산된 상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반복해 언급한 ‘메모리 병목’도 같은 맥락이다.

최보영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개인 소비자 선호가 수요로 확산되는 소비재 시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개인 선택의 파급 효과로 수요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빅테크 기업이 데이터센터를 신규로 건설하고 증설하는 투자 사이클에 의해 수요가 결정된다”며 “이번 반도체 매출 성장은 소비자의 유기적 확산이 아니라 대규모 기업 투자 사이클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당분간 빅테크의 HBM 수요가 고공행진을 벌일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는 분위기다. UBS는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클라우드 업체)의 올해 AI 설비투자(CAPEX)가 기존 예상치보다 23% 급증한 7700억달러(약 11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공정 고도화의 역설도 눈에 띈다. 제한된 생산능력에서 HBM 라인을 늘리다 보니 범용 D램 공급이 부족한 현상이 펼쳐진다. 공급 부족은 가격에 반영될 것이라는 게 글로벌 IB 예상이다. 모건스탠리는 2026년 1분기 서버·소비자용 DDR5 D램 고정거래가격이 전 분기 대비 약 100%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상 슈퍼사이클에서도 분기 상승률은 20% 안팎이었다. 노무라증권 역시 같은 기간 가격 상승률을 약 90%로 예상했다. 씨티증권도 연간 D램 가격이 171% 오를 것으로 봤다.

이 같은 흐름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홍콩계 증권사 CLS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8년까지 메모리 시장이 ‘만성 공급 부족’ 상태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AI 인프라 기업 설비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신규 팹 건설과 장비 도입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CLSA는 “역사상 가장 긴 메모리 사이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중론: 너무 높은 눈높이

변수(1) 설비투자 ‘더 많이 더 빨리’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다만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의 이익 개선폭이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다. 증권 업계 일각에선 ‘주요 업체 설비투자 확대’를 핵심 변수로 언급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업체 설비투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당초 시장에서 내다본 D램 생산능력 증가율은 제한적이었다. 클락 청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디렉터는 지난 2월 11일 ‘세미콘 코리아 2026’ 기자간담회에서 “D램 생산능력은 지난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4.8% 수준으로 비교적 낮은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메모리 공급사들이 원칙적으로 신규 설비투자를 보수적으로 하고 있고 증가분도 상당량을 HBM이 흡수할 것”이라며 “또한 공정 기준으로는 15나노미터(㎚) 이하 선단 분야에 투자가 집중돼 범용 D램 공급은 더 제한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 한편에선 ‘실제 투자 분위기는 다르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2월 24일 한국IR협의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5년 설비투자 컨센서스(전망치 평균) 합계는 75조3000억원이다. 이는 2024년과 비교해 11.9%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흐름은 2026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2026년 두 회사의 설비투자 전망치 평균은 전년 대비 32% 급증한 99조4000억원으로 예상된다. 이원재 한국IR협의회 연구위원은 “2017년 이후 9년 만에 최대폭 성장해 1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개별 기업별로 보면 설비투자 확대 흐름이 더욱 뚜렷하다. 시장은 삼성전자의 설비투자가 2026년과 2027년 각각 61조2000억원, 64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50조원 안팎이던 과거와 비교하면 크게 늘린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 설비투자 역시 2024년 15조9000억원 수준이었지만, 2026년에는 38조2000억원으로 전망됐다. 이 경우 2023년 이후 3개년 연평균 설비투자증가율(CAGR)은 66.4%에 달한다.

물론 반도체는 어느 산업보다도 리드타임(투자 이후 실제 생산까지 필요한 시간)이 긴 업종에 속한다. 장비 도입과 양산 안정화까지만 보통 수년이 걸린다. 다만 투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집행되고 있단 점을 고려하면 공급 증가 시점도 시장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 이 경우 시장이 내다보는 ‘메모리 만성 부족’ 국면은 다소 완화될 수 있다.

변수(2) 중국산 범용 D램 공급 확대

HP·델, CXMT 제품 사용 검토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향한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D램 계약 단가 상승세가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소 꺾일 수 있다는 우려다.

이번 슈퍼사이클의 중심은 HBM이다. 하지만 반도체 기업 실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핵심 수익원은 여전히 범용 D램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HBM은 단가가 높지만 생산량 자체가 제한적이다. 범용 D램은 서버와 PC, 스마트폰 등 대부분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출하량 기준 시장 규모와 매출 규모가 압도적이다.

시장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25년 기준 HBM 매출은 전체 D램 시장의 약 23%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 전망의 근거는 결국 HBM 연쇄 효과로 인한 범용 D램 공급 부족 → 가격 상승이란 얘기다. 노무라증권은 지난 2월 12일 삼성전자 분석 보고서에서 2026년 삼성전자 D램 매출과 영업이익 가운데 범용 D램이 차지하는 비중을 각각 86%, 91%로 예상했다.

문제는 범용 D램 시장이 몇 가지 변수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르는 변수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다.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CXMT)는 최근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기술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범용 D램 시장에서는 일정 수준 공급 영향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iM증권이 발표한 ‘출하량 기준 연도별 D램 시장점유율 추정 자료’에 따르면, CXMT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2026년 D램 점유율은 10% 안팎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에선 HP, 델, 에이수스 등 PC 업체를 중심으로 CXMT 범용 D램 사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닛케이아시아는 최근 “델과 HP 등 글로벌 제조사가 CXMT D램 품질 검증에 들어갔고 에이수스와 에이서 등 대만 계열 PC 제조사도 중국산 메모리 공급을 요청한 상태”라고 전했다.

변수(3) ‘구매 절벽’ 땐 수요 ‘뚝’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 12%↓

수요 측면에서도 변수는 있다. 범용 D램을 채택하는 PC와 스마트폰 등 소비재 시장 변화다. 최근 노트북과 스마트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름세다. 범용 D램 가격 상승에 따른 결과다. 더군다나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긴장 고조 등도 가격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긴장 고조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전반의 항공 노선, 운영 비용, 재고 계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격 상승 초기 국면에서는 PC와 스마트폰 제조사의 범용 D램 주문이 늘어날 수 있다. 추가 상승을 예상해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과거 메모리 시장에서는 가격 상승기마다 모듈 업체와 유통 업체를 중심으로 재고를 선제적으로 쌓는 구매 패턴이 반복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선제적인 재고 확보 움직임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범용 D램 수요가 예상을 밑돌 수 있단 얘기다. 시장에선 우려할 만한 지표들이 하나둘 나온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대비 12.4% 감소해 연간 기준 역대 최대 감소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메모리 가격 급등이 소비자 판매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른 수요 위축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증권가에서도 일부 우려의 시선이 나온다. 이에 D램 현물 가격(spot price) 움직임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송명섭 iM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물 가격이 단기간에 급격히 하락할 경우, 이는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니라 전방 산업에서 메모리 원가 부담이 한계 수준에 도달해 실제 수요 둔화가 시작됐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0호(2026.03.11~03.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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