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불평등이 자랐다…토지 대재편의 역사[책과 삶]

고희진 기자 2026. 3. 1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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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파워
마이클 앨버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인플루엔셜 | 420쪽 | 2만3500원
<랜드 파워>는 토지 권력의 분배 과정을 통해 불평등의 탄생을 추적한다. 저자는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시도 등 토지 권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지난 1월28일 독일 공영방송 제작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풍자하겠다며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미국 국기를 걸고 있는 모습. 누크 | AFP연합뉴스

미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 수탈
사회주의 국가서 이뤄진 국유화
한국·대만·일본의 경자유전 등
각각의 재편이 부른 결과 살펴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야욕 등
현재의 분쟁 읽어내는 데도 도움

코첼라 밸리.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있는 큰 계곡으로 팜스프링스를 포함한 휴양도시들이 위치해 있다. 국내에서는 매년 4월 이곳에서 열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몇해 전부터 인기 있는 K팝 아티스트들이 진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화려한 엔터테인먼트의 세계가 대자연의 풍경과 조우하는 현장은 약탈과 같은 토지 정책과 함께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만들어질 수 있었다.

미국 서부 개척이 한창이던 1850년대, 연방정부는 이 지역 개발을 위해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카후일라 부족에게 불평등 조약을 강요해 대부분의 영토를 양도받는다. 이후 철도 건설을 추진하며 부족이 남아 있던 땅마저 빼앗는다. 유럽에서 온 정착민들이 토지를 배타적이고 개인적이며 양도 가능한 자산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카후일라 부족을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들에게 토지는 자원의 원천을 넘어서는 영적·문화적 존재였고 이는 소유권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착민들이 토지를 이용해 수천배의 부를 일구는 동안 토착민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출신에 의한 위계질서가 고착화되고 불평등은 뿌리내린다.

땅을 가진 이가 권력을 쥔다. 권력은 단순히 부의 격차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인종과 성별, 지역 간의 차이를 형성한다. 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토지 권력과 불평등의 구조적 연관성을 연구해온 저자는 지난 2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이 권력 구조가 어떻게 재편됐는지 살핀다. 그리고 이러한 토지 소유 구조의 대규모 변화를 ‘대재편’(The Great Reshuffle)이라 명명한다.

코첼라 밸리의 사례처럼 정착민에 의한 토지 수탈이 대재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으로 한정해도 아메리카 토착민을 ‘인디언보호구역’으로 몰아내고 정착민들에게 경주 대회를 통해 땅을 매매했던 1889년의 ‘오클라호마 랜드 러시’를 비롯해 다양한 사건들이 떠오른다. 중국은 신장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토착민을 몰아내는 대재편을 강행했다. 약탈과 같은 대재편으로 형성된 사회는 장기적으로 공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땅을 빼앗긴 토착 집단은 해당 사회에서 보호라는 이름으로 격리되는 2등 시민으로 전락하기 쉽다.

대재편의 또 다른 사례는 소비에트연방과 중국,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실시한 집단주의 개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토지를 국유화해 농민들을 집단농장에서 일하게 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현실 사회에서 알 수 있듯 이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집단화는 노동자 개인의 노동 의욕을 꺾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저개발의 함정’에 빠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탈식민지화 이후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일어난 협동조합형 개혁 역시 집단주의 개혁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지주와 소작농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한국과 일본, 대만 등은 새로운 대재편의 과정을 걷는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경자유전(耕者有田) 개혁이다. 전쟁 이후 토지개혁을 실시한 한국과 일본은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상한선을 3㏊로 제한하고 한도 기준을 초과하는 토지를 정부가 사들여 유상 분배했다. 책은 이 같은 경자유전 개혁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봉건적 농업사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급속히 이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 설명한다. 토지를 소유하며 잉여생산물을 취할 수 있게 된 이들은 어린 자녀들을 논밭에 보내는 대신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됐다. 교육된 세대의 성장은 사회 발전을 가속화했다.

물론 경자유전 개혁에도 그림자는 있었다. 이때 재분배된 토지의 소유권이 대부분 국가에서 남성에게 배정되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남성 중심 가부장제를 강화해 성 불평등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또한 경자유전 개혁은 개인이 생산량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환경을 훼손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의 삶은 이 같은 대재편이 도달했을 때 각국이 내린 선택의 결과다. “정부가 선택한 경로는 어떻게 재산권을 조직하고,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시민을 분류하여 범주화하고, 환경을 관리할지 좌우”했다. 토지 재분배 결과 높은 경제적 이익을 이뤄낸 곳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재편은 “인종적 위계질서가 수립되는 데 일조”했으며 “성 불평등을 심화”하거나 “기후변화, 자원 고갈, 생물 다양성 감소와 연관된 문제를 악화시켰다”.

그리고 대재편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토지의 희소성 때문이다. 인구 변화, 자원 경쟁, 기후위기 등이 이 같은 대재편을 추동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선 직후부터 국가 안보를 위한 영토 확장을 주장하며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의 흡수 합병을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을 종식한 후 미국이 가자지구를 관리하며 안정을 도모한다는 계획까지, 식민지 제국주의 시절 정착민에 의한 토지 수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고방식이다. 미국뿐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각국과 벌이고 있는 분쟁 등 지속되고 있는 세계의 정치적 변동은 모두 땅, 그리고 땅이 주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에서 비롯됐다.

지난 대재편이 남긴 불평등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도래할 대재편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일종의 힌트를 제공하는 책이다. 1910년대 흑인 토착민이 빼앗긴 땅을 되찾게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토지 반환 운동을 포함해 대재편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수십년 내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인구, 기후위기로 인해 재편될 땅의 가치 등이 새로운 기회와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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