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한국 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콕 집어 “과잉 생산 흑자”

미·중 무역전쟁 때 쓴 카드…‘글로벌 관세 10% 만료’ 7월 발동 수순
조사 결과 앞세워 기존 무역 합의 이외 ‘새로운 양보’ 요구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꺼내든 무역법 301조는 관세율과 부과 기간에 제한이 없어 가장 위력적인 통상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이 301조 조사 결과를 빌미로 한국 등 교역 상대국에 새로운 ‘거래’를 요구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현행 10% 글로벌 관세의 근거가 된 무역법 122조는 최대 15%의 관세를, 의회의 연장 승인이 없을 경우 최장 150일 동안만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관세는 7월24일까지만 유효하다. 이에 반해 301조는 조사와 협의, 의견 청취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해서 발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 세율을 더 올릴 수 있고 부과 기간도 명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트럼프 정부는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이 나온 직후 대통령 직권으로 당장 발동할 수 있는 122조로 일단 관세를 부과하고, 이 관세가 만료되기 전에 301·232조에 근거한 관세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혀왔다.
미국은 301조를 주로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활용해왔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문제 삼아 301조 조사를 벌인 끝에 중국의 반도체·항공우주·로봇·첨단기계 분야 등에 25%의 관세를 매긴 바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실시한 301조 조사 결과에 의거해 중국산 전기차에 100%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16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301조 조사에 착수하겠다며 그 명분으로 ‘과잉 생산’을 꼽았다. 미 정부는 정부 보조금, 환율 조작, 임금 억제, 환경·노동 기준 무시 등의 정책이 과잉 생산을 유발하는지를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조사 결과 자동차, 반도체 등 한국의 수출 주력 품목에 높은 관세가 매겨지면 한국 경제 전체에 미칠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연방관보 공고문에서 한국의 대미 상품·서비스 무역흑자 규모를 지적하며 석유화학 등 분야에서 구조적 과잉 생산의 증거가 나타난다고 명시한 만큼 관세 부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가 추후 조사 분야가 디지털서비스세, 의약품, 쌀 시장 등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국가별 추가 301조 조사도 예상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미국이 301조 조사 결과를 지렛대 삼아 한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지난해 한·미가 타결한 무역합의 외에 새로운 양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22조 관세 유효 기간인 오는 7월24일 이전에 조사를 마치기 위해 가급적 신속하게 조사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USTR은 ‘301조 위원회’를 꾸려 이해관계자의 서면 의견을 오는 1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접수하고 5월5일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후 7일간 반박 의견을 받은 뒤 ‘대응 조치’가 정해질 예정이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중국이 301조 조사 대상이 된 것과 관련해 “‘과잉 생산’은 하나의 거짓 명제이며 중국 측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달 말 방중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양국 정상 간 상호 교류와 관련해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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