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경남연극제 폐막, 경남 연극인들 저력 빛나

백지영 2026. 3.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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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극단 현장 '개는 물지 않는다' 대상·연출상 2관왕
고 천영훈 배우에 특별상 전하며 추모의 시간
제44회 경상남도연극제(경남연극제)가 지난 10일 밀양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연극제는 신구 세대의 조화, 완성도 높은 작품 등 경남 연극이 지닌 폭넓은 스펙트럼과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장이었다.
지난 11일 밀양아리나 아트센터에서 열린 폐막식에서는 시상식 등이 이어지며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폐막식에 앞서 현대철 극단 마음같이 대표가 축하 공연 '피에로의 외출'을 선보이고 있다. 백지영기자


◇단체상=진주 극단 현장은 '개는 물지 않는다'(차근호 작·고능석 연출)로 올해 경남연극제 단체 대상과 연출상 2관왕에 올랐다.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4회 대한민국연극제에 도전장을 던진다.

단체 금상은 함안 극단 아시랑의 '나의 말금씨'(김정숙 작·손민규 연출)와 통영 극단 벅수골의 '태극기가 바람에'(신성우 작·장창석 연출)가 차지했다. 단체 은상은 창원 극단 미소의 '함부로 놀리지 마라'(장종도 작·연출), 사천 극단 장자번덕 '왕의 북'(김세한 작·김인경 각색·김종필 연출), 밀양 극단 메들리 '웃으면 장수하리'(김현희 작·김은민 연출)에게 돌아갔다.

◇개인상=연기대상은 극단 아시랑 '나의 말금씨'에서 말금 역을 맡은 김수현 배우와 극단 벅수골의 '태극기가 바람에'에서 태극기 노인으로 분한 박승규 배우가 차지했다.

김수현 배우는 "함께 고생했는데 저만 받아서 미안하다"며 '나의 말금씨'에서 남편 기동 역을 맡은 문지완 배우에게 미안함과 감사를 전했다.

박승규 배우는 "몇 년 전 수현 씨랑 같이 연기대상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오늘 또 이렇게 함께 올랐다"며 "함께 한 배우, 연출, 기획자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우수 연기상은 △마산 극단 상상창꼬 '어느날 아침 깨어나 보니 AI가 되어 있었다' 강주성 배우(기준 역) △진해 극단 고도 '공원 벤치가 견뎌야 하는 상실의 무게' 차영우 배우(원일 역) △창원예술극단 '리어, 길을 잃다' 장은호 배우(리어 역)가 각각 받았다. 신인을 위한 동명의 우수 연기상은 김해 극단 이루마 '당신이 좋아'에서 김종구 역 등을 연기한 박준수 배우에게 돌아갔다.

희곡상은 극단 아시랑의 '나의 말금씨'를 쓴 김정숙 작가, 무대예술상은 거창 극단 입체 '노르망디에 핀 쑥부쟁이' 이종철 무대 감독이 수상했다.

공로상은 제상아 전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장, 장은호 전 한국연극협회 창원지부장, 이규성 전 한국연극협회 통영지부장이 각각 받았다.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공로패를 받은 이규성 전 한국연극협회 통영지부장(왼쪽 첫번째)과 장은호 전 한국연극협회 창원지부장(왼쪽 세번째), 제상아 전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장(왼쪽 네번째)이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고대호 극단 미소 대표가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천영훈 배우에 대한 특별상 수상에 앞서 김시탁 시인이 쓴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고 천영훈 배우 추모=폐막식의 가장 뭉클한 순간은 지난 1월 영면에 든 고(故) 천영훈 배우를 기리는 추모의 시간이었다. 고인의 벗, 고대호 극단 미소 대표가 김시탁 시인의 조사를 낭독하자 객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올해 연극제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고 천영훈 배우에 대한 시상을 위해 단상에 오른 김수현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장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이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추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인 선배 배우. 2022년 연기 인생 40년을 맞아 특별상을 수여했지만, 4년 만에 그의 부재 속 다시금 특별상을 전달하는 슬픔을 김 지회장은 연극인이라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냥 천 대표님 빙의 한번 해볼게요. '특별상 준다니까 뭐 고맙네'. 이렇게 안 하겠습니까? '고마운 마음에 내가 노래 한가락 해볼게. 가세 가세 넘어가세, 이 고개를 넘어가세♩ 오늘은 저 극장 내일은 또 저 극장♪'"

고인이 상을 받았더라면 이렇게 노래로 화답하지 않았겠냐며, 고인이 맡았던 극 중 노래 한 소절 부른 김 지회장은 수상을 위해 단상에 오른 고인의 가족과 뜨겁게 끌어안았다.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제44회 경남연극제 폐막식과 시상식이 열렸다. 현장을 찾은 경남 연극인과 내빈 등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경남 연극 저력 확인"=심사위원단은 이번 연극제가 경남 연극의 저력과 다양성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성희 평론가는 총평에서 "14개 극단이 참여해 유의미한 주제의식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지역 연극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며 "신구 세대의 조화와 새로운 시도, 완성도를 향한 노력이 어우러져 관객에게 다채로운 연극적 경험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특히 일부 작품이 서울 무대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만한 완성도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주제 의식과 연출력,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뛰어난 작품뿐 아니라 대중성을 갖춘 음악극, 실험적인 연출과 신체극적 연기가 돋보인 작품 등 다양한 성과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심사는 작품의 문제의식과 깊이, 연극미학의 탐구, 연출력과 연기력, 무대미술 등 전반적인 완성도를 기준으로 진행됐다. 특히 공연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작동하며 미학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초연 작품의 경우 낭독이나 쇼케이스 등 작품 개발 과정을 거친 뒤 출품하는 방식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지역별 참가 극단 수를 조정하거나 첫 참가 작품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연기대상을 받은 극단 아시랑 '나의 말금씨' 말금 역 김수현(왼쪽) 배우, 극단 벅수골 '태극기가 바람에' 태극기 노인 역 박승규(오른쪽) 배우가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극단 이루마 '당신이 좋아' 김종구 역 등으로 우수연기상을 받은 박준수(오른쪽) 배우가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우수연기상을 받은 창원예술극단 '리어, 길을 잃다' 리어 역 장은호(왼쪽 두번째) 배우, 극단 고도 '공원 벤치가 견뎌야 하는 상실의 무게' 원일 역 차영우(왼쪽 세번째) 배우, 극단 상상창꼬 '어느날 아침 깨어나 보니 AI가 되어 있었다' 기준 역 강주성(왼쪽 네번째) 배우가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밀양 골목 어귀까지 연극 열기=밀양은 연극제 기간 내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극장이었다. 시내 중심은 물론 외곽의 작은 가게까지 연극제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에 연극을 향한 지역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연극제 관람객 역시 매년 여름 개최되는 밀양연극예술축제를 뛰어넘었다.

현장에서 만난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극단 고도의 '공원 벤치가 견뎌야 하는 상실의 무게'를 감상한 천명남(72·밀양) 씨는 "웃고 울리는 재미는 물론, 슬픔에 빠져있기보다 이겨내라는 메시지도 던져주는 작품이라 좋았다"고 했다.

극단 예도의 '봄이 지나가는...'을 감상한 김옥선(68·밀양) 씨는 "불의와 정의를 다루는 연극 작품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시사적인 내용이라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전했다.

'세대 공감 시민 관극단'으로 참여한 홍재근(68·밀양) 씨는 "시민극단을 통해 연극을 하고 있는데, 밀양에서 경남연극제가 열려 매일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며 "배우의 연기력뿐 아니라 몸짓, 작품성 등을 깊이 있게 살폈다"고 했다.

◇경남 연극 끈끈한 네트워크=경남연극제 기간이면 매일 공연 후 연극인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은 올해도 연극인들의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음날 공연을 위해 무대 준비를 마친 극단이나 연극제 감상을 위해 밀양을 찾은 연극인 등이 방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밀양 한 숙박업소 방 한 칸을 빌려 마련한 사랑방에서는 지난 1월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장 선거 당시 김수현 현 지회장과 맞붙었던 이삼우 극단 예도 연출이 함께 러브샷을 하며 화합을 다짐하는 풍경도 연출됐다.

폐막 하루 전인 지난 10일 처음으로 사랑방을 찾은 이삼우 극단 예도 연출은 "선거 때 포부 밝히는 거 들으니 참 많이 준비해 왔더라. 내가 지겠다 싶더라"며 "선거에서 누굴 지지했던 이제 하나가 되면 좋겠다. 내가 적극 응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는 평소 사랑방에서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심사위원단도 자리를 찾아 연극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폐막일에는 수상 결과에 따른 희비를 뒤로 하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뒤풀이 자리도 마련됐다. 시상식 후 무거운 분위기 속 참가 극단들이 곧장 찢어지는 다른 지역 연극제들과 달리, 경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단체 대상을 탄 팀이 뒤풀이 비용을 내는 전통이 있는데, 올해는 극단 현장이 100명 정도가 참여한 1차와 2차 비용을 통 크게 냈다. 연극제 상금 300만 원을 탕진하기 십상이지만, 평소 극단 단위로 혹은 개인 단위로 움직이는 경남연극인들이 모두 함께 모여 연중 가장 큰 행사를 마무리하고 회포를 푸는 뜻깊은 시간이기도 하다. 연극제 참가 극단 관계자들은 물론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 한갑수 거창국제연극제 예술감독, 장봉태 경남도립극단 예술감독 등도 자리를 함께 하며 극단별 성취를 넘어 '경남 연극'이라는 커다란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뜨거운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한편 제45회 경상남도연극제는 내년 진주에서 열린다. 폐막식에서 이번 연극제를 주관한 한국연극협회 밀양지부는 밀양시와 함께 한국연극협회 진주지부와 진주시에 대회기인 한국연극협회 경남지부기를 전달하며 올해 연극제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폐막식에서 대회기 전달식이 열리고 있다. 밀양시와 한국연극협회 밀양지회가 한국연극협회 경남지부기를 2027년 제45회 경남연극제 개최지인 진주시와 이를 주관할 한국연극협회 진주지회에 전달하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노르망디에 핀 쑥부쟁이'로 무대예술상을 받은 이종철(오른쪽) 극단 입체 무대감독이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극단 아시랑이 선보인 연극 '나의 말금씨'로 희곡상을 받은 김정숙(오른쪽) 작가가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개는 물지 않는다'로 연출상을 받은 고능석(오른쪽) 극단 현장 연출이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웃으면 장수하리'로 단체 은상을 받은 김은민(오른쪽) 극단 메들리 연출이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왕의 북'으로 단체 은상을 받은 김종필(오른쪽) 극단 장자번덕 연출이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웃으면 장수하리'로 단체 은상을 받은 제상아(오른쪽) 극단 벅수골 기획자가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함부로 놀리지 마라'로 단체 은상을 받은 고대호(오른쪽) 극단 미소 대표가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지난 11일 밀양아리랑아트센터에서 열린 제44회 경남연극제 시상식에서 '나의 말금씨'로 단체 금상을 받은 손민규(오른쪽) 극단 아시랑 연출이 수상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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