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ON- 옥영숙의 내돈내산 시인의 한끼] (23) 창원 소계동 ‘두레박 아구찜’과 카페 ‘노스nos’

knnews 2026. 3. 1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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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봄, ‘찜’했다

꽃 소식 들리면 자연스레 모이는 문인들의 아지트
아귀찜 한점에 막걸리 한잔으로 회포 풀고 웃음꽃
주인장의 31년 손맛으로 버무린 제철 나물도 일품

천주산 아랫동네 주민 사랑방·등산객들 쉼터
정성으로 우려낸 수제차 마시며 이야기꽃 피워
다과를 내어주는 넉넉한 인심과 정겨움은 ‘덤’

삼월의 따스한 햇살에 애틋한 연둣빛으로 봄 향기 가득한 천주산이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을 가진 천주산은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하다. 머잖아 사월 초입이면 산 능선은 진달래꽃이 꽃물결로 장관을 이룰 것이다. 창원의 대표 문화유산인 동요 ‘고향의 봄’ 창작 배경지이기도 하다.

1926년 창작된 우리나라 대표 동요 ‘고향의 봄’이 100주년을 맞아, 2026년 한 해 동안 ‘백 년의 봄, 다시 피어나는 창원’을 비전으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은 온 국민이 다 아는 ‘고향의 봄’을 14살 때 썼다. 소파 방정환이 주관한 잡지 ‘어린이’ 1926년 4월 호에 실린 동시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는 ‘고향의 봄’이다.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천주산 아랫동네에는 ‘천주산 시인’ 홍진기 선생이 40년 남짓 소계동을 지키고 있다. 봄이면 후배들과 소계체육공원에서 석불사 벚꽃길을 걸었고 산행 후 ‘두레박 아구찜’에서 동동주를 마시며 후배들과 회포를 풀었다.

문인들이 즐겨 먹는 아귀찜. 매콤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옥영숙 시조시인/

◇천주산 시인 홍진기 선생과 함께하는 벚꽃길 나들이

홍진기 선생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9년 ‘현대문학’으로 자유시, 1980년 ‘시조문학’으로 시조를 천료받아 등단했으며, 경남시조시인협회, 창원문인협회, 함안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경남시조문학상, 경남예술인상, 함안예술인상, 경상남도문학상, 조연현문학상, 경상남도예술인상(본상) 등을 받았다. 시집으로 ‘파수꾼’, ‘기다리는 마음’, ‘울음 우는 도시’, ‘빈 잔’, ‘무늬’ ‘거울’, ‘배나무 없는 배나무실’ 등 많은 작품집을 발간했다. 또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가락문학회를 만들어 후배와 제자들을 독려했다.

천주산 자락 ‘석불사’에서 내려다본 벚나무길.

창원문인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홍진기 선생의 호는 소정(小井)이다.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도 한결같은 수위를 지키는 맑은 샘물 같은 인품을 지녔다. 선생이 동국대 입학 당시 부산·경남에서 두 사람이 합격했는데 경남에선 홍진기, 부산의 여학생 한 명이었다. 합격 소문은 경남뿐만 아니라 경사스러운 일로 마을이 잔치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국문과 입학은 미당 서정주 선생과의 인연으로, 미당 선생은 대학생 홍진기를 “헤이 경상도”, “경상도, 이리와”로 불렀다. 서울 친구들에게는 백발이 된 지금도 “야, 경상도”로 통한다.

홍진기 선생은 시, 시조, 수필, 소설에서 모든 등단 과정을 거친 열정의 문학가다. 소계동 지킴이로 살면서 천주산을 배경으로 많은 시조를 창작했다. 태풍에 쓰러진 벚나무가 몇 그루인지 탱자나무는 언제쯤 꽃이 피는지를, 자귀 꽃은 언제쯤 피어서 시심에 앉았는지를 후배들에게 들려주었다. 벚꽃이 피면 후배나 제자들과 벚꽃길을 같이 걸으면서 아름답고 화사한 서정을 바탕으로 시심을 일깨웠다.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해지기까지 날마다 오르내렸던 천주산 시인, 홍진기 선생과 함께했던 단골식당 ‘두레박’을 찾아갔다.

진달래로 유명한 천주산 아랫동네에 있는 소계체육공원길에 영춘화가 피어 있다.

◇경상고 교문 입구에 있는 소계동 ‘두레박 아구찜’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려도 연둣빛 새싹의 움직임이 천지간을 진동한다. 살아봐야겠다고 참지 못하는 재채기처럼 꽃눈이 터지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꽃소식이 들리면 자연스럽게 두레박이 떠오른다. 문인들의 아지트로 창원시 의창구 소계동 700-4에 있다.

소계동 경상고 바로 밑에 있는 두레박은 칼국수로 문을 연 식당으로 31년째 운영 중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칼국수, 수제비, 김밥, 라면, 이런 분식 종류를 팔았다. 당시 경상고 학생들이 즐겨 찾던 두레박 칼국수는 청춘의 허기를 채워주던 어머니의 밥상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주 종목으로 아귀찜만 판매한다. 우리가 이 집을 즐겨 이용한 시간도 삼십 년 남짓이다.

문인들의 30년 단골집 ‘두레박 아구찜’.

경상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공영해 선생으로 인해 문우들의 집합장소로 자연스럽게 두레박을 즐겨 찾았다. 홍진기 선생을 중심으로 봄날이면 약속처럼 소계동 체육공원길의 벚꽃 구경을 다녔다. 한 해 두 해 벚꽃이 피면 계율처럼 날을 잡고 꽃길을 걷고 두레박으로 향한다. 진해막걸리 군항주를 마시며 그날의 회포를 푸는 뒤풀이가 이어진다. 진해 군항제에서 따온 이름의 군항주를 숙성시키면 걸쭉하고 구수한 맛이 벚꽃길과 어우러져 일품이었다. 그러면 이소순 주인장은 안방에 정갈하고 소담한 나물을 아낌없이 담아 내주었다. 홍진기, 공영해, 우영옥, 필자가 주 멤버다. 나물 반찬은 안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푸짐했고 언제든 리필을 아끼지 않았다. 그날그날 소진하고 그 계절에 어울리는 나물은 직접 구매해서 정성 어린 손맛으로 깊은 맛을 자랑한다.

정갈하고 맛깔스런 나물.

벚꽃이 몽글몽글 아름답다고 만나고 낙화로 꽃비가 아롱아롱 아쉽다며 만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동행했던 이들은 임재도, 홍혜문 소설가로 늘어났다. 이달균, 김복근 선생과도 아귀찜에 동동주를 자주 마셨다. 지난해 봄기운을 찾아 나섰던 꽃길은 홍진기, 공영해, 김연동 선생과 동행했고 담소를 나누며 먹었던 아귀찜이다.

상호는 지금 살고 있는 집 마당에 우물이 있어 자연스럽게 ‘두레박 칼국수’로 지었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손을 맞춰서 함께 두레박에 연결된 줄을 당겨 물을 푸는 맞두레를 뜻하는 두레, 물두레라는 두레박으로 개업하게 된다. 두레박을 운영하면서의 보람은 경상고 재학 중에 이곳에서 칼국수에 허기를 채운 학생이 성인이 되어, 혹은 결혼을 해 찾아온 것이란다. 배불리 먹여주던 어머니 마음 같던 젊은 날의 허기가 이곳에서는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집밥이었던 까닭이다. 경상고 학생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칼국수와 라면은 이제 주민들을 위한 아귀찜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칼국수도 하고 배달도 하는 맛집이었으나 혼자 운영하는 식당이라 단일 메뉴 아귀찜으로 포장은 가능하지만 배달은 하지 않는다.

아귀찜을 먹고 난 뒤 그 양념에 라면사리를 넣어서 비벼 먹으면 정말 맛있다. 실내 입식 탁자로 되어있는 4인식 2개 테이블과 안방을 개조한 좌탁 룸은 편하게 안방처럼 앉아 먹을 수 있다. 기본 찬으로 계란찜은 명불허전이다. 노란 계란찜에 아무리 일손이 바빠도 데커레이션으로 풋고추와 당근, 홍고추로 꾸밈을 잊지 않는다. 물김치는 매운 아귀찜에 빠질 수 없는 밑반찬이다. 아귀도 쫄깃하고 콩나물은 아삭하다. 매콤한 양념에 밥을 쓱쓱 비벼 먹으면 한 끼가 든든하다. 부족한 반찬이며 밥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정겨운 집이다.

계란찜과 갖은 나물.

앞으로의 계획은 체력이 되는 한 5년 정도는 더 할 생각이다. 따뜻한 이웃들과 단골들에 대한 안부와 관계의 정이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홍진기 선생이 가락문학회를 창립한 지 40년 남짓한 세월로 인해 회원 중에 타지에 있어서 아귀찜을 한 번도 못 먹어본 회원은 있을지언정 한 번 먹은 이는 없을 정도로 횟수를 가늠할 수 없는 단골집이다. 홍진기 선생의 시화도 걸려 있는 두레박 아귀찜이다.

◇소계동 주민들의 쉼터 카페 ‘노스NOS’

두레박에서 요기를 해결했다면 다음 코스는 찻집이다. 좋은 선후배끼리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 어떻게든 핑곗거리를 만들어 자리를 함께한다. 등단 서열이 앞서거나 연배가 있거나 상관없이 존경받는 홍진기 선생은 주변에 찾는 이가 많다. 사심 없이 격려하고 응원하는 선생의 덕목으로 시인이 먼저가 아니고 사람이 먼저라며 후배나 제자들을 진심으로 아낀 까닭이다.

천주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 혹은 동네 주민들의 쉼터로 자리 잡은 카페 노스는 창원시 의창구 소계로 119. 1층에 있다. 예전에는 남편이 굽던 제빵제과로 수제 쿠키와 케이크가 인기 있었다. 지금은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커피를 내리고, 건강한 재료로 식음료를 만들어 팔고 있는 오미순 대표가 혼자 운영한다. 라틴어 ‘nos’는 우리, 우리들을 뜻한다.

등산객과 주민들의 쉼터 카페 ‘노스NOS’.

소계체육공원을 오르내리는 길목에 있는 카페는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카페 내부는 룸에 4인 테이블이 두 개 있고 바깥 실내에는 단체 모임을 할 수 있는 테이블 6개 정도다. 등산 후 쉼이 필요로 할 때 담소를 나누기 좋은 장소다.

메뉴를 살펴보며 우리는 노스의 시그니처로 수제 대추차와 생강차, 자몽차, 카페라테를 시켰다. 이곳의 옛날 팥빙수는 조금 특별하다. 빙수는 우유 100% 베이스와 팥소가 주는 특별함은 적당한 당도와 건강한 맛이다. 멜론이나 망고 빙수는 여름에만 한다. 여름날이 기다려질 정도로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추천 목록에 드는 대추차는 밀양대추를 구매해서 종일 푹 고아서 체에 걸러내는 정성은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생강차는 생강 본연의 맛을 중시한 즙을 짜서 차 다림을 하고 생강청도 판매하니 가성비가 좋다. 수제차나 과일 스무디는 재료비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탓에 대접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정성으로 우려낸 수제 대추차.

차담을 나누고 있으면 그 시기에 맞춘 꽃차를 내거나 하는데 오늘은 백도라지차를 갖다준다. 2차는 서비스인 셈이다. 그 정겨움에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찻집에 오래 있으면 귀찮을 법도 한데 넉넉한 인심을 전해준다. 단순히 차를 파는 가게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두와 초록의 차이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세월의 이야기 담는 찻집이다. 서로의 마음이 열리고 관계의 간극이 좁혀드는 순간을 만드는 찻집. 다과를 손님에게 줄 때의 특별한 경험은 도시의 화려한 대형 카페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따뜻함이고 포근함이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소중한 순간들이 모여 있는 찻집이다.

머잖아 소계동 체육공원이 벚꽃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 봄날 함께할 나들이를 꿈꾸며 홍진기 선생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면서 대표작을 꺼내본다.

언제나 내 곁에는/빈 잔이 놓여 있다

가진 것 모두 담아도/차지 않는 이 잔을

단숨에/그대로 들면 은회색 허공이 된다//

언젠가 달빛 한 줄기/이 잔을 다녀갔고

아내의 한숨 소리도/가끔은 드나들지만

시대의/증언을 풀면 전쟁 같은 물이 고인다

홍진기 선생의 ‘빈 잔’ 전문을 읽으니 “돌부리에 채이는 길거리 그 하찮은 돌멩이라도 사랑을 쏟아라.”라는 미당 선생의 말씀을 되새기며 시를 썼다고 했다. 사람과 자연, 그 소중한 대상들과 많은 인연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시혼과 같이 가고 싶다던 홍진기 선생이다. 우리는 시인보다 사람이 먼저라며 “작은 일에도 정성을 쏟아라”라는 선생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그 뒤를 따라 걷는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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