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존 케이지에게서 티노 세갈로

“핵심만 얘기해. 그 전시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내가 티노 세갈 전시 오프닝에 가겠다고 하자 남편이 무심하게 묻고 내가 답한다. “세상에 물건이 너무 많잖아. 그게 다 쓰레기가 되고. 그래서 티노 세갈은 물질로서의 작품을 생산하지 않아.”
남편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묻는다. “그럼. 미술관에서는 뭘 파는데?” “상황과 경험!” “어떤 상황?” “무용수들과 함께하는 경험 예술로서의 상황.” 그러자 남편은 단박에 일종의 ‘개념 미술’ 같은 건데 ‘개념’만 잡으면 되지, 그걸 꼭 봐야 맛이냐며 살짝 면박을 주고, 발끈한 나는 비장의 무기를 쓴다.
“아니 어떻게 미술관이라는 자본주의 신전 같은 곳에서 ‘물건이 없어도 돈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 팔 수 있냐고?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한지, 아니 어떻게 거부감 없이 예술적으로 실행되는지 내 경험으로 느껴보고 싶은 거야.”
그쯤 되자 남편은 이제 거의 넘어왔다는 눈빛으로 마지막 한마디를 보태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가성비 끝판왕이라니까. 재료비도 없고 재고도 없어. 피와 살을 가진 인간에게 지급하는 정당한 인건비만 있을 뿐이지. 상황 예술이라 재활용도 되고, 다른 미술관에도 계속 팔 수 있어. 죽이지? 예술이 경지에 이른 초경제성!”
결국 미술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는 티노 세갈에 대해 내가 너무 많이 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술관 입구에서 경비원들이 춤을 추며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This is so contemporary)’ 노래하는 장면으로 전시가 시작되는데 그 대표작을 알고 있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나도 그들과 함께 춤추듯 걸어볼까 하는 장난기가 발동하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문득 존 케이지에 대해 묻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여보세요? 뭐가 현대적이라는 거죠? 1952년 존 케이지가 4분33초 동안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연주회를 실행했는데 당신들은 뭘로 ‘현대 예술의 극한’을 보여줄 거죠?” 아, 그러고보니 존 케이지는 피아노 앞에서 연주는 안 하고 그저 현장과 관객들의 소음만 녹음된 4분33초 영상으로 아직까지 ‘위대한 전위 예술’의 제왕 자리에서 저작권을 챙기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가성비 끝판왕’ 자리도 넘겨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삐딱한 생각을 한 채 메인 전시장 중앙홀에 앉아 무용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축구선수, 사이클 선수 등이 협업 속에서 각기 다른 동작을 펼치는 작품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상황에 몰입해 있는 동안 온갖 경계심이 스르르 풀리고, 그저 이 장면 자체가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 온기가 차가운 오귀스트 로댕의 위대한 작품보다 더 예술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이 온다는 걸. 그러나 그 상황이 아무리 좋아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사진 촬영이나 동영상 기록은 허용되지 않는다. 티노 세갈이 정해 놓은 엄격한 원칙이다.
그때 알았다. 티노 세갈의 진짜 가치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바로 현재성과 희소성이다. 작품은 오로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의 ‘신체와 기억’ 속에만 남는다. 그래서 관객은 어느 때보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진짜 경험’에 집중하게 된다. 모두가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생산할 때, 세갈은 ‘그 자리에 온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경험’을 판다.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경험의 일부라도 전해보고 싶어 그날의 상황으로 만들어 전하는 이유다.
김경 오별아트 디렉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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