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단상] 답 없는 답을 묻다

도정 승려시인 2026. 3. 1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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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살이 별것 없다는 얘기를 인생 선배님들께 듣곤 한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7형제의 막내 왕자로 태어나 형들과 산행을 했었다.

호랑이를 살리고자 몸을 던진 그 왕자가 석가모니 부처님 전생이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전생담도 모든 중생들에게 생명을 향한 자비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이지만, 기실 누구도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하려고 하는 이는 매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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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죽이는 전쟁 끊이지 않아
인간은 어째서 이토록 악한가

우리는 세상살이 별것 없다는 얘기를 인생 선배님들께 듣곤 한다. 정말 그렇다. 인생살이 복잡하고 천태만상 같아도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고, 도긴개긴이다. 그래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 사는 일이 평안하면 고맙다. 남 탓할 일도 없고, 남 원망할 일도 없으면 안락하다. 남의 것 뺐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고, 남 해코지 할 일 없으면 두려울 일도 없다. 남에게 으스댈 심보가 없으면 사람 사이에 친화는 저절로 이루어지고, 타인을 존중하면 업신여김을 받거나 무시당할 일도 없다.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내가 공격받을 일이 없고, 베푸는 삶을 살면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받게 된다. 인색하면 친구가 없고, 험담이 많으면 타인의 미움을 쌓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간단한 삶의 이치를 자꾸 외면하는 것일까? 네 것을 뺐어야 내가 잘살고, 너를 업신여김으로서 내가 돋보이게 되고, 인색하게 굴며 아끼고 그러모아야 부자가 되고, 상대방을 권력과 폭력으로 제압해야 권위가 서고, 거짓으로 상대방을 모함하고 죄를 덧씌워야 상대적 권력을 획득하고, 속인 만큼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모든 현상이 사람에게 있어 단지 양심(良心)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만은 아닐 듯싶다. 양심이란 것도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일 굶으면 도둑질 안 할 이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부처님께서 전생에 7형제의 막내 왕자로 태어나 형들과 산행을 했었다. 그때 형제 중에 막내 왕자가 산 골자기 아래 새끼를 품에 안고 굶어 죽어가는 암호랑이를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호랑이가 다리를 다친 게 보였다. 그래서 얼마나 굶었던지 호랑이의 몰골은 피골이 상접했고, 새끼 호랑이들은 나오지 않는 어미의 젖을 빨다가 울고 있었다. 순간 막내 왕자는 가슴 속에서 복받쳐 오르는 연민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몸을 던져 저들을 살리리라." 그 후 막내 왕자는 절벽 위에서 호랑이 앞으로 몸을 던졌으며 호랑이는 그 시체를 뜯어먹고 새끼까지 살릴 수 있었다. 호랑이를 살리고자 몸을 던진 그 왕자가 석가모니 부처님 전생이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전생담도 모든 중생들에게 생명을 향한 자비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이지만, 기실 누구도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하려고 하는 이는 매우 드물다. 대체로 남을 희생시켜 내 이익을 바라는 게 사람의 본성이고 이를 비난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세상에는 부처님 전생담을 온몸으로 실천한 이들이 무수히 많다. 울릉도 천부항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두 명의 제자를 살리고 자신을 희생한 이경종 교사가 있고, 수류탄에 몸을 던져 훈련병들을 구하고 희생한 강재구 소령이 있고, 일본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수현 씨가 있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다른 수용자를 대신해 굶어 죽은 콜베 신부가 있다. 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가 어찌 이들뿐이랴.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 앞이라 한들 본성이 선하고 남의 아픔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성인들은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며 지금도 우리 곁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함께 살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얘기는 사실 요즘 벌어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이란과의 전쟁을 말하고 싶어서다. 사람이 서로 죽고 죽이며 벌이는 전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이 야만의 역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 인간은 어째서 그토록 선하며, 이토록 악한 것인지 답 없는 답을 묻고 싶어서다.

/도정 승려시인